[김필영 시문학 칼럼](82)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수평을 가리키다
[김필영 시문학 칼럼](82)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수평을 가리키다
  • 뉴스N제주
  • 승인 2024.02.1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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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위선환시집, 수평을 가리키다.<문학과지성시인선458>14쪽,)

수평을 가리키다

위선환

새벽별과 새벽과 아침이 젖었다 새벽별과 새벽과
아침을 고루적신 이슬점과, 나, 수평이다
다시 만난 것들과 날개가 꺾인 것들과 또 아픈 것
들과 아직도 나는 것들과, 나, 수평이다
폐선이 묻힌 개펄과 돌들이 넘어진 폐허와 하늬바
람이 눕는 빈들과, 나, 수평이다
날빛 뒤로 스러지는 놀과 놀 뒤에서 어두워지는
하늘과 먼 데서 돋는 불빛과, 나, 수평이다
나뭇잎이지는 날씨와 하루가 수척한 것과 마지막에
빛나며 사라지는 것과, 나, 수평이다
나비가 날개무늬를 찍어둔 하늘과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닿는 높이와, 나, 수평이다
땅 아래 잠든 짐승의 곤한 체위와 땅을 누르고
있는 고요의 무게와, 나, 수평이다
구름 덮인 들판을 지나가는 흰 소의 큰 눈과 길게
우는 울음과 천둥과, 나, 수평이다
손금에 흐르는 물소리와 움켜쥔 물의 결과 물고기
들이 돌아오는 물의 길과, 나, 수평이다
돌아와서 당신 곁에 눕는 나의 회유, 이미 누운 당
신과 이제 눕는 나와, 우리, 수평이다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사라지는 것들을 그러안는 水平의 詩學』

강물이 바다로 모여들어도 물의 순환계는 일정량의 물을 증발시켜 공중에 수증기로 물을 저장하여 바다의 수평을 유지한다. 물방울이 어깨를 기대고 평온을 유지하는 수평. 우리의 마음도 사유의 바다에 이르면 수평을 이룬다. 위선환 시인이 가리키는 수평을 따라가 본다.

시는 10개의 연에 펼쳐지는 풍경들과 화자가 수평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행간을 들여다보면, 그 풍경들은 하나 같이 안정적인 모습들이 아니다. 즉 수평을 이루고 있지 못한 것들이다.

건물이 바로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지평과 수평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수평을 이룬 사물의 모습은 안정적인 모습이다. 이미 수평을 이루고 있는 것들과 수평이라고 했다면 시적 묘사로서는 빛날 수 없다. 화자는 안타깝게 사라져가는 대상을 수평의 위치에 배치하여 독자의 측은지심을 자극하고 있다.

우리는 잠에서 깨어 눈을 뜨는 순간부터 수평을 이루지 못한 것들을 떠나보내야 한다. 화자는 사라져가는 것들을‘수평’이라는 따뜻한 품을 벌려 그러안는다. 첫 연은 “새벽별과 새벽과 아침을 고루적신 이슬점과”수평이 된다.

새벽별이 맑게 빛나고 새벽 공기가 청량한 것은 허공을 수증기가 물로 변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이슬이 제 몸으로 쓸어내렸기 때문이다. 점점 밝아오는 새벽풍경은 이슬로 인해 어둠을 드맑게 탁본하고 하루를 연다. ‘아침 이슬점’과 수평이 되고자 한 것은 해가 떠오르면 사라질 이슬일지라도 하루를 맑게 여는 지점에 서있는 우리에게 희망의 전령인 이슬의 가치에 감사하는 예찬이리라.

아침이 오면 생물들의 만남이 시작된다. 그러나 삶은 늘 만만치 않다. 먹이를 벌기 위해 누군가를 다시 만나야 하는 치열함으로 날개가 꺾이고 아프게 사라져간다. 폐수가 흘러들어가는 앞바다는 물고기들의 씨가 말랐다.

고깃배를 움직여 그물을 내릴 젊은이들은 도회지로 떠나고 개펄에 묻힌 폐선과 늙은 아버지만 남았다. 정든 골목길 담벼락은 넘어져 폐허되고 담쟁이마저 사라졌다. 하늬바람과 나란히 서서 황량한 빈들에 수평이 된다.

“날빛 뒤로 스러지는 놀”, 놀 뒤에서 어두워지는 하늘”에 달이 떠오르면 지친 하루가 수척한 어깨를 떨어뜨리고 사라져갈 것이다.

중반을 지나며 화자는 자아 밖으로 수평의 대상을 확장시킨다. 곤충인 나비의 날갯짓을 살펴 “날개무늬를 찍어둔 하늘”로 시각적 수평의 체위를 높이고,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닿는 높이”로 청각적 수평의 체위를 세워 “구름 덮인 들판을 지나가는 흰 소의 큰 눈과 길게 우는 울음과 천둥”소리를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천적의 먹이로 사라지는 물고기인 연어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사라져갈 것이다.

사라져가는 맨 마지막엔 누가 있는가. 그것은 아직 다다르지 못한 詩, 캐내지 못한 진리가 아닌 당신이라는 존재가 있다. 그곳이 처마 낮은 지붕이었든, 캄캄한 무덤이었든, 사라져가는 것들을 그러안으려고 헤매다 돌아와 회유하며 곁에 눕는 수평, 그곳에 모르는 척 맞아주는 ‘당신’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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