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13)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숲으로 가리
[김필영 시문학 칼럼](13)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숲으로 가리
  • 뉴스N제주
  • 승인 2022.10.01 21: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최은하 시,『한국현대시』2017년 상반기호. 18쪽, 숲으로 가리

숲으로 가리

최은하

숲으로 가리
우리 사랑이 자리 잡았을 때
얼싸안고 숲으로 가리
숲속으로 걸어 걸어서
들어서는 황혼을 맞으리

돌아올 길을 잃으면 더없이 좋으리
나의 사랑이 꽃인갑다 싶을 때
그 불씨 욱여안고 숲으로 가리
숲속으로 들어가선 아침을 맞으리
바다나 강이 보이는 숲에서 눈을 뜨리
숲으로 가리

사랑이 어두워지기 전에
눈 내리는 겨울 숲, 숲으로 가리
숲 속으로 깊이 들어
교회당의 종소리를 들으리
내 맨 처음과 마지막의 기도문을 떠올리리
오늘 하루가 다 가기 전에
까마귀 떼 우짖다 잠든 숲으로 가리
숲 속으로 들어가서 나도 잠드리
허구헌 꿈 속의 꿈으로 고이 잠드리
숲으로 가리

이 세상 태어나 배우고 익힌
사랑이란 말 허뜨려버리기 전에
이제 어둡게 우거진 숲으로 가리

숲 속에서 숲과 함께 바람을 맞아
사라지는 바람이 되리
한 줄기 바람소리로 남으리.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숲으로 은유된 사랑과 안식을 위한 영원한 거처』

생물은 사랑할 때 사랑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인다. 휴식할 때, 생을 마감하려 할 때도 각자 가장 적합하다고 여기는 곳을 택하려고 한다. 그 방식은 생명체 수효만큼 제각기 다를 수 있으나 공통점은,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그 공간과 시간을 자신의 방식으로 그곳에서 영위하려 한다. 그 장소가 ‘숲’이라면 어떠한가? 우리의 숲은 어디에 있는가? 최은하 시인의 시를 통해 ‘숲’을 탐색해 본다.

5연으로 구성된 시는 전반 3연에서 숲이라는 장소를 사랑과 연관이 깊은 곳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랑의 행위에 대한 묘사는 생략되었다. 각 연에 나타나는 ‘숲’의 시간적 상황과 주변의 환경적 상황이 다르다. 시제(時制, tense)는 미래형이나 아주 가까운 시간에 있을 일을 희망하는 의지를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숲으로 가리”로 시작되는 1연은 사랑의 대상과의 조우에 대한 희망을 “우리 사랑이 자리 잡았을 때/얼싸안고 숲으로 가리”라고 표현함으로 장소의 은밀함과 피할 수 없는 환경적 여건조성으로 사랑이 성사되기를 희구하고 있다.

2연에서는 “나의 사랑이 꽃인갑다 싶을 때/ 그 불씨 욱여안고 숲으로 가리”라고 함으로 숲이라는 장소에서의 사랑의 아름다움과 뜨거운 정열에 대한 지속성을 기대한다. 그 숲에서 사랑을 이루고 새로운 아침을 맞게 될 때, 물안개 피어오르는 바다나 강을 함께 볼 수 있기를 희망하는 화자의 마음은 사랑의 결과로 인해 함께 올 비할 데 없는 평온을 바라고 있다.

3연은 사랑이라는 대상에 대하여 겸허하고 경건한 두려움을 드러낸다. “사랑이 어두워지기 전에/ 눈 내리는 겨울 숲, 숲으로 가리”라는 것은 사랑하는 이에 대하여, 사랑의 빛깔에 대하여 마음처럼 다하지 못할 수 있음에 대한 회한을 인정하고 있다. “숲 속으로 깊이 들어/ 교회당의 종소리를 들으리/ 내 맨 처음과 마지막의 기도문을 떠올리리”라는 행간의 자세는, 사랑의 정성에 대하여, 사랑이라는 고귀한 마련의 창시자에 대하여 겸손하고 경건한 두려움으로 고개를 숙이는 자세라 할 수 있다.

이제 4연에서 화자는‘잠’을 청하려 한다. 그‘잠’을 청하는 장소 역시‘숲’이어야 하기에 “오늘 하루가 다 가기 전에/ 까마귀 떼 우짖다 잠든 숲으로 가”려 한다. 그리고 꿈을 꾸려 한다. 흔히들 잠 속에서 꿈을 꾸면 잠을 설친다고 하나 화자는 “숲 속으로 들어가서 나도 잠드리”라고 함으로 화자가 생각하는‘숲’이라는 거처에서 잠을 잘 때는“허구헌 꿈속의 꿈”을 꾸어도 고이 잠들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화자가 ‘숲’속에서 고이 잠들어‘꿈속에서 꿈을 꾸는 꿈’의 내용은 행간에 묘사되지 않고 독자의 상상에 맡겨 두었다.

마지막 연에 등장하는 사랑은 사랑의 종결적 실체다.“이 세상 태어나 배우고 익힌/ 사랑이란 말 허뜨려버리기 전에/ 이제 어둡게 우거진 숲으로 가리”라는 행간에서 사랑도 평생 배우고 익혀야 완전에 이를 수 있음을 고백하며‘숲’의 품에 스러져“한 줄기 바람소리로”남고 싶은 고백에서‘사랑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 가늠케 한다.

사랑과 생의 의미도‘숲’이라는 존재가 있어 더욱 아름답게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숲’이야말로 영원한 생의 거처가 아닐까? 방해받지 않고 사랑할 수 있으며, 평온 누릴 수 있으며, 혹 실수로 인해 아파할지라도 마음 내려놓고 참회할 수 있는 그 숲은 어디일까? 항상 다시 찾고 싶고, 바람소리로 잠들고 싶은 숲이‘당신’이길 희구함은 과분한 욕심이 아닐까?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