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68)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김필영 시문학 칼럼](68)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 뉴스N제주
  • 승인 2023.10.29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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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문태준시집,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 창비시선 387) 23쪽,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문태준

당신은 나조차 알아보지 못하네
요를 깔고 아주 가벼운 이불을 덮고 있네
한 층의 재가 당신의 몸을 덮은 듯하네
눈도 입도 코도 가늘어지고 작아지고 낮아졌네
당신은 아무런 표정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네
서리가 빛에 차차 마르듯이 숨결이 마르고 있네
당신은 평범해지고 희미해지네
나는 이 세상에서 혼자의 몸이 된 당신을 보네
오래 잊지 말자는 말은 못하겠네
당신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네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을 보네

뉴스N제주가 주최한 '나의 시 나의 인생' 문학특강 가을편이 19일 오전 11시부터 1시간동안 뉴스N제주 스타디움(제주시 중앙로 253, 5층)에서 김필영 시인이자 평론가를 초대해 특강을 가졌다.
김필영 시인, 평론가

『가장 슬픈 존재에 대한 응시, 인간의 예의』

부모의 임종을 하지 못한 자식이 있기도 하지만, 부모가 운명할 때에 임종할 수 있는‘종신자식’은 따로 있다고 한다.『사례편람(四禮便覽)』을 보면, 임종을 두고서“아버지라면 남자의 무릎을 베고, 어머니라면 여자의 손에서 숨을 거두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부모를 잃은 슬픔 때문에 정황이 없고 부모를 붙들고 우는 일이 보통이어서 이 예법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 임종은 친밀한 관계에 있어 윤리적 책무이자 특권일 수 있다. 문태준 시인의 시에서 우리가 들여다볼 수 있는“임종”은 어떤 임종인가?

첫 행은 임종하는 대상을 “당신”이라 지칭하고 있다. “당신은 나조차 알아보지 못”한다는 행간의“나조차”라는 한탄에서 알 수 있듯, 가장 가까운 존재인 화자를 운명하려는 존재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프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맨 먼저 알아봐야 할 존재, 부모 중 한 분이거나 배우자일 수 있는 존재가 운명을 고하고 있다. 그러나 지구에 존재하는 그 누구도 분신일 수 있는 존재가 운명하는 순간에 그 곁에서 시를 쓸 수 없음을 생각할 때, 이 시는 사별 후 애절한 추모의 기억으로 행간을 써 내려같음이 자명하다.

이제 2~3행 표현은 한 인간이 삶을 놓게 될 때, 얼마나 처참하고 피폐한 몰골로 무너져 가는지 알게 한다. “아주 가벼운 이불을 덮고 있”는 존재는 공기의 압력마저도 무거운 듯 누워있다. 불길이 다 꺼져버린“한 층의 재가 당신의 몸을 덮은 듯”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행간은 화자가 운명의 순간을 맞이하는 존재인 죽어가는 껍데기 속으로 임종체험을 하듯 들어가 임종의 당사자가 되어 재현해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4~5행에 이르러 비로소 시의 앵글은 멸실해가는 자의 얼굴을‘클로즈 업’시킨다. “눈도 입도 코도 가늘어지고 작아지고 낮아”진 얼굴은 어떤 얼굴인가? 시각, 언어기능, 미각, 후각 등 오감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사람의 얼굴이다.

외적 영향으로부터 어떠한 반응도 할 수 없는‘표현력을 상실한 존재’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눈을 통해 들어오는 사물에 대한 정보가 아무런 소용이 없을 때, 바라보고 느껴지는 것을 입으로 말 할 수 없을 때, 호흡할 때 마다 코로 들어오는 공기에서 타자의 향기와 냄새를 맡을 수 없을 때, 얼굴의 모든 근육과 신경질서는 흐트러져 있다.

무수한 인간이 이런 표정으로 무너져 갈 때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남은 자들의 가슴엔 강물이 멈추곤 했다. 이 얼굴이야말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얼굴 중 가장‘슬픈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준비 없는 별리가 코앞에 다가오고 있다. “서리가 빛에 차차 마르듯이 숨결이 마르고 있”기 때문이다. 호흡소리도 들을 수 없고 맥이 잡히지 않는 박동으로“당신은 평범해지고 희미해”져 간다. 임종을 하는 자들이‘당신’이라는 존재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임종 당사자가 남은 자들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세상에 홀로 와 사랑하는 이들을 두고 “혼자의 몸이 된 당신을 보”며“오래 잊지 말자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지금 마지막으로 보는 당신의“가장 슬픈 얼굴”, 그 존재의 대한 응시가 죽음을 현생의 원리로 받아들이는 인간으로서의 예의이며, 상호 응시자로서“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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