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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옥 칼럼]극순간의 예술, 이주의 디카시 감상 11_ 홍은택의 디카시 '그물'
[이상옥 칼럼]극순간의 예술, 이주의 디카시 감상 11_ 홍은택의 디카시 '그물'
  • 뉴스N제주
  • 승인 2020.06.03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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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옥 시인
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

     그물

그물
그물

         그물에 걸리는 건 윤회고
         바람으로 드나드는 건 열반인데
         잡아도 보고 잡혀도 봤지만
         그물을 깁는 저 손은 누구인가
                                   -홍은택 


[해설]스승이신 문덕수 선생이 새삼 그립다. 문덕수 선생은 지난 3월 13일 별세하셨다. 문덕수 선생은 생전에 디카시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디카시의 시론 정립에도 힘을 보탰다. 모더니즘 시인답게 시를 바라보는 관점도 개방적이고 전위적이었다. 문덕수 선생은 디카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디카는 ‘디지털카메라’의 준말이다. 우리나라에도 생산되고 있고, 이제는 스마트폰에도 장착되어 있으므로 아이든 어른이든, 누구든 마음만 먹으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과학기기인 이 디지털카메라가 시 쓰기의 주체인가, 아니면 단지 보조기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정답은 주체라고도 할 수 있고 보조기구(원고지나 펜 같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TV나 컴퓨터가 안방에 들어와 있는 판에 과학기기가 시 쓰기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버스, 지하철, 비행기, 승용차 등 인간은 과학기기의 사용이 없으면 생활이 안 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디지털카메라가 시와 결부될 수 있음도 불가피한 시대의 요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에 등 돌려서 현대시를 쓸 수 있습니까?”

혹자는 시는 언어예술로서의 문자 순혈주의로 디카시를 부정하는 분들도 없지 않다. 시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찬반 양론으로 나뉠 소지가 충분히 있다.

디카시는 문덕수 선생의 지적처럼 첨단 과학기기 시스템인 디지털 환경 자체를 시 쓰기의 도구로 활용한 것으로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문학 장르인바, 언어 예술이라는 기존 시의 범주를 확장하여 영상과 문자를 하나의 텍스트로 결합한 멀티 언어 예술이다.

이런 디카시를 디지털 시대의 최적화된 새로운 시 장르로 수용하여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도 등재되고 교과서에도 수록됐다. 또한 대진대학교 인문예술대학에 올해 신설되는 <K- 문화콘텐츠융합전공>에 올 2학기부터 '디지털미디어와 디카시'라는 과목이 개설돼 대학강단에서도 디카시를 정식으로 가르치게 됐다.

이 강좌는 대전대학교 홍은택 교수가 담당한다. 홍은택 교수는  지난해 인도에 네루대학교와 델리대학교 학생들에게 <한국시의 새로운 경향: 디카시>라는 테마로 특강을 함으로써 공식적으로 인도에 처음으로 디카시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네루대학교에서는 한글날 기념 디카시 콘테스트가 열렸다.

오늘 소개하는 홍은택 시인의 디카시 <그물>은 생의 그물의 메타포를 보여준다. 생이라는 그물에 걸리는 건 윤회이고 그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의 자유로움은 열반이라고 언술한다. 화자는 그물 깁는 어부에 동화되어 잡아도 보고 잡혀도 봤다며 고기 잡는 경험을 말하는 것 같지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생의 신산을 다 맛보았다는 갑접 화법으로도 읽을 수 있다. 이 디카시는 생의 그물에서 다시 고기 잡는 그물로 환치되고 다시 생의 그물로 환치되는 역동성을 보이는 가운데 더욱 주목해야 하는 것은 생의 그물을 던져서 인간을 시험하는 그 손길은 누구인가라는 형이상적 질문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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