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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옥 칼럼] 극순간의 예술, 이주의 디카시 감상 15_ 박주영의 디카시 '늦가을'
[이상옥 칼럼] 극순간의 예술, 이주의 디카시 감상 15_ 박주영의 디카시 '늦가을'
  • 뉴스N제주
  • 승인 2020.06.30 22:2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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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옥 시인
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

늦가을

박주영 시인의 디카시 사진

하강하는 나뭇잎 하나
툭, 던지는 한마디
세상은 모두 순간이라고

- 박주영

[해설] 디카시는 미디어의 진화에 따라 영상과 언술이 결합한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시이다. 디지털 환경 자체를 시 쓰기의 도구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디카시는 디지털 시대의 산물이다.

한국문학사를 보더라도 미디어의 진화와 함께 수많은 장르가 명멸을 거듭해 왔다.

향가만 해도 그렇다. 향가는 향찰로 표기된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로서 서정시다. 신라시대로부터 고려 전기까지 창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시가에 대해서 우리나라 고유의 시가를 지칭하기도 하는 것으로 신라가요 혹은 신라시가라고도 불렸다.

시가라고 함은 한국의 경우 개화기 이전에는 인쇄매체가 발달하지 못한 연고로 입으로 가창되었기 때문에 ‘시’에 노래 ‘가’를 붙인 것이다.

개화기 이후에는 신문, 잡지 등의 종이 인쇄매체의 등장으로 더 이상 시가 가창될 필요가 없어 인쇄돼 읽혀지는 시로써 시가는 노래(歌)와 결별한 것이다.

아무튼 신라 시대 향가가 서정시로 널리 향유됐음을 알려주는 향가집 《삼대목(三代目)》이 실전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현전하는 향가 25수를 통해서 당대 시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전이라 한자의 음과 훈을 빌린 향찰 표기로 당시의 생활 정서를 표현한 것이 향가가 아닌가. 신라의 멸망과 함께 향가도 힘을 잃고 고려시대에는 평민들이 부르던 고려가요가 주류로 등장한다.

시공간이 압축되는 디지털 시대 정신을 반영하는 극순간 멀티 언어 예술로서의 디카시의 장래도 아무도 모른다. 향가처럼 일정한 역할을 다하고는 소멸될지도 모른다.

디카시도 일반 대중들이 적극적으로 향유하면 생명력을 이어갈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디지털 정신을 반영하는 당대의 시로 역사적 유물이 될 것이다.  

다행히 디카시는 본격문학으로 정예 시인들이 향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활문학으로서 일반 대중들도 디카시를 창작하며 시놀이로도 즐기고 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여 뉴스N제주 2020 신춘문예 디카시 부문을 신설하여 공모하였다.

오늘 소개하는 디카시는 당선작인 박주영 시인의 디카시이다. 극순간 멀티 언어 예술로서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나뭇잎 하나가 막 떨어지는 순간을 극명하게 포착하고서 그 순간성을 세상사 모든 것으로 확대하여 메타포하였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은 조락으로 생의 덧없음을 일깨우는 관습적 상징이지만, 이것이 생생한 영상과 함께 보편적 원형상징으로 의미 상승을 일으키는데 방점이 찍힌다.

"세상은 모두 순간"이라는 이 메시지는 새로운 것도 아닌 너무나 익숙한 내용이다. 그 익숙한 메시지가 아, 그렇지 하고 공감하게 하면서 다시금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언술만의 힘도 아니고 사진영상만의 힘도 아니다.  늦가을에 떨어지는 나뭇잎 한 컷이 초점화되고 짧은 언술과 결합하여 하나의 텍스트로써 생의 순간성이라는 메시지로 육화돼 독자의 폐부를 자극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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