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46)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가끔은 신을
[김필영 시문학 칼럼](46)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가끔은 신을
  • 뉴스N제주
  • 승인 2023.05.27 10: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안혜경 시집,『여기 아닌 어딘가에』<시문학 시인선 434> 37쪽, 가끔은 신을

가끔은 신을
-여기 아닌 어딘가에 · 21

가끔은 신을 만나보고 싶다
신의 옷자락을 흔들고 싶다
질질 끌려가면서도 맹렬히 흔들고 싶다
달아나고 싶을 때
고장난 전철에 앉아 있을 때
늘 다니는 거리에서 길을 잃었을 때
야간산행의 랜턴처럼
깜빡거리는 신호를 만나고 싶다
낮잠에 빠져 있을 때
뜨거운 손길로 강림하셔서
불꽃을 튀기며 한낮의 태양 아래
잠들어 있는 나무를 불살라버리고
타오르는 연기로 빗장을 지른
출구를 온통 막아버린 날들
가끔은 신을 만나고 싶다
미치도록 만나고 싶다
바다의 이야기를 알 수 없을 때
아침 까치의 비명을 알 수 없을 때
잠든 자들 위로 돌덩이가 떨어져 내릴 때
바다가 천둥처럼 몰려오는 곳에서
깊은 잠에 빠져
북소리를 듣지 못하고
제 가슴만 탕탕 치고 있을 때
잠든 자들이 휩쓸려간다
모두 죽어서 떠내려간다
관 속에서도
제 가슴만 탕탕 치고 있을까
제 가슴의 비밀을 모두
자물쇠로 채우고
햇빛의 물결이 얼굴을 씻어내려도
백일몽에 빠져
모두들 잠에서 깨지 않는다
가끔은 신을 만나러 길을 나서고 싶다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존재의 근원적 비애와 불통에 대한 희망 찾기』

암울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를 기쁘게 하는 풍경보다 슬프게 하는 풍경이 많다. 대기환경도, 수질환경도, 토양환경도 더 이상 이대로 간다면 위기의 상황이다.

보건환경과 현대의학이 첨단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나 신종 질병은 더욱 인류를 괴롭히고 있으며 결국 인류는 죽음이라는 적의 포로가 되어 눈을 감는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안혜경 시인의 시를 통해 인간의 비애와 무기력에 대한 돌파구를 찾아본다.

첫 행은 “가끔은 신을 만나고 싶다.”로 시작된다. 여기서 “가끔은”이란 부사를 사용한 것은 화자가 평소 신神을 절대적으로 추종하는 숭배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신을 향한 갈망은“신의 옷자락을 흔들고 싶다.”고,“질질 끌려가면서도 맹렬히 흔들고 싶다.”고 할 만큼 강렬하다.

그렇게 신을 갈망하는 상황은 어떤 상황에서인가? “달아나고 싶을 때”라든가, “고장 난 전철에 앉아 있을 때”라든가, “늘 다니는 거리에서 길을 잃었을 때”와 같은 일상에서 우연히 겪게 되는 상황에서다.

화자는 현대인이 우연과 필연으로 겪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을 애석해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서 있는 상황이 언제 목적지를 향해 출발할지 모르는‘의식 있는 행동의 정지 상태’임을 강조하고 있음으로 보인다.

그러나 화자는 신에게 극적인 반전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야간산행의 랜턴처럼 깜빡거리는 신호를 만나고 싶다.”고 한다. 이는 신을 절실하게 찾기를 주저하는 태도라기보다는, 오히려 신에게 ‘요행을 바라지 않는 진솔함’이다. 그런 상황은 “연기로 빗장을 지른 출구를 온통 막아버린 날들”이기에, 우리가 겪어온 온갖 시도가 허사가 되어버린 ‘절망의 시기’의 고뇌를 드러내놓고 통곡하는 것이 아니라 측은지심으로 애통해하고 있는 것이다.

피할 수 없이 겪어야 했던 돌파구 없는 상황만이 아니라 3연에서는 또 다른 갈구를 신에게 호소한다. 그 절박함이“미치도록 만나고 싶다”는 외침으로 볼 때, 신이 가진 신격이나 능력을 떠나 ‘희망 찾기“를 염원하는 부르짖음의 대상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상황 중에는 “바다의 이야기를 알 수 없을 때”라고 말하고 있다.

허나 이는 ‘왜 바닷물이 짠지, 바다 속 생물들은 어떻게 생겨났는지’와 같은 바다의 비밀에 대한 사람의 무지에 국한하고 있음만이 아니다. ‘바다’라는 자연계의 존재와‘세상이라는 바다’를 포함한‘알 수 없는 존재’를 통칭하는 상징으로서의 무지와 나약함에 대한 비애에서 나온 겸허한 부르짖음이다.

화자는 3~4연에서 우리가 처한 무지의 한계와 불통의 한계를 슬퍼한다. “아침 까치의 비명을 알 수 없을 때”처럼 “잠든 자들 위로 돌덩이가 떨어져 내 때”처럼, 원치 않아도 알 수 없이 다가오는 재난 앞에 무방비 상태의 우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시기와 우연의 일치로 피했을지라도 결국에는 “바다가 천둥처럼 몰려오는 곳에서” 다가오는 “북소리를 듣지 못하고” “모두 죽어서 떠내려간다.”는 것을 강조한다.

더욱 큰 비애로서, 이 시대의 ‘소통의 부재’를 안타까워한다. 제 가슴의 비밀을 모두 자물쇠로 채우고” “백일몽에 빠져 모두들 잠에서 깨지 않는” 불통의 아픔을 가눌 수 없기에 신을 찾아나서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신을 만나고자 함이 우리의 비애와 무력함에 대한 ‘희망 찾기’라는 의지를 밝히는 것이기에 가끔이라도 “신을 만나러 길을 나서고 싶다”고 설토說吐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