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70)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모종
[김필영 시문학 칼럼](70)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모종
  • 뉴스N제주
  • 승인 2023.11.1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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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김찬옥 시집, 벚꽃 고양이 : 현대시학시인선 (019) 45쪽, 모종

모종*

김찬옥

땅을 고를 때도 아닌데
고향에서 꽃씨를 심으러 오라는 전갈이 왔다
얼마나 귀한 씨앗이기에
멀리서 친지들과 친구들과 이웃들까지 다 모였다
국화꽃 앞에 꽃씨의 사진을 모셔 놓고
우린 깍듯하게 절을 올렸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육개장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여기서 멈춘 그의 길을 새롭게 풀어주기로 했다
새날이 밝자
포크레인까지 동원해 땅을 파고
하늘 한 칸, 구름 한 뭉치 깔아 놓은 구덩이에
커다란 꽃씨를 살포시 내려놓았다
새싹이 잘 움틀 수 있도록 키 높이를 주었다

바람의 부리도 허용치 않을 만큼 꼭꼭 밟았다
땅이 촉촉하게 젖을 만큼 눈물도 흠뻑 뿌려주었다
누구도 꽃눈**이 떨어져 나간 꽃씨라는 걸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 문인수 시인의 「하관」에서 착상
**임송자 시인의 「꽃눈」에서 착상

뉴스N제주가 주최한 '나의 시 나의 인생' 문학특강 가을편이 19일 오전 11시부터 1시간동안 뉴스N제주 스타디움(제주시 중앙로 253, 5층)에서 김필영 시인이자 평론가를 초대해 특강을 가졌다.
김필영 시인, 평론가

『은유隱喩의 모종에 심긴 아름다운 슬픔』

작물의 번식에 쓰이는 씨앗을 심는 것을 넓은 뜻에서 ‘파종’이라고 한다. 씨를 흙에 뿌리는 일인 파종의 시기는 작물의 종류 및 품종에 따라 다를 뿐더러 재배지역·작부체계·토양조건·재해조건·출하기·노력사정 등에 의하여 정해진다.

옮겨심기 위하여 씨앗을 뿌려 가꾼 온갖 어린 식물 또는 그것을 옮겨 심는 것을 모종이라 한다. 김찬옥 시인은「모종」을 통해 우리의 가슴에 무엇을 심으려한 것이었을까, 들여다본다.

「모종」이란 제목의 착상출처를 하단에 표기 하지 않았다면 이 시의 은유의 맛은 더 깊어졌을 것 같다. 월동작물은 보통 가을뿌림하며, 여름작물은 봄뿌림을 하는데, 꽃씨라면 봄뿌림을 하겠으나 첫 연에 “땅을 고를 때도 아닌데 고향에서 꽃씨를 심으러 오라는 전갈이 왔다.”라는 서술적 행간에서 심는 일인 ‘모종’에 대한 상식을 ‘꽃씨’라는 파종물체(播種物體)로 슬며시 비틀어 놓으므로 독자는 사유의 갈등이 시작된다. 이는 ‘꽃씨’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켜 다음 행간을 주시하게 한다.

꽃씨를 심는 일에“멀리서 친지들과 친구들과 이웃들까지 다 모였다.”는 것으로 보아 보통 꽃씨가 아닌 대단히 귀중한 꽃씨임을 암시한다.

더욱이 3연에서‘모종작업’을 위한 준비단계에서 모종의 대상을 감추고 있는 것처럼 읽혀지나 시의 결말을 읽고 난 후엔 기사를 쓰듯 사실묘사로서 제목의 은유로 인한 착시임을 알 수 있다. 작물을 심는 일을 하기 전에 “꽃씨의 사진을 모셔 놓고/깍듯하게 절을 올”리는 일이 그리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4연에 전개되는 장면의 영상적 묘사는 여러 무더기로 ‘삼삼오오’ 둘러 않아 먹는 ‘육계장’은 가족행사에서 여러 반찬을 장만하지 않고도 반찬과 국과 안주를 한 그릇으로 대신하는 음식을 등장시키므로「모종」의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귀띔해준다.

거기에 “소주잔을 기울”인다는 그 ‘기울임’의 행위는 한두 잔이 아니라 주거니 받거니 술을 권하며 마음을 나누는 시간의 저물어가는 흐름을 느끼게 한다. ‘모종의 작업’을 준비해야 하는 자들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보내며 날이 밝으면 ‘꽃씨’를 심어야만 하는 체념의 밤을 보내고 있다.

“여기서 멈춘 그의 길을 새롭게 풀어주기로”하기까지 수렁 같은 캄캄하고 무기력하기만한 현실을 한탄하며 마음을 정리한다. 이 장면에서 이청준의 소설과 임권택 감독의 영화로 소개된 ‘축제’가 연상된다.

어머니의 부고로 시작되어 “초상‘을 치르는 ‘장례식’의 과정을 모임, 화해, 갈등 해소 등을 통해 ‘축제’라는 주제로 끌고 가듯,「모종」에서도 장례절차의 마지막 장면을 꽃씨를 심는 ‘모종행위’로 시치미 떼며 행간을 이끌고 간다.

5~6연에 이르러서 ‘모종’의 대상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러나 중장비까지 동원해 “땅을 파고 하늘 한 칸, 구름 한 뭉치 깔아 놓은 구덩이에“ 살포시 내려놓은 “커다란 꽃씨”가 누구인지 밝히거나 효(孝)를 강조하지 않는다. 결구에 이르러서 “땅이 촉촉하게 젖을 만큼 눈물도 흠뻑 뿌려주었다.”고 함으로 피할 수 없는 별리를 참아온 슬픔을 슬며시 드러낸다.

한 존재의 장례과정, 하관과 봉분조성과정을 ‘모종’으로 은유하여 마지막행간까지 끌고 간 이 시는 은유의 백미를 보여준다. ‘죽음’으로 소멸되는 한 존재가 우리를 꽃피우고 “꽃눈이 떨어져 나간 꽃씨”로 심겨지는「모종」속에 상실과 별리의 슬픔이 아름답게 감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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