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남 칼럼](19)내가 꿈꾸고 설계하는 세상 ...아직도 색깔론?
[김택남 칼럼](19)내가 꿈꾸고 설계하는 세상 ...아직도 색깔론?
  • 현달환 국장
  • 승인 2023.09.23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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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이 만난 제주사람, "아, 반갑수다!"
[김택남 자서전]내가 꿈꾸고 설계하는 세상
(주)천마그룹 김택남 회장의 인생 스토리
오일장 나들이 간 김택남 회장(오른쪽)과 양창영 전문
오일장 나들이 간 김택남 회장(오른쪽)과 양창영 전문

요즘, 김택남 회장처럼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집간 딸이 손주를 낳아 보내온 사진을 보면서 하루가 행복할 수 밖에 없다. 아이의 잠자는 모습이나, 움직임 하나하나가 미소와 감동을 주는 게 아이다.

부모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꿈을 꾸고 부모님께 기쁨을 안겨주지만 반성과 각오도 하게 된다. 

그만큼 한 아이의 탄생은 그 집안의 경사지만 마을의 축복이고 한 나라의 큰 경사스러운 일이다. 요즘은 아이를 안 낳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서 인구문제가 큰 걱정거리인데 이에 대한 대비는 인류문제로 봉착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아이를 낳지않으려는 사회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애국자라는 칭호까지 써가면서 축하를 해 주고 있다. 진심으로 아이 탄생을 축하하고 싶다.

우리가 가장 행복한 때는 언제일까?

바로 내 아이의 재롱, 말이나 행동을 보면서 즐거워 한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에 누가 돌을 던지겠는가.

우리 사회를 좀 더 좋은 사회로 만들려면 보는 눈을 달리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생각을 다르게 해야할 것이다.

제주사람들이 가장 버려야 할 말(?)이 있다면 필자는 늘 이렇게 말한다.

"에에~"

자랑하거나 성공한 것에 칭찬해주지 않는 이 단어.

가령, 밭에서 검질(김)을 매는 할머니 두 분이 하는 이야기 도중 한 할머니 손주 자랑을 한다.

"우리 손, 학교에서 수학 100점을 맞아 와서라"고 자랑하면 옆에 할머니는 바로 "에에~"하면서 자신의 손주가 더 나은 것(자랑)을 받은 것을 받아친다. 

제주에 왜 이런 문화 풍토가 자리잡았는지 모르지만 칭찬에 인색하는 것은 사회가 건조하다는 것이다. 가장 없어져야 할 단어라고 생각되면서 우선 칭찬을 마음속에 새길 필요가 있다.

달랑 3500원을 들고 나간 뭍에 나가 끝내 사업체를 일궈낸 김택남 회장은 경험과 자본을 고향에 투자하여 부모님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약속을 지켰다.

제주 토종기업 천마물산과 도민주로 탄생한 제민일보에 투자하고, 이어 천마종합건설 등에 투자했다.

고등학생 때 실습 차 올라간 서울에서 생전 처음 높은 빌딩을 구경하고는 나중에 제주도에도 이런 멋진 빌딩을 짓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상상이 현실이 됐다는 것이다.

남들은 내가 너무 쉽게 꿈을 이룬다고 하지만 사실 정말 멀고 고된 길이었다고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그는 단지하고 싶다고 하지 않고,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품고 살았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정말로 그 일을 하고 싶었다면 그는 그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고 싶다고 말은 하지만 진심으로 그 일을 하고 싶은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고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자신이 그 일을 하지 않은 상황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김택남 회장은 말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고 경험하는 세상의 크기가 내 꿈의 크기를 결정한다.
정확하고 빈틈없는 계획과 실천이 중요하다.
당신은 어떤 비전을 가졌는가!
꿈은 미래에 대한 기대다.
어떤 미래를 꿈꾸고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진다. - 김택남

누구를 처음 만나 소개하다보면 자신과 같은 동질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게 인간이다. 그래서 별별 인연을 찾아내며 관계형성을 하려고 한다.

사회는 복잡하고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 인간성, 태어난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따뜻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지나고나면 알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인연을 가져도 따뜻한 마음이 없다면 스쳐지나갈 뿐이다.

36.5라는 온도를 갖고 있는 사람이란 걸 항상 잊지말고 살아야 한다. 그만큼 우리는 따뜻한 온도를 갖고 있다.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하지만 늘 변함없이 옆에 있어주는 사람들이 진정한 친구이며 소중한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가 좀더 사람을 사랑하는 사회,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을 사랑하는 사회로 달려갔으면 한다. 내일 모레면 코앞인 추석이 가장 기다려지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할 것이다.

모두가 하나인 추석을 만들어 대보름 둥근달을 함께 볼 수 있는 제주, 도민이 됐으면 좋겠다. 이 글을 통해 내 마음의 칭찬할 수 있는 말들을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많은 관심과 응원바랍니다.[편집자 주]

김택남 회장
김택남 회장

 

아직도 색깔론?

제주올레를 만든 서명숙 이사장이 <시사저널> 편집장일 때다.

"당신은 좌파요? 우파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2003년 4월, 신임 사장과의 단독 면담 자리에서다. 그녀는 잠시 침묵하고서야 "저는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데요. 굳이 말하자면 실사구시파, 좌충우돌파라고나 할까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1789년 프랑스혁명 직후, 국민회의 의장석을 기준으로 왼쪽에 혁명의 중심 세력인 공화파가 앉고, 오른쪽에 국왕을 지지하던 왕당파가 앉았다. 그때부터 진보 세력을 좌파, 보수 세력을 우파라고 칭한다.

제민일보를 인수하고 얼마 후 국정원 간부가 만나자고 했다. 그는 나를 좌파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여전히 '4·3사건' 등을 좌우 색깔론으로 접근하고, 오랫동안 '4·3사건' 등 제주도의 매우 민감한 사안들을 무척 비중있게 다룬 제민일보를 좌파 언론사라고 인식하는 그들이 정말 한심했지만 나는 분명히 말했다.

“우리는 좌우 어느 쪽도 아닙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좌도 우도,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으로 접근하는 것부터 싫어한다.

지금도 거의 모든 사회의 논쟁이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으로 다뤄지고 있지만, 어떤 시대든 진보와 보수는 공존했다. 모든 변화와 발전은 진보와 보수 사이의 어디쯤에서 이루어졌다. 진짜 문제는 진보나 보수보다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 갇힌 극단적인 흑백 논리다.

매년 전국의 교수들이 그해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를 꼽는다.

2020년에는 '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다 틀렸다'는 '아시타비를 선택했다.

교수들뿐일까? 거의 모든 국민이 진저리를 칠만큼 아시타비가 심했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무조건 나쁜 사람으로 치부하고 다른 논리를 폈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적인 인신공격과 온갖 욕설이 난무했다.

제민일보 사옥 전경
제민일보 사옥 전경

민주주의라는 게 뭔지? 헷갈릴 정도다. 민주주의는 정답이 없다. 다양한 해답이 존재한다. 원래 민주주의란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를 가진 사람들이 토론하고, 타협과 양보를 통해 적절한 차선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목적이 아니고 절차다. 나는 절대 옳고, 너는 무조건 틀리다는 '아시타비'로는 더 이상 민주사회라고 하기 어렵다.

제민일보는 당초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취재하고 기사를 썼지만 나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정부와 일부 주민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하고, 다른 일부 주민은 절대 안 된다고 하니 그 중간에서 접근하자고 했다.

평택항처럼 대형 크루즈 여객선이 입항하는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을 건설하자는 의견을 내고, 해군기지 건설을 무조건 반대하는 주민들과 소주잔을 나누었다.

무조건 반대만 하면 전부 다 잃을 수도 있으니 현명하게 일부는 내주고 정말 중요한 것은 지키자고 했다. 그들의 눈높이와 마음을 헤아리자 여러 주민이 내 의견에 공감해 주었다.

먼 길을 가던 공자 일행이 잠시 멈춰 쉬는 틈에 말 한마리가 밭에 들어가 농작물을 뜯어먹었다.

그것을 본 밭 주인이 말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뛰어난 언변과 수완으로 나중에 노나라와 위나라의 재상이 된 자공이 나섰다. 한참 밭 주인을 설득했지만, 농부는 요지부동이었다.

공자를 처음 따라나섰던 한 시골농부가 농부에게 다가가 말했다. "나도 농사를 짓는 농부요. 철없는 말이 나의 이삭과 당신의 이삭을 구분 못하고 당신이 땀흘려 가꾼 이삭을 그만 뜯어버렸소. 이를 어쩌면 좋소!" 그 말에 공감한 농부가 말을 풀어주었다.

나는 '해군기지 건설' 같은 제주도의 첨예한 현실 문제에 대해서는 신문사 사주가 아닌 한 사람의 제주도민의 입장에서 접근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변화와 혁신은 국민 또는 시민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이 '아래로부터'의 원칙을 간과하거나 말로만 중요하다고 하고 행동은 엉뚱하게 실천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위로부터'의 변화와 혁신은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정치다. 정치인들은 말로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면서 현실의 정치는 늘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한다. 그런 방향으로 국민을 관리하려 들고 운영하려 한다.

천마그룹 사명
천마그룹 사명

나와 제민일보는 2009년부터 시작한 착한가게 만들기 기획취재에 이어 2013년 1월부터 시작한 칭찬릴레이운동에 이어 시작한 환경캠페인운동 등 늘 아래로부터 접근하는 언론관을 실천해 왔다.

우리가 적극 지원한 '제주 착한가게 만들기' 운동으로 2014년 12월 1000호, 2017년 7월 2000호, 2020년 8월 3000번째 착한가게가 만들어졌다.

제주에서 시작한 착한가게 캠페인은 전국으로 확산돼 나눔문화의 조성 등 지역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제민일보는 2020년에는 중고물품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영아 20만원 입양 게시글을 집중 취재하여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미혼모 등 한부모가족에 대한 전국민의 관심을 유도하고, 정부 차원의 정책 지원까지 끌어냈다.

그렇다고 우리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각각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무릇

사회인이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제민일보뿐만 아니라 천마 가족은 모두 '아래로부터의 접근을 중요한 가치와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실천하고 있다. 제민일보뿐만 아니라 천마의 기업 목표이자 가치가 '사회의 공기이기 때문이다.

◇지함 김택남은 제주도의 기업가로 1959년 제주 한림읍 출생으로 현대중공업과 포스코엔지니어링 현장에서 익힌 '설계'라는 도구를 들고 귀향한 그가 불과 10여년만에 세운 천마그룹은 에너지 · 건설 · 언론 · 제조업 등으로 사업영역을 다각화하고 있다.

2013년에 펴낸 그의 자서전 <제주소년 꿈을 투망하다>는 제주도민의 꿈과 희망의 스테디셀러다. 이번 경영에세이는 과거보다 미래를 내다봤다.

직업과 분야의 경계를 넘나들며 미래의 기회를 찾는 한편 '설계경영'의 범위를 '모두가 잘사는 제주도'의 미래로 넓힐 수 있다는 그의 또 다른 꿈을 담았다.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동국대학교 경영학과 한림공업고등학교, 한림중학교, 판포초등학교 출신이다.

감귤따는 천마그룹 임직원들
감귤따는 천마그룹 임직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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