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옥 칼럼] 극순간의 예술, 이주의 디카시 감상 5- 박서영의 디카시 '공룡 발자국 화석'
[이상옥 칼럼] 극순간의 예술, 이주의 디카시 감상 5- 박서영의 디카시 '공룡 발자국 화석'
  • 뉴스N제주
  • 승인 2020.04.22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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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옥 시인
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

공룡 발자국 화석

멀리서 온 기억에 발을 넣고
먼 곳의 기억에게로 걸어가 본다
먼 곳의 파도 소리, 먼 곳의
바람 소리, 쿵쿵쿵 발소리 내며
떠나가 버린 먼 곳의 사람에게로

-박서영

[해설]디카시는 사물의 상상력을 초점화하는 것이다. 디카시는 기본적으로 사물의 에이전트가 되고자 한다. 가능하면 사물의 언어를 고스란히 옮겨서 전해주려 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사물의 상상력에 시인의 상상력이 투사되기도 한다.  

디카시의 시인은 견자를 꿈꾼다. 견자의 시인 랭보가 완전한 계시에 의한 비전을 제시하며 사물이 배후에 지니고 있는 의미를 포착하기 위해 일상을 넘어 미지의 세계에 도달하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디카시에서 말하는 견자는 랭보처럼 일상이나 관습적 체계를 깨트리고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존재의 본질에 다가가려고 하는 태도이다.

일상인들이 보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보고 천기를 누설하고자 하는 것이 디카시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지향점이다. 그러나 누가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랭보 같은 천재 시인이 나타나야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박서영 시인은 1968년 경남 고성 출생으로 2018년 2월 3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1995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하고 시집으로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 『좋은 구름』 등을 남겼다. 계간 『디카시』 편집위원을 지냈다. 정말 시를 절대의 가치로 여기며 시인으로 치열한 삶을 살다 요절했다.
 
박서영 시인은 공룡 발자국 화석을 ‘멀리서 온 기억’이라고 호명한다. 백악기의 발자국이니 정말 멀리서 온 기억이 맞다. 시인은 발자국 화석을 밟으며 먼 곳의 기억에게로 걸어간다. 사물의 상상력에 시인 자신을 의탁하는 것이다. 먼 곳의 파도 소리, 먼 곳의 바람 소리 쿵쿵쿵 발소리 내며 떠나가 버린 먼 곳의 공룡의 발자국을 따라 떠나버린 먼 곳의 사람에게로 걸어간다.

떠난 사람과 백악기의 공룡을 동일시함으로써 이별의 아픔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이 디카시에는사물의 상상력이 곧 시인의 상상력으로 환치된다. 드러나지 않는 사물의 상상력을 포착하여 거기에 시인의 이별의 아픔을 투영시킨 것이다.

-이상옥(시인, 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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