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옥 칼럼] 극순간의 예술, 이주의 디카시 감상 9_ 최창균의 디카시 '상생'
[이상옥 칼럼] 극순간의 예술, 이주의 디카시 감상 9_ 최창균의 디카시 '상생'
  • 뉴스N제주
  • 승인 2020.05.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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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옥 시인
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

   상생

     식물아, 너에게 무릎 끓고
     허리 구부렸더니
     너는 나를 일으켜 세우려고
     어떤 망설임도 없이 자라는구나

     
       -최창균

[해설]무릇 모든 예술은 단순한 표면적 사실 그대로 표현하기보다는 개연성 있는 허구를 추구한다. ‘개연성 있는’이라는 것은 피상적 현실을 넘어 숨겨진 삶의 진실을 포착하기 위해서 예술가가 고도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시라는 장르도 이 점에 있어서는 다름이 없다. 물론 디카시도 예외일 수는 없다.

따라서 시도 예술성이 고도화될수록 현실과 거리가 멀어지고 그럴수록 난독성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역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시가 현실과의 거리감을 키워야만 좋은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미적 거리라는 것도 현실과의 적절한 거리 조정에서 드러나는 것이지 무조건 현실과 유리된다고 좋은 시가 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디카시는 일반 문자시에 비해서 현장성이 두드러지는 장르이다.

항상 생생한 현장성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디카시이다. 디카시는 삶의 생생한 현장에서 끌어낸 시라고 해도 좋다.       

오늘 소개하는 디카시는 최창균 시인이 농부로서 몸소 체험한 것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가 개연성 있는 하구라고 하지만 시인의 실제적 체험에 기반한 진실이 묻어 있는 언어만큼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 것은 없다.

이런 실제적 체험에 기반한 리얼리티를 확보할 수 있다면야 굳이 개연성 있는 허구를 추구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상 개연성 있는 허구라는 것도 비록 상상적일지라도 체험을 기반으로 하지 못할 때는 박제된 상상력에 불과하여 그야말로 언어유희로 끝날 수도 있다.   

최창균의 디카시 <상생>은 식물과 농부인 화자와의 관계를 초점화하고 있지만, 여기서 유발하는 환유적 호소력은 인간과 자연,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확대되고 나아가 근원적 존재와의 관계로까지 뻗친다.

실제적인 체험을 기반으로 한 체험적 상상력의 힘을 보여주는 디카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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