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15)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백색 어둠
[김필영 시문학 칼럼](15)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백색 어둠
  • 뉴스N제주
  • 승인 2022.10.1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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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유안진 시집 , 걸어서 에덴까지 51쪽 : 문예중앙시선 017) 백색 어둠

백색 어둠

유안진

내 눈은 자주 햇빛으로 캄캄해지곤 한다
내 눈은 자주 어둠으로 밝아지기도 한다
햇빛에는 낯설어 겁먹고 눈멀어도
어둠은 빛깔과 냄새까지 친숙하고 다정해
모든 밝음은 어둠에서 태어나고
어떤 어둠에도 빛은 있기 마련이라는
도달할 수 없는 이치 그 높이에 기대어
그 안자락에 포근히 안도하고 싶은데
\나는 늘 내 두려움이 두렵지
최대치로 치솟아 눈멀어버리는 햇빛공포도
한밤중에는 가라앉아 밝아지는 눈으로
정오와 자정을, 웃음과 울음을 갈팡질팡
거꾸로 로꾸거로 살다 말다 하느라고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어둠의 탐색한 겸허의 詩學』

사람은 빛과 어둠을 맨 먼저 눈으로 감지한다. 눈으로 들어오는 빛을 어둠속에서 착상하여 뇌로 전달함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것을 모방한 것이 오늘날의 카메라인데, 나무상자 속 한쪽에 렌즈, 다른 쪽에 거울을 붙인‘카메라오브스쿠라(camera obscura)의 어원은 “어두운 방’이다. 빛을 지향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어둠’은 어떻게 다가오는가, 유안진 시인의 시 ‘백색 어둠’에서 어둠을 탐색해 본다.

시의 첫 연은 “내 눈은 자주 햇빛으로 캄캄해지곤 한다, 내 눈은 자주 어둠으로 밝아지기도 한다.”는 신체적 눈을 통해 접하는 빛과 어둠의 경험을 대비하는 은유로 시작 된다. 이 상황은 연약하되 섬세한 우리 몸, 우리 눈에 대한 예리한 고찰이다.

사람의 눈은 강력한 빛을 보게 되면 손상된다. 오히려‘어둠으로 눈이 밝아’진다는 묘사는 사물의 빛깔이 각막으로 들어와 눈동자를 통과하여 수정체 안으로 들어갈 때 안구 내부가 어둡기 때문에 착상되는 이치에 비춰 볼 때 과학적으로도 이치적이다. 그렇기에 “햇빛에는 낯설어 겁먹고 눈멀”수 있으며 오히려“어둠은 빛깔과 냄새까지 친숙하고 다정”할 수 있는 것이다.

2연은 어둠의 기원과 역할에 대한 사유이다. 어둠의 기원을 우리 인간의 관점에서 한마디로 답한다는 것은 모순일 수 있다. 빛과 어둠의 신묘막측한 섭리와 이치를 다 적으려면 몇 권의 책으로도 부족하다고 본다면 시적 묘사로서 2연 첫 행에“모든 밝음은 어둠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묘사한 것은 신체적, 감정적, 영적 눈으로 바라본 어둠의 모습이며, 성경‘창세기’기록에‘빛이 있기 전 깊은 물위에 어둠이 있었다’고 한 것에 비추어 그 보다 간결한 표현은 없다.

다음 행의 “도달할 수 없는 이치 그 높이에 기대어 그 안자락에 포근히 안도하고 싶”다는 묘사는 우리의 약함과 무지를 빛과 어둠 앞에 진솔하게 인정하는 겸허한 묘사이다.

3연의 정경은 그러한 우리의 실수투성이 세상살이를 드라마처럼 비춰주는 은유이다. 가장으로서, 부모로서, 사회구성원으로서, 먹이를 버는 일과 사람도리를 하는 일과 사이를 오가며 얼마나 많은 실수로 허덕이는가. “정오와 자정을, 웃음과 울음을 갈팡질팡”하며 무엇이 옳은지 분별하느라 “거꾸로 로꾸거로 살다 말다”하는가.

우리가 누구를 사랑하고 미워하든, 울고 웃으며 좌충우돌 무엇을 하든, 어둠과 어둠을 만든 자 앞에 숨길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이 발가벗겨져 있다. 한마디로“백색 어둠”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어둠속에서 겸허히 자신을 돌아보면 “늘 내 두려움이 두렵지”않을 수 없기에‘경건한 두려움’으로 어둠, “그 안자락에 포근히 안도하고 싶은”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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