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38)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그림자의 벽
[김필영 시문학 칼럼](38)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그림자의 벽
  • 뉴스N제주
  • 승인 2023.04.0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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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최동호 시집, 수원남문언덕 : 서정시학 서정시 127) 52쪽, 그림자의 벽

그림자의 벽

최동호

어둠 속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밤
적막한 방안에서
꿈속의 나를 불러 벽과 마주한다.
밖에 있는 나 아닌
나를 바라본다
한참 동안 바라보니 그도 말없이
나를 바라보며 말을 걸어온다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대꾸도 하지 않는 나를
안쓰럽다는 듯 위로하는 듯 바라본다
벽면의 그림자가 물결처럼 사라져
새벽이 올 때까지
내 안의 그림자는 나와 함께 이야기하지 못한다.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자아 탐구와 더 큰 세계로의 구도』

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외롭기 때문에 인간이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그 외로움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따라서 더욱 철저히 외로워짐으로 외로움을 벗어나려는 이들은 구도의 길에 나선다.

구도의 길을 가는 이들은 흔히 어둠을 찾는다. 어둠을 상징하는 벽 앞에서 면벽좌선面壁坐禪을 하기도 한다. 사실 어둠을 보거나 보지 않음은 단추 구멍만한 눈을 뜨거나 감는 차이일 수 있으나 사실 밝은 대낮에 눈을 감는 것과 칠흑 같은 밤에 눈을 감는 것은 눈꺼풀 두께에 관계없이 체감하는 차이는 클 수 있다.

적막한 밤의 한 가운데에 어둠을 맞는 것은 끝이 없는 무저갱 앞에 홀로 선 것이므로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공간과 자신 만이 대면하는 상태일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최동호 시인이 사유한 어둠속으로 들어가 본다.

첫 행은 어둠을 화두로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벽을 등장시킨다. “어둠 속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밤 적막한 방안에” 세운 벽이다. 이제 화자는 자아 밖으로 빠져나와 또 다른 자아인 “꿈속의 나를 불러 벽과 마주한다.”는 표현에서 이 벽은 어떤 경계나 차단을 위한 물리적 벽이 아니다.

오히려 어둠속에 그림자도 없이 서있는 벽은 또 다른 자아를 스크린처럼 세우려고 불러낸 벽인 셈이다.

이제 화자는 “밖에 있는 나 아닌 나를 바라본다.” 여기서 밖에 있는 나 아닌 나는 누구인가? 그는 어둠을 통해서 자아가 창조해낸 또 다른 자아라고 할 수 있다.  실존적 자아와 가상적 자아의 조우는 이렇게 이루러진다. “한참 동안 바라보”는 상황의 서술적 전개로 보아 극적인 만남의 정경은 요란하지 않고 정숙하다.

그러나 물리적 시각을 초월한 대면에서 어둠속의 상대인 “그도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모습은 섬뜩하다. 우리가 이렇듯 스스로에게서 빠져나와 그러한 자아를 바라보는 일이 일생에 얼마나 될까?

자아와 또 다른 자아의 존재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의식이나 에너지이 작용은 행간에 표현되어있지 않다. 그러나 밖에 있는 자아가 실존적 “나를 바라보며 말을 걸어온다.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대꾸도 하지 않는 나를 안쓰럽다는 듯 위로하는 듯 바라본다.” 이 장면에서 밖에 있는 자아는 거울 속의 자아일 수 있다는 생각이 짙어진다.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대꾸도 않는 자아는 오감을 느끼는 자아를 위로하는 존재가 등장한다. 그는 누구인가? 바로 꿈이나 희망이라는 존재다. 미지의 생을 밝혀줄 꿈과 희망을 통해 우리는 헛발을 딛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기에 남에게 위로 받고 싶고 심지어 자아에게도 위로 받고 싶은 것이다.

마지막 행간은 화자는 겸손하게도 우리가 실존의 자아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음을 알려주고 있다. 어둠속의 벽도, 그 벽 앞의 자아도 실존적 자아의 환영일지 모른다.

행간에서는 “벽면의 그림자가 물결처럼 사라져 새벽이 올 때까지 내 안의 그림자는 나와 함께 이야기하지 못한다.”고 알려주기 때문이다. 어둠 속 그림자의 벽 앞에서 만약 불을 켠다면 덩그마니 혼자인 자아를 발견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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