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63)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숲이 만난 세상
[김필영 시문학 칼럼](63)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숲이 만난 세상
  • 뉴스N제주
  • 승인 2023.09.23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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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김선진 시집, 숲이 만난 세상: 시문학시인선 416) 14쪽, 숲이 만난 세상

숲이 만난 세상

김선진

나는 한 곳에 뿌리를 내리면
언제나 그곳에서 평생을 보내지
늘 흙 속에 발을 담그고
아침 저녁으로 변해가는
카멜레온 세상을 눈이 아프게 보고 있지
세상은 무엇이 그리 바빠
늘 대문 밖 소음에 허둥댈까
쫓으면서 쫓겨가다
쫓기면서 쫓아가면
터널 같은 세상을 벗어날 수 있을까
춥고 어두워도
진득하니 한 곳에 뿌리를 내린다면
나처럼 무성한 숲을 이루지
나는 사지를 뻗으면 뻗은 만큼
하늘과 바람과 비를 만나고
거리낌 없이
온몸 가득 품어 주는 햇살도 자주 만나지.
어느 날 세상이 숲을 만나
아주 조신하게 머리를 조아렸다네.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숲을 통한 현대인에 대한 고요한 위로』

한 경전의 창조기록에는‘초목을 창조한 다음 동물과 사람을 창조하였다’고 되어있다. 만약 그 순서가 바뀌었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은 산소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므로 산소를 만들어주는 나무가 없다면 사람도 존재할 수 없다고 볼 때, 사람은 나무에게 생명을 빚지고 있다할 수 있다. 김선진 시인의 시에서 매카니즘 문명에서 허덕이는 현대인을 바라보고 보내는 고요한 위로를 숲의 이야기를 통해 들어본다.

이 시의 화자는 숲의 나무이다. 나무는“나는 한 곳에 뿌리를 내리면 언제나 그곳에서 평생을 보내지”라는 화두로 자신의 존재적 위치를 알린다. 나무의 씨가 발아하면 1차뿌리는 씨에서 싹이 나올 때 맨 처음 나오는 기관으로 땅속으로 자라 어린 나무를 고정시킨다. 어린뿌리가 자라 원뿌리[主根]로 되며 여기에서 곁뿌리인 2차뿌리가 생기는 원뿌리계를 이루고 나무는 평생의 터전을 잡는다.

이제 나무는 존재를 위해 흙 속에 발을 담그고 사람의 일상을 바라본다. 그러나 나무가 바라본 현대인이 모습은 결코 행복한 모습이 아니다. “아침저녁으로 변해가는 카멜레온 세상을 눈이 아프게 보”게 되기 때문이다.

나무가 마음 아파하며 바라보는 현대인의 상황은 어떤 상황인가. 초고속으로 변화하는 물질문명의 소용돌이에 대처해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이다. 나무처럼 물과 무기염류를 흡수하려고 뿌리털을 부단히 뻗어 물과 물에 녹아 있는 무기염류를 흡수하듯 더 깊고 더 넓게 우리 앞에 주어진 사명들에 진솔하게 다가가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아파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보는 나무의 마음은 “무엇이 그리 바빠 늘 대문 밖 소음에 허둥댈까”안타깝기만 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먹이를 벌려고 출근해야 하는 가장과 배움의 과정에 있는 자녀와 뒷바라지하는 주부가 전쟁을 치르듯 바쁜 일상이 시작된다.

삶의 기준은 자기에게 있지 않고 대문 밖 유행 속에 있다. 나무가 바라보는 세상엔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현대인은 태어나자마자 벗어날 수 없는 일등제일주의의 터널에 발을 들여 놓는다. “쫓으면서 쫓겨가다, 쫓기면서 쫓아가면 터널 같은 세상을 벗어날 수 있을까?”

시의 결구에 이르러 나무는 기도하듯 자신의 체험으로 얻은 해결책을 내어 놓는다, “춥고 어두워도 진득하니 한 곳에 뿌리를 내린다면... 무성한 숲을” 이룰 수 있다고, “사지를 뻗으면 뻗은 만큼 하늘과 바람과 비를 만나고 거리낌 없이 온몸 가득 품어 주는 햇살도 자주”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춥고 어두워도 진득하니 우리가 한곳에 뿌리를” 내리는 일은 무엇일까? 나무의 뿌리가 지표에 머무르지 않고 심층적으로 파고들어 바위틈을 피해 물길을 찾듯 꾸준한 탐구와 도전과 각고의 노력을 계속 추진하는 것일 수 있다. “사지를 뻗는 것은 무엇일까? 움츠리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고 내가 먼저 남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비바람을 견뎌내면서 팔을 뻗어 숲의 나무들이 잎을 틔우고 꽃을 향기롭게 피우듯 우리의 생이 향기로울 수 있고, 튼실한 열매를 맺게 될 때, “어느 날 세상이 숲을 만나 아주 조신하게 머리를 조아”리며 숲이 주는 위로에 감사할 날이 먼 훗날이 아니라 바로 지금이기를 시인은 숲의 나무라는 화자를 통해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위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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