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52)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버려진 밥상을 리폼하다
[김필영 시문학 칼럼](52)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버려진 밥상을 리폼하다
  • 뉴스N제주
  • 승인 2023.07.08 10: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김순진 시,『한국현대시』2017년 상반기호. 121쪽, 버려진 밥상을 리폼하다

버려진 밥상을 리폼하다

김순진

이사 가는 집 벽 한켠에 밥상하나 버려져 있다
군데군데 상처가 나고 다리가 삐걱거리는 밥상
한 식구의 생사가 저곳에서 해결되었으리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밥 달라고 아우성치고
어미가 고작 계란 후라이를 지져내면 아이들은 최고의 반찬을 대했으리
뚝뚝 흘리는 자장면 면발과 밥풀들을 받아내면서
맨날 김치뿐이라는 투정이 아이를 위로 위로 밀어올렸으리
때로는 실직한 가장이 비통한 술잔을 기울이면
아내는 옆에서 말없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바라보았으리
생일케이크가 수도 없이 올라가고
축가를 부르며 박수를 치는 고사리손에 축복이 내렸으리
문득 그 가계의 숟가락 부딪는 소리가 들려온다
긴 장대를 일사분란하게 두들기는 한 부족의 축제가 들려온다
숲을 이루던 한 나무의 생을 외면할 수 없어
누가 볼까 슬쩍 가져다가 줄을 두르고 종이를 붙여 리폼한다
하여 나는 책이 된 나무와 책꽂이가 된 나무와 책상이 된 나무와
찻상이 된 나무의 저 아늑한 숲에서 오래오래 살기로 한다.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버려진 밥상으로 반추해보는 우리의 밥상과 삶』

인간의 의식주를 위한 가구 중‘밥상’만큼 생활과 밀접한 가구도 드물다. 끼니때마다 밥상을 대하며 살아가니 반려동물보다 밥상은 평생을 사는 동지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밥상은 역사와 문화의 변천에 따라 모양과 제작공법이 달리하며 사용하는 이의 신분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해 왔다. 우리는 평생을 살며 얼마나 많은 밥상을 만나고 또 헤어질까? 김순진 시인이‘버려진 밥상’을 보고 사유한 밥상에 머물러본다.

화자는“이사 가는 집 벽 한켠에 밥상하나 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주목하게 된다. 흔히 남이 버린 폐품에 애착을 갖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나 화자는“군데군데 상처가 나고 다리가 삐걱거리는 밥상”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밥상’이라는 폐품을 통해“한 식구의 생사가 저곳에서 해결 되었”을 밥상의 이력을 반추하게 된다.

화자는 유년시절부터의 목격했던 밥상 위에서 어머니와 아이들의 생을 반추하게 된다. 자신이 경험했던 밥상을 회상했을까?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밥 달라고 아우성치고/ 어미가 고작 계란 후라이를 지져내면 아이들은 최고의 반찬을 대했”던 가난과 배고픔이 한 시대를 지배했던 모습을 소개한다.

어떤 어미가 반찬 한가지만으로 자식을 먹이려 했겠는가? 그렇기에 아이들 앞에 차려진‘가난한 밥상’에 대하여 밥상도, 그 밥상을 미안한 마음으로 차려낸 우리의 어머니도 결코 죄스러운 것이 아니라 성스럽다.

밥상은 반찬을 차려놓고 먹기 전에는 깨끗하지만, 사람이 먹고 난 밥상은 걸레만큼이나 수난을 겪는다. “뚝뚝 흘리는 자장면 면발과 밥풀들을 받아내면서”지저분해지고 오물을 받아내며 칠이 다 벗겨져 나무판자의 알몸이 드러날 때까지 온몸을 펼쳐 상을 차리게 한다.

행간에 등장하는 밥상처럼, 밥상은 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한 가족의 삶과 함께 한다. 음식을 준비하고 차리는 이와 함께 온갖 반찬투정을 받아내며, 때로는 아직 멀쩡한 밥상도 인내심이 부족한 이의 횡포로 다리가 부러지기도 하고 모서리가 깨지기도 한다.

화자는 이제 현대인과 함께해온 또 다른 밥상을 조명한다. “실직한 가장이 비통한 술잔을 기울이면/ 아내는 옆에서 말없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바라보았”던 밥상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 밥상은‘밥상’이 아니라‘술상’이라 하겠다. 바로 우리시대의 실직하고도 가족에게는 말 못하고, 안주도 변변치 않은 상에서 쓴 술을 따라 마시는 가장과 함께하는 밥상의 모습은 애처롭다. 상을 치우는 아내의 눈물방울이 그 밥상 위에 가문 날의 빗방울처럼 목마르게 떨어졌을 것이다.

시대에 따라 생일케이크가 올려 지거나 축제 상으로 펼쳐져 기쁨을 나누는 상이 되기도 했을 밥상의 고향은 숲이었다.

이 시의 반전이 여기에 있다.

밥상이 한 때 아름드리 나무였음을 기억해낸 화자는“숲을 이루던 한 나무의 생을 외면할 수 없어/ 누가 볼까 슬쩍 가져다가 줄을 두르고 종이를 붙여 리폼한다.”

버려졌던 밥상이 더는 외롭지 않게 “책이 된 나무와 책꽂이가 된 나무와 책상이 된 나무와 찻상이 된 나무를 발견하게 된다. ‘버려진 밥상’이 맺어준 목방사우(木房四友)와 더불어 “아늑한 숲에서 오래오래 살기로 한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