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65)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꽃잎
[김필영 시문학 칼럼](65)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꽃잎
  • 뉴스N제주
  • 승인 2023.10.07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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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복효근 시집, 따뜻한 외면 : 2013. 실천시선) 16쪽, 꽃잎)

꽃잎

복효근

국물이 뜨거워지자

입을 쩍 벌린 바지락 속살에

새끼손톱만 한 어린 게가 묻혀 있다

제집으로 알고 기어든 어린 게의 행방을 고자질하지 않으려

바지락은 마지막까지 입을 꼭 다물었겠지

뜨거운 국물이 제 입을 열어 젖히려하자

속살 더 깊이 어린 게를 품었을 거야

비릿한 양수냄새 속으로 유영해 들어가려는

어린 게를 다독이며

꼭 다문 복화술로 자장가라도 불렀을라나

이쯤이면 좋겠어 한소끔 꿈이라도 꿀래

어린 게의 잠투정이 잦아들자

지난밤 바다의 사연을 읽어보라는 듯

바지락은 책 표지를 활짝 펼쳐 보인다.

책갈피에 끼워놓은 꽃잎같이

앞발 하나 다치지 않은 홍조

바지락이 흘렸을 눈물 같은 것으로

한 대접 바다가 짜다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저항 없는 죽음, 가장 아름다운 마침의 빛깔』

죽음이란 우주적 관점으로 본다면 잠자는 것이라고 오래된 경전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잠과 같은 죽음을 보는 이는 누구나 비통함으로 눈물을 흘린다. 2008년 중국의 쓰촨성(四川省)에 전대미문의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붕괴된 건물 틈에 낀 한 여인이 압사 직전에 가까스로 구조되었다. 건물 잔해에 깔려 숨져가던 여인의 잔뜩 웅크린 품 안에는 눈이 해맑은 아이가 안겨있었는데 아이는 다친 곳 하나 없이 건강하였다. 모든 생명이 태어나서 마칠 때 어떤 빛깔일까? 복효근 시인의 시를 통해 또 다른 생명의 멈춤, 그 마침의 빛깔을 들여다본다.

시의 첫 연은 바지락을 솥에 넣고 국을 끓이는 장면이 펼쳐진다. “국물이 뜨거워지자/ 입을 쩍 벌린 바지락 속살에/ 새끼손톱만 한 어린 게가 묻혀 있”음을 소개하며 시작된다. 국을 끓이는 사람의 행위가 바지락에겐 잔인한 살상행위로 비춰지는 것은 바지락 몸속에 잠든‘어린 꽃게’로 인해 더욱 강조되고 있다.

행간은 아름다운 서정이 절창으로 펼쳐지지만 끓는 국물이 고문으로 가해지는 상황은 처절하기만 하다. “제집으로 알고 기어든 어린 게의 행방을 고자질하지 않으려/ 바지락은 마지막까지 입을 꼭 다물었겠지”만 “뜨거운 국물이 제 입을 열어젖히려”고 압박을 가할 때에 바지락은 “속살 더 깊이 어린 게를 품었을” 것이다. “비릿한 양수냄새 속으로 유영해 들어가려는/ 어린 게를 다독이며/ 꼭 다문 복화술로 자장가라도 불렀을”지 모른다.

바닷가 풍경을 회상해보자면, 바닷가 개펄에 마실 나왔던 어린 게가 갑자기 거센 파도가 밀려들자 소나기 피하러 원두막으로 뛰어든 소녀처럼 바지락 속으로 숨어들었을 것이다. 먼 바다에서 달려드는 파도에 어린 게가 떠내려 갈까봐 입을 꼭 다물고 바지락조개가 아기 게를 꼭 안았을 때, 안으면 안을수록 아기 게의 뾰족한 손톱은 속살을 파고 들어올 때, 바지락의 속살은 얼마나 아팠을까?

암울하고 질퍽거리는 세상이라는 개펄에서 예상치 못한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우리는 어버이 품안으로 숨어들곤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의 날카로운 손톱이 부모의 가슴을 파고 들 때 우리를 그러안으시던 어버이의 가슴은 얼마나 아리셨을까?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깨달을 무렵 우리 곁에 부모는 안 계신다. 부모가 가꾸다 가신 세상에서 우리는 어느 품으로 숨어들어 꽃잎처럼 잠들 수 있을까?

대자연은 우리의 부모와 같다. 우리가 걷는 길에 밟히는 흙에게, 발길에 채인 돌멩이에게, 내가 앉은 벤치아래 나로 인해 응달에 살게 된 풀들에게, 내 호흡을 통해 내 가슴으로 들어와 폐부를 정화하고 오염된 공기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폭풍우를 몰고 파도가 밀려오듯 예기치 못하게 언젠가는 우리도 생의 종착역에 다다르게 될지 모를 일이다.

우리의 마침의 빛깔은 어떤 색일까? “책갈피에 끼워놓은 꽃잎같이/ 앞발 하나 다치지 않은 홍조”를 띠고 바지락의 품에 안긴 생명의 마침은 아름답다. 대자연의 일원으로 호흡을 거둘 때 바지락 속의 어린 게처럼 꽃잎으로 눈감을 수 있다면 자연은 우리를 바지락이 책 표지를 펼쳐 보이듯, 책갈피에 끼워놓은 꽃잎같이 앞발 하나 다치지 않게 안아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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