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41)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땅
[김필영 시문학 칼럼](41)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땅
  • 뉴스N제주
  • 승인 2023.04.2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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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안도현 시집, 파꽃 : 시인생각 한국대표명시선 100) 48쪽, 땅)

안도현

내게 땅이 있다면
거기에 나팔꽃을 심으리
때가 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랏빛 나팔소리가
내 귀를 즐겁게 하리
하늘 속으로 덩굴이 애쓰며 손을 내미는 것도
날마다 눈물 젖은 눈으로 바라보리
내게 땅이 있다면
내 아들에게는 한 평도 물려주지 않으리
다만 나팔꽃이 다 피었다 진 자리에
동그랗게 맺힌 꽃씨를 모아
아직 터지지 않은 세계를 주리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생명의 신비를 키우는 흙의 집, 땅』

우리의 원소는 흙과 똑같아서 호흡이 멎게 되어 흙으로 돌아갈 때, 흙이 사는 땅은 우리를 거부감 없이 받아 제 살에 섞는다. 창세 이래, 인간은 서로 땅을 차지하려고 땅을 빼앗는 일의 기록으로 역사를 이어왔지만, 땅은 인간이 그 경계를 어떻게 그어놓든 말이 없다.

땅은 우리에게 과연 무엇일까? 우리에게 땅이 있다면 어떻게 가꾸어 볼까? 안도현 시인의 시를 통해 땅의 또 다른 의미를 들여다본다.

첫 행은 “내게 땅이 있다면”이라는 가정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아 화자는 땅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산업사회로 변환된 근대 이후 개인이 땅을 소유하기는 쉽지 않았다.

요즈음 도시에서는 채소 몇 포기를 심을 땅을 소유하는 것도 어려운 현실이다. 2015년 현재 지구상의 약 72억 5000만 명중에 땅을 개인적으로 소유한 사람보다 소유하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다.

지구의 표면적은 약 5억 1,000만㎢, 중 3억 6,000㎢ 해양면적과 극지 등을 제외하고 사람이 살만한 곳을 차지하려는 싸움은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속되어왔다.

화자가 땅을 소유하고자 하는 면적규모는 얼마나 되는가? “내게 땅이 있다면 거기에 나팔꽃을 심”고 싶다는 것으로 보아 그리 넓은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 배추 같은 채소를 심으려는 텃밭도 아니고 고작 나팔꽃을 심을 땅이니 세상에서 가장 작은 꽃밭이겠다.

흔히 땅을 소유하려는 것은 땅을 가꾸어 작물을 길러 소출을 내려고 하거나 그 땅을 이용하여 용도에 따라 온갖 거처를 지으려 함에 있다. 그러나 화자는 나팔꽃을 심으려 한다. 꽃가게에서 팔지도 않아 심고 가꾸어도 아무도 사지 않을 나팔꽃을 심겠다는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가장 욕심 없는 마음을 은유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나팔꽃을 심은 그곳에서 화자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행간에서는 ”때가 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랏빛 나팔소리가 내 귀를 즐겁게 하리“라고 은유하고 있다.

이는 화자의 나팔꽃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를 가늠케 하는 표현이다. 나팔꽃을 눈으로 보는데 어떻게 귀가 즐거울 수 있는가? 화자가 활짝 핀 나팔꽃을 보는 순간 나팔소리를 들을 수 있음은 눈동자의 동공에 마음의 귀가 있어 마음의 고막으로 듣는 나팔 소리이다.

더욱이 “보랏빛 나팔소리”라는 시어는 소리에도 색깔 있다는 초월적 표현으로 시의 맛을 싱그럽게 하는 하이퍼적 발상이다.

이제 화자는 4차원의 시각으로 나팔꽃을 바라본다. 나팔꽃에서 나팔소리를 듣는 마음의 동공으로 “하늘 속으로 덩굴이 애쓰며 손을 내미는 것”을 본다.

그 여린 몸짓을 화자는 왜 “날마다 눈물 젖은 눈으로 바라”보는가?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을 알리는 나팔소리를 들려주려고, 떠오르는 해를 보려고 몸을 비틀어 좀 더 높은 하늘 속으로 여린 손을 애써 휘젓는 나팔꽃,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루를 열어주는 나팔수를 본 것이다.

시는 결구를 향하며 화자는 “내게 땅이 있다면 내 아들에게는 한 평도 물려주지 않”겠다는 결연한 다짐을 한다. 그토록 소유하고 싶은 땅의 대물림을 부정하는 사유는 무엇인가? “나팔꽃이 다 피었다 진 자리에 동그랗게 맺힌 꽃씨를 모아” 무수한 나팔수들이 잠든 땅보다 가치 있는 소중한 생명이 담긴, 아직 터지지 않은 세계를 안겨주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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