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49)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감자꽃 따기
[김필영 시문학 칼럼](49)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감자꽃 따기
  • 뉴스N제주
  • 승인 2023.06.17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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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황학주시집, 사랑할 때와 죽을 때, 2014<창비시선 372> 28쪽)

감자꽃 따기

황학주

네가 내 가슴에 가만히 손을 얹었는지 흰 감자꽃이 피었다
폐교 운동장만 한 눈물이 일군 강설(降雪) 하얗게 피었다
장가가고 시집갈 때
모두들 한번 기립해 울음을 보내준 적이 있는 시간처럼
우리 사이를 살짝 데치듯이 지나가 슬픔이라는 감자가
달리기 시작하고
따다 버린 감자꽃의 내면 중엔 나도 너도 있을 것 같은데
감자는 누가 아프게 감자꽃 꺾으며 뛰어간 발자국
그 많은 날을 다 잊어야 하는, 두고두고 빗물에 파이는 마음일 때
목울대에도 가슴에도 감자가 생겨난다
감자같이 못생긴 흙 묻은 눈물이 넘어온다
우리중 누가 잠들 때나 아플 때처럼
그 많던 감자꽃은 감자의 안쪽으로 가만히 옮겨졌다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사람이라는 꽃의 가슴에 맺히는 열매』

지상에 피는 꽃들은 제각기 다른 향기를 발하고 꽃가루가 수정 되어 열매를 맺는다. 꽃의 피고 짐을 生과 死의 관점에서 보면 꽃은 열매라는 씨앗을 낳고 죽는 것이다.

많은 과일이나 식물은 꽃이 피고 질 때, 꽃받침 위에 열매가 맺히기도 하고, 뿌리를 사람에게 식품으로 제공하는 식물은 꽃은 줄기 끝에서 피워내지만 열매는 흙 속에 알을 낳듯 낳아 기른다. 사람이라는 꽃은 어떤 열매를 맺는가? 황학주 시인이 詩 속으로 보듬어 온‘감자꽃’을 통해 사람이라는 꽃의 열매를 읽는다.

첫 연은 “장가가고 시집갈 때 모두들 한번 기립해 울음을 보내준 적이 있는 시간처럼 폐교 운동장만 한 눈물이 일군 강설(降雪) 하얗게 피었다”라고 우리를 감자꽃이 눈부시게 펼쳐진 감자밭으로 이끈다. 감자꽃은 어떻게 피어날 수 있었을까? 사람이 피우는 꽃은 감동의 눈물로 핀다.

감자라는 식물로 은유된 화자가 “내 가슴에 손을 얹어야만 꽃이 필 수 있다”는 것은 ‘내가 꽃 피울 수 있는 원천은 “너”여야 하고, “너”라는 존재가 내 마음속으로 의미 깊은 온기를 전해주었을 때 꽃이 필 수 있다는 것은 ‘감자꽃’의 발아점이 곧 “너”라는 존재인 것이다.

꽃을 꺾는 것은 무자비한 행위이다. 그러나 2연처럼 감자는 꽃을 따주어야만 한다. 열매들이 맺는 시기에 꽃을 따주어야만 흙속의 작은 씨알들이 굵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호흡하는 동안 “너”라는 존재를 만나 우정과 사랑의 무수한 꽃송이들을 피워 올린다. 감자밭 가득 핀 꽃을 열매도 맺기 전 따주는 일처럼, 너와 내가 함께 멀고 먼 길을 가며 미울 만큼 그립기도 한 “너”라는 존재와 내가 있을 것 같은 무수히 피워 올린 꽃을 따주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우리 사이를 살짝 데치듯이 지나가 슬픔이라는 감자가 달리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흙속에 열린 “감자는 누가 아프게 감자꽃 꺾으며 뛰어간 발자국”인 것이다.

감자가 여물어가는 동안 “너”와 내가 맞이하는 일들엔 “두고두고 빗물에 파이는 마음”으로 “그 많은 날을 다 잊어야 하”는 크나큰 슬픔이 밑들어 울음을 삼킬 때마다 “목울대에도 가슴에도 감자가 생겨“나고, 피안으로 ”너“라는 존재는 떠나가고 ”너“를 잊어야 하는 긍극의 벼랑에 당도한 나는 ”감자같이 못생긴 흙 묻은 눈물“ 같은 죽음이라는 못생긴 감자가 된다.

너와 내가 피워 올린 “그 많던 감자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시의 마지막 연에 다다르면, 따다버린 감자꽃 같은 우리의 인연은 장미보다 아름답게 우리의 가슴에 슬픔이라는 열매로 심겨져 있음을 본다.

그 무수한 감자꽃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 중 누가 잠들 때나 아플 때처럼 감자의 안쪽” 우리의 가슴속에 가만히 옮겨”져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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