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88)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식탁 위에는
[김필영 시문학 칼럼](88)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식탁 위에는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4.03.23 12: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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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지연희 시,『한국현대시』2016년 하반기호. 95쪽, 식탁 위에는

식탁 위에는

지연희

주방 귀퉁이 가로 길이 한자 남짓

길쭉한 유리창문 밖이 환하다

소란스런 아이들의 재잘거림처럼

한껏 부풀던 함성이 탈출구를 찾았나 보다

팽창되어진 고무풍선 속 제 갈 길 꿈꾸는

비틀린 욕망들이 튕겨져 들어온다

유리창의 크기만큼 조각난 햇살 하나가

틈을 비집고 들어선 것은 바로 그때이다

식탁 위 온몸에 가시를 뒤집어 쓴

어린 선인장 화분 위에 슬며시 발을 딛는 빛

가시의 고통이 발끝에서 전신을 타고

샘물처럼 솟아나기 시작한다

흥건히 강을 이루는 핏빛

어디선가 참새 떼의 지저귐

포르르 포르르 스며와

그의 음성을 전해주고 간다

이윽고 빛의 그림자를 넓히는 햇살

식탁 위에는 달디 단 말씀들이

환하게, 환하게 영역을 넓히고 있다

뉴스N제주가 주최한 '나의 시 나의 인생' 문학특강 가을편이 19일 오전 11시부터 1시간동안 뉴스N제주 스타디움(제주시 중앙로 253, 5층)에서 김필영 시인이자 평론가를 초대해 특강을 가졌다.
 김필영 시인 평론가

『식탁에 포착된 햇살 하나, 존재케 하는 생명의 빛』

예술의 공연무대에서 연출자는 출연자를 부각시키기 위해 집중조명(spot light)장치를 사용한다. 우리가 사물을 바라봤을 때, 사물의 빛은 우리는 눈(目)의 홍채와 각막을 통해 눈으로 들어와 동공을 통해 이동하여 수정체는 망막에 초점이 맺히도록 한다. 시인이 사물을 관찰할 때 무엇을 집중 조명할 것인가, 어떤 조명장치를 사용할 것인가는 시인 각자의 고유권한이다. 지연희 시인은 어떤 집중조명장치를 통해 사물을 어떻게 조명 하였는가?

시의 「식탁 위에는」이라는 제목에서 화자가 사용할 공연무대는‘식탁’임을 알게 한다. 주방이라는 좁고 경직된 공간을 무대로 삼은 화자는 자신이 선택한 집중조명장치가 어떤 조명장치인지를 노골적으로 밝히지 않고 “주방 귀퉁이 가로 길이 한자 남짓/ 길쭉한 유리창문 밖이 환하다”는 표현에서‘유리창’을 조명도구로 소개한다.

그러나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것은 빛이 아니다. “소란스런 아이들의 재잘거림처럼 한껏 부풀던 함성”이다. 그 함성이 유리창을 통해 주방으로 들어온 상황을, ‘세상이라는 곳에서 집안을 향해 빠져나올 때 유용한 문인‘탈출구’비유한 것은‘세상’은 탈출해야할 장소라는 것을 은유한 것이다.

세상이라는 곳이 어떠한 곳인가? 세상이라는 곳에서 유리창을 통해“팽창되어진 고무풍선 속 제 갈 길 꿈꾸는 / 비틀린 욕망들이 튕겨져 들어온다.”고 함으로, 세상은 부풀대로 부풀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풍선 같은 것이며, 더불어 살지 않고 개인주가 팽배하여 올바른 소망이 아니라‘비틀린 욕망들’이 포화상태인 세상임을 알게 한다. 따라서 화자의 내적 심리상태는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하고 있음을 가늠하게 한다.

행간의 중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집중조명기구가 등장한다. 그것은 세상이라는 곳에서 비틀린 욕망들이 튕겨져 들어오는 틈을 비집고‘식탁’이라는 아주 작은 무대로 들어선“유리창의 크기만큼 조각난 햇살 하나”였다. 이제 관객이 된 화자는 식탁이라는 무대에 집중조명기구인 햇살이 비추어주는 사물에 주목하게 한다. 이‘햇살 하나’가 그리 중요한가?

햇살이“식탁 위 온몸에 가시를 뒤집어 쓴/ 어린 선인장 화분 위에 슬며시 발을 딛는”것을 목격하자 화자는 가시를 밟는 햇살과 동체가 된다. 햇살이 선인장 가시를 밟게 되자“가시의 고통이 발끝에서 전신을 타고/ 샘물처럼 솟아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샘물처럼 솟아나는 고통이 견디기 힘든 고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전율로 느껴지는 까닭은 왜일까?

욕망이 꿈틀거리는 세상과 차단된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주거 공간의 주방식탁 위에 유리창 틈으로 들어온 햇살 하나가 가시를 밟을 때, 세상이라는 가시를 밟으며 살아온 화자 자신과 하나가 되어 햇살은“흥건히 강을 이루는 핏빛”으로 나타난다.

“어디선가 참새 떼의 지저귐/ 포르르 포르르”스며온다는 전환표현으로 시각적 집중조명으로 전율하던 화자가 새들의 지저귐을 청각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윽고 빛의 그림자를 넓히는 햇살/ 식탁 위에는 달디 단 말씀들이 환하게, 환하게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표현은 독자의 마음까지 환하게 비추어준다. 식탁에 비춘 햇살 한 조각의 의미가 ‘달디 단 말씀’으로 승화됨은 그 빛을 볼 수 있음으로 우리의 생명이 존재할 수 있다는 진리 앞에 우리는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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