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51)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한 자루의 칼
[김필영 시문학 칼럼](51)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한 자루의 칼
  • 뉴스N제주
  • 승인 2023.07.01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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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강정화 시집, 『세상 속의 작은 일』<시문학 시인선 334> 20쪽, 한 자루의 칼

한 자루의 칼
강정화

하나의 가슴을 둘로 갈라야 한다
그리움도 갈라놓아야 하고
남기고 떠난 슬픔
또한 몇 토막을 내어야 하지만
저 혼자 냉랭히 빛 발하는
푸른 서슬이 겁이나
자르고 갈라놓아야 하는 것을
내려치지도 못하고
심장으로 이어진 손
어쩌지 못해
와들와들 떨고만 있다
두 개의 가슴을 여럿 되게 갈라야 한다
동강난 슬픔
한풀 꺾이어
소리로 잠잔다
그리움 또한 몇 가닥으로 갈라놓아야 한다
서슬이 퍼런 칼
들고 보니
더 연약하게 떨리는 가슴
어쩌지 못하고
훤히 되비치는 가슴
세상이 알아버렸으니
속죄자로 눈물 흘린다.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날 없는 관념의 칼』

칼은 용도에 따라 형태와 강도가 다르고 물질성분도 다르다. 채소를 자르거나 어육을 자르는 식품을 다룰 때 쓰는 칼이 있고, 살상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칼도 있다.

칼은 사물을 자르거나 분할하여 가르는 역할을 하지만 칼자루를 쥔 자는 칼의 힘으로 권력이나 부나 욕망을 쟁취하기도 한다. 이러한 물리적인 칼이 아닌 인간의 마음속에도 칼이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칼 중에 강정화 시인이 사유한「한 자루의 칼」을 통해 또 다른 칼의 일면을 들여다본다.

첫 행은“하나의 가슴을 둘로 갈라야 한다.”로 시작된다. 문자적‘가슴’을 둘로 가르는 일이라면 살상을 의미하므로 섬뜩한 일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행간에서“그리움도 갈라놓아야 하고 남기고 떠난 슬픔 또한 몇 토막을 내어야”한다는 것으로 보아 화자가 사용하는 칼은 문자적 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마음속에 의식하고 있는‘내면적 존재에 대한 그리움’과‘남기고 떠난 슬픔’을 갈라놓기 위해 빼어든‘관념적 칼’이다.

칼이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칼을 불에 달구어 날을 서슬이 퍼렇게 벼렸을 때에 가능하다. 그러나 행간에서 화자는“저 혼자 냉랭히 빛 발하는 푸른 서슬이 겁이나 자르고 갈라놓아야 하는 것을 내려치지도 못하고”있다.

더구나 “심장으로 이어진 손 어쩌지 못해 와들와들 떨고만 있다.”화자가 이처럼‘한 자루의 칼’을 가지고 마음대로 휘두르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화자가 갈라야 하는 대상인 그리움과 슬픔의 존재는 바로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갈라놓기 힘든‘하나의 가슴’이 3연에“두 개의 가슴을 여럿 되게 갈라야 한다.”는 표현을 볼 때 어느 사이엔가 “하나의 가슴을 둘로 갈라”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동강난 슬픔 한풀 꺾이어 소리로 잠잔다.”고 하므로 화자는 먼저‘슬픔’을 토막 낸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생을 가로막는 가눌 수 없는 슬픔을 맞으며 스스로의 가슴을 가르고 슬픔을 토막 내고자‘한 자루의 칼’을 빼들고 우리는 얼마나 몸서리치는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며 제 가슴을 가르지 못하고 울부짖으며 칼날의 푸른 서슬이 겁이나 얼마나 떨었던가? 망각의 힘을 빌려“동강난 슬픔 한풀 꺾이어 소리로 잠”재울 수 있을지라도 마지막 연에 이르러 화자에겐 아직 몇 가닥 갈라놓아야 할 것이 남아 있다.

그것은“그리움 또한 몇 가닥으로 갈라놓아야 한다.”는 부르짖음으로 보아 쉽사리 갈라놓을 수 없는‘질긴 그리움임’을 알게 한다. 흘러간 시절의 실개천과 금모래에 부서지던 파도, 조개들의 이야기와 웃음 짓는 눈동자를 기억한다.

아직도 들리는 아버지의 기침소리와 젖은 치맛자락을 추스르던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잊을 수 없다. 돌아가도 그곳에 없는 그리운 이들은 모두 떠나버리고 다시 만날 수 없기에‘칼 한 자루’마음에 세우는 것인지 모른다. 밀어내려 해도 밀려가지 않는 철없음을 “몇 가닥으로 갈라 놓”으려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갈라놓으려 해도“서슬이 퍼런 칼 들고 보니 더 연약하게 떨리는 가슴 어쩌지 못하고 훤히 되비치는 가슴”세상 앞에 감출 수 없음에 속죄의 눈물이 흐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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