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옥 칼럼]극순간의 예술, 이주의 디카시 감상 7- 김영식의 디카시 '물가자미 책'
[이상옥 칼럼]극순간의 예술, 이주의 디카시 감상 7- 김영식의 디카시 '물가자미 책'
  • 뉴스N제주
  • 승인 2020.05.0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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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옥 시인
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

     물가자미 책    

심해深海가 늙은 수부에게 헌정한 수상집이다
     표지는 거친 파도로 되어 있고 단행본이다
     괭이부리갈매기가 짧은 서시를 덧붙였다
     그의 아내가 두 개의 대발에 가지런히 펼쳐놓았다
     물가자미 떼가 행간 사이로 오래 헤엄쳐 다닌다

              -김영식

[해설]디카시의 본질은 극서정 양식에 있다. 디카시는 순간 포착, 순간 언술, 순간 소통을 지향하는 디지털 시대의 최적화된 새로운 시이기 때문이다. 서정시로서 디카시의 운명은 현대시가 잃어버린 순수 서정의 복원에 있다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도 디카시의 언술은 과장해서 말하면 한 줄도 너무 길다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카시도 창작 예술로서 다양한 창작 방법론이 있다. 이점에 있어서는 디카시의 정체성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다양한 창작 방법론의 모색을 시도해야 한다. 좀 조심스러운 얘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서술 디카시도 가능한 것이다. 본격 서정시의 구성 원리는 리듬과 이미지이지만 서정시에 있어서도 이야기적 요소가 있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김준오는 서정시의 이야기 도입 즉 서술시는 사상이나 정서의 객관적 상관물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봤다.

디카시도 이야기가 도입되는 서술 디카시의 가능함을 김영식의 디카시 <물가자미 책>이 잘 보여준다. 이 디카시도 물가자미 책이라는 제목에서 디카시의 특성인 순간 포착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발에 가지런히 늘려 있는 물가자미를 보고 순간 저것은 책이라고 인식한 것이다. 제목 아래의 언술은 왜 물가자미 책인지를 진술하고 있다.

물가자미는 늙은 수부가 바다에서 잡은 것이다. 늙은 수부는 평생을 바다에서 뱃사람으로 고기를 잡으며 가족을 부양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물가자미가 늘려 있는 대발 건너편에는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저 푸른 바다에서 늙은 수부는 괭이부리갈매기와 함께 거친 파도와 싸우며 고기를 잡았던 것이다.

심해가 늙은 수부에게 헌정한 수상집 물가자미 책은 표지가 거친 파도로 된 단행본인데, 괭이부리갈매기가 울음으로 짧은 서시를 덧붙이고, 그의 아내가 자랑스럽게 펼쳐 놓은 책에는 물가자미 떼가 행간 사이로 오래 헤엄쳐 다닌다.

이 디카시는 늙은 수부의 그간의 노고에 대한 심해의 헌정 수상집이면서, 시인이 늙은 수부에게 바치는 헌시이기도 하다. 이 디카시에서는 바다와 괭이부리갈매기와 물가자미와 어부 사이에 갈등이나 분열이 없다. 잡고 잡히는 갈등의 관계가 생명의 네트워크 속에서 아름다운 순환과 수용과 동화의 미덕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다. 아마 늙은 수부는 답사로 바다와 물가자미에게 받치는 헌정시를 쓰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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