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56)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어둠의 산문
[김필영 시문학 칼럼](56)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어둠의 산문
  • 뉴스N제주
  • 승인 2023.08.05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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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박주택시집, 또 하나의 지구가 필요할 때 : 문학과 지성 시인선436) 16쪽, 어둠의 산문

어둠의 산문

박주택

어둠을 뚫어지게 바라보니 어둠도 뚫어지게 바라본다
별이 빛으로 반짝이기까지 낮은 무엇의 배경이 되었을까
어둠이, 어둠이 되었을 때
그 배경으로 잠이 들고 말도 잠을 잔다
말이 잠들지 않았다면 붉은 말들은 무엇을 만들어 낼 것인가
어둠 속으로 한 발자국 걸어가는 동안
어둠이 한 발자국 걸어온다
어둠은 낮에게 어둠에 가깝게 보일 때까지
자신을 말하지 않고도 낮의 것을 받아들인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검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어둠이 키우는 것은 대개 마른 것들
벌어진 살에 쓸리는 것들
어둠 속에서 어둠의 숨을 듣는다
어둠에게 서서 어깨에 얹는 손을 본다
어둠이 깊은 것으로 자신을 만들어
모든 것의 배경이 되는 것을 본다
수많은 별이 빛날 때까지
수많은 말이 잠들 때까지
수많은 마음이 잠들 때까지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어둠, 모든 존재들의 깊고 깊은 배경』

고요를 즐기는 이들은 밤을 좋아한다. 밤이 와야만 반드시 찾아오는 어둠의 세계를 만날 수 있으며 가장 깊은 고요는 어둠속에서 어둠을 바라볼 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고요의 가장 깊은 곳인 어둠의 핵 가까이 다가갈 때 어둠의 실체를 느낄 수 있고 어둠의 소중함을 깨닫게 될 수 있다. 박주택 시인의「어둠의 산문」을 통해 우리의 감지능력으로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 어둠이라는 존재를 만나본다.

첫 행에“어둠을 뚫어지게 바라보니 어둠도 뚫어지게 바라본다.”는 상황전개로 화자와 어둠은 서로 밀착된 서선을 교환하며 맞선을 보는 상대처럼 조우하게 된다. 이는 어둠을 바라보는 기본자세를 알려준다.

“뚫어지게 바라본다.” 는 것은 어떤 시선을 의미하는가? 낮이 아닌 밤의 어둠을 뚫어질 만큼 강렬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은 시선의 발산을 말함이 아니다. 우리 눈의 망막의 조리개는 어둠 속에서 더 넓게 열린다는 눈의 자연적 기능을 생각할 때 동공을 활짝 여는 것에 더하여 마음과 정신의 눈마저 활짝 열고 어둠을 맞이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낮의 세상이 밤에 이르러 어두워질 때 어둠을 통해 먼 은하에서 출발한 별빛이 망막에 하나 둘 착상된다. “별이 빛으로 반짝이기까지 낮은 무엇의 배경이 되었을까”라는 표현은 의문이 생겨서 나온 질문이 아니라 감탄적 표현이다.

장엄하고도 광활하게 펼쳐진 어둠만이 제공할 수 있는 대낮의 광휘에 가려진 지구별보다 웅장한 은하계가 드러나게 될 때, 어둠의 위용은 드러난다. 빛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어둠의 탁본들임을 알게 하는 순간이다.

“어둠이, 어둠이 되었을 때 그 배경으로 잠이 들고 말도 잠을 잔다.”는 행간에서 어둠은 모든 상황의 정지이며, 쉼이며, 묵언임을 일깨워준다. “말이 잠들지 않았다면” 붉은 말들은 아무것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다. 말이 잠들 수 있는 어둠의 침묵 속에서 꿈을 꾸고 묵상한 붉은 말들은 희망과 용기를, 사랑과 평화를 만들어낸다.

이제 화자는 “어둠 속으로 한 발자국 걸어가는 동안 어둠이 한 발자국 걸어온다.”고 함으로 어둠 가까이 접근해본다. 이러한 상호 접근법은 상대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가까이 다가서지 않고 서로 화해하지 않으려 하는 현대인들의 행동양식에 경종을 울린다.

그리고 “어둠은 낮에게 어둠에 가깝게 보일 때까지 자신을 말하지 않고도 낮의 것을 받아들인다.”고 함으로 어둠의 무한한 포용력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검을 수가 있단 말인가”라며 그 증거를 제시한다.

시의 종반에 이르러 화자는 “어둠 속에서 어둠의 숨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어둠 가까이 다가선다. 어둠이 탁본하듯 우리가 다가섬을 수용해줄 수 있음은 우리가 어둠과 하나가 되려함을 받아들이는 것임을 생각할 때, 이는 모든 것 앞에 자신을 비우고 다가서보라는 어둠이 주는 메시지이다. 화자는 어둠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어둠이 깊은 것으로 자신을 만들어 모든 것의 배경이 되”듯 우리도 어둠처럼 자신을 비워 깊고 깊은 배경처럼 다가설 수 있을까? 사물과 모든 사람 사이에서 어둠처럼 배경이 되어줄 수는 없을까? “수많은 별이 빛날 때까지, 수많은 말이 잠들 때까지, 수많은 마음이 잠들 때까지”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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