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40)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불이(不二), 서로 기대어
[김필영 시문학 칼럼](40)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불이(不二), 서로 기대어
  • 뉴스N제주
  • 승인 2023.04.1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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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이혜선 시집, 새소리 택배 : 문학아카데미시선 273) 32쪽, 불이(不二),서로 기대어

불이(不二), 서로 기대어

이혜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나무에 기대고 있는 산을 보았다
허공에 기대고 있는 나무를 보았다
배를 타고
청산도 가는 길에
물방울에 기대는 하늘을 보았다
갈매기 날개에 기대는 하늘을 보았다
흙은 씨앗에 기대어 피어나고
엄마 젖가슴은 아기에 기대어 자라난다
하루해가 기우는 시간
들녘 끝 잡초들이 서로 어깨를 기대는 것을 보았다
그 어깨 위에 하루살이들이 내려 앉아
깊은 잠들고 있었다.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도치(倒置)적 시안으로 빚은 불이(不二)의 시학』

불이(不二)는 금강경, 반야심경, 법화경 등, 불교의 경전에서 강조하는 가르침으로‘근본이 하나’라는 것을 말한다.

원효(元曉)는 근본 원리의 실상법(實相法)에 입각하여 불변(不變)과 수연(隨緣), 염(染)과 정(淨), 진(眞)과 속(俗), 공(空)과 유(有), 인(人)과 법(法)등이 다 일법(一法) 일심(一心)일리(一理)의 양면일 뿐 원래부터 서로 대립되고 양단된 존재도 이원적 원리도 아니라는 것을 논증했다.

이혜선시인의 시집 『새소리 택배』에‘불이(不二)’를 제목에 달고 은유된 14편의 시편들이 있었다. 그중에「불이(不二),서로 기대어」를 통해‘도치(倒置)적 시안으로 빚은 불이(不二)의 시학’을 들어다본다.

첫 연,“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나무에 기대고 있는 산을 보았다. 허공에 기대고 있는 나무를 보았다.”는 행간에서 시각의 도치(倒置)로 인해 시의 백미를 느낄 수 있다.‘나무가 산에 기대어 있다.

나무가 허공에 기대고 있다.’고 해서‘불이(不二)의 시각’이 아니라 할 수 없으나 산이나 허공이 아닌 나무의 위치에 시각을 두었으므로 은유의 맛이 돋보인다.

2연에서는 “배를 타고 청산도 가는 길에”무한의 공간인‘하늘’이‘물방울’과‘갈매기 날개’에 기대는 것을 보게 된다. 대단한 발견이다. 이는 시공을 초월한 하이퍼적 표현이며, 사물을 바라보는 초미시적 시각이다.

“물방울에 기대는 하늘”이란 은유에 수백 쪽의 논문에 기록된‘물의 순환계’라는 섭리가 함축되어있다. 거대한 바닷물이 상승기류를 타고 하늘로 올라 운하를 이룰 때, 텅 빈 하늘이 구름(물)에 기대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또한 한낱 여린 새에 불과한 갈매기 날개에 무한공간인 하늘이 기댄다는 것은 생명과 그 생명의 영위를 받아 안아 주려는 하늘(대자연)의 섭리를 불이의 시각으로 식별한 것이리라.

이러한 시적 도치현상(倒置現象)의 백미는 3연에서도 볼 수 있다. “흙은 씨앗에 기대어 피어나고 엄마 젖가슴은 아기에 기대어 자라난다.”는 묘사가 그것이다. 어떻게 흙이 씨앗에 기댄다고 할 수 있는가? 생물학적으로 보면 설명이 간단치 않으나‘불이(不二)의 시각’으로 보면 가능하다.

여기서 시인은 지구를 뜻하는‘흙’이라는 거대한 물체와‘씨앗’이라는 지극히 작은 물체를 통해 물성규모를 대비하여 인식의 갈등구조를 만들어 내므로 색다른‘불이(不二)의 묘미를 연출해 낸다.

한 알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게 될 때, 흙은 갈라지고, 지렁이가 꿈틀거리며, 빗물이 스며들어 잠자던 흙이 잠에서 깨어 숨을 쉴 수 있으므로 “흙은 씨앗에 기대어 피어난다.”행간은 역설의 미학이 빛나는 표현이다.

“엄마 젖가슴은 아기에 기대어”어떻게 자라나는가? 엄마와 아기는 본디 모태에서 한 몸이었다. 엄마의 뱃속의 태아의 성장이 시작되는 순간 엄마가슴의 유선(乳腺)은 심지에 불을 밝힌다. 아기에게 가장 엄마젖이 필요할 때 엄마의 젖가슴은 부풀어 오른다.

아기의 입술에, 아기의 볼에, 아기의 고사리 손바닥에 둥근 젖가슴이 기댈 때, 엄마는 가장 행복하다.

이제 시의 종반에 이르러 “하루해가 기우는 시간 들녘 끝 잡초들이 서로 어깨를 기대는 것을”보게 될 때, 우리의 가슴은 무너진다.

한낱 잡초들이 말없이 서로 어깨를 기대고 하나 되어 저녁을 맞이하는 모습에‘등을 돌리고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반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를 살지라도‘불이(不二)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에 잡초들의 어깨 위에 내려와 영원한 평화 속으로 잠드는 하루살이들이 부러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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