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47)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꽃구경
[김필영 시문학 칼럼](47)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꽃구경
  • 뉴스N제주
  • 승인 2023.06.03 12: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최문자 시집, 『문학동네 시인선』071. 파의 목소리, 22쪽. 꽃구경

꽃구경

최문자

1

꽃은 몇 겹으로 일어나는 슬픔을 가졌으니 푸른 들개의 눈을 달고 들개처럼 울고 싶었는지 몰라 저 불안전한 꽃잎 하나 만으로 죽음도 환할 수 있으니 저 얇은 찢어짐 하나 가지고 우울한 우물을 파낼 수 있으니 이게 바람대신 울어주는 창호지 문인지 몰라 꽃은 죽고 나무만 살아있으니 나무속에 끓고 있던 눈물의 일부일지 몰라 검은 점으로 부서졌다가 재가 되는 꽃의 마지막 뼈일지 몰라 밤새 꽃을 내다 버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 죽은 동그라미의 질감으로 바람에게 끌려가는 소리 간지러웠던 피 모두 흘려버리고 매운 꽃나무 뿌리를 다시 찾아가는 순간일지 몰라

2

꽃들이 꽃 한 송이 피지 않는 공허한 내 등뼈를 구경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곳에 꽃이 없어졌을까 언제부터 이곳에 이처럼 딱딱한 굵은 슬픔 한 줄 그어져 있었을까

3

어떤 봄날에 꽃 보러 가는데 불현듯 배가 고팠다 배고프면 위험한데 깜깜한데 눈 먼 푸른 박쥐처럼 더러운 바닥에 엎드리는데 허기져도 꽃은 여전히 꽃이 되고 있었다 모른 체 하고 하루씩 하루씩 꽃이 되고 있었다

4

그동안 산맥과 구름 사이에 너무나 많은 꽃잎을 날렸다 어떤 슬픔인지도 모르는 그걸 멈추고 거기다 너무나 많은 못을 박았다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꽃과 꽃잎으로 승화된 생, 슬픔과 고통의 편린들』

구경이라는 말은‘어떤 것에 흥미나 관심을 가지고 본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한 생애를 통해 무수한 것들을 구경하며 살아간다. 예술 공연관람이나 영화 관람이나 각종 전람회를 관람하는 것 등도‘구경’하는 일에 속하는 것이다. 대자연을 참관하거나 계절의 변화 등을 통해서 구경할 수 있는 모습들은 경이롭다. 사람에게 아름다움과 향기를 느끼게 하는 “꽃구경”은 어떠한가? 최문자 시인의 시를 통하여 ‘꽃구경’의 관객이 되어본다.

시의 행간 어디에도“꽃구경”을 할 꽃의 이름은 없다. 그러면 어떤 꽃일까? 첫 행은, “꽃은 몇 겹으로 일어나는 슬픔을 가졌”다고 알려준다.

그러나 몇 겹의 슬픔을 가진 것만으로 꽃의 이름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것’과 동의어인 “몰라”라는 행간의 거듭되는 시어에 어떤 실마리가 있을 것 같다.

그 꽃이 “푸른 들개의 눈을 달고 들개처럼 울고 싶었”다면, “꽃잎 하나 만으로 죽음도 환할 수 있”다면, “바람대신 울어주는 창호지 문인지 몰라”죽을 수 있다면, 꽃에게는 과거가 있었고, 고통이 있었고, 피가 있었다. 그렇다면 꽃은 어쩌면 우리의‘생’의 일부 또는 전부일 수 있음을 가늠하게 한다.

‘꽃’이라는 시어를 다른 시어로 대체하여 읽어본다. 꿈, 사랑, 詩, 어떤 시어를 넣어도 어색하지 않다. 그렇다면 그 꽃은 화자의 영혼이자 그 영혼이 살아온 한 생(生)임을 가늠할 수 있다.

화자는 자신의 생을 꽃구경하듯 구경하기 위해 이제 자신 속에서 빠져나와 반추한다. 꽃잎의 겹겹마다 슬픔으로 절망해야하는 순간들을 끓는 나무 안의 눈물을 삼키며 “간지러웠던 피 모두 흘려버리고 매운 꽃나무 뿌리를 다시 찾아가는”, 그리하여 다시 모종을 심어 꽃을 보고자 한다.

2연에서 반추되는 다시 돌아본 자신의 모습은 절망의 꽃이다. “꽃들이 꽃 한 송이 피지 않는 공허한 내 등뼈를”구경하고 있는 자신을 본다. 우연처럼 비춰지는 그 꽃구경은 자신이라는 아픈 존재의 또 다른 발견이다.

꽃이 피었던 곳, 존재의 중심인 등뼈에 꽃은 없어지고 공허, 즉 빔의 상태가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여백이라기보다는 슬픔과 고통이 핥고 간 상실의 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언제부터 이곳에 이처럼 딱딱한 굵은 슬픔 한 줄 그어져 있다"는 표현에서 알 수 없는 시간에 삶의 흔적들이 슬픔의 상처로 피어있음을 본다.

이제 3연에서 화자는 2연보다 더 먼 시간의 공간으로 되돌아간다. “어떤 봄날에 꽃 보러”가는 여정이 펼쳐진 과거 속의 꽃을 피우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 아픔의 시간들은 배고픔으로 고통스러웠고 위험스러웠다. 내일을 알 수 없는 흑암의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눈 먼 푸른 박쥐처럼 더러운 바닥에 엎드리는데 허기져도 꽃은 여전히 꽃이 되고 있었다. 모른 체 하고 하루씩 하루씩 꽃이 되고 있었”던 시간들은 처절했지만 진질한 개화이다.

4연에 이르러 화자는 1,2,3연의 꽃피우기와 꽃구경에 대한 생의 여정에 피운 꽃에 대한 회한을 정리한다. “그동안 산맥과 구름 사이에 너무나 많은 꽃잎을 날렸다.”고 하고 있다. 여정의 굴곡이 은유된 ‘산맥’으로, 바람과 열망으로 은유된 듯한 ‘구름’사이에 너무나 많은 슬픔을 날려 보냈음을 술회하고 있다.

“어떤 슬픔인지도 모르는 그걸 멈추고 거기다 너무나 많은 못을 박았”던 우리의 회한을 대신한 시인의 고백이 꽃보다 아름답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