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16)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시선을 기리는 노래
[김필영 시문학 칼럼](16)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시선을 기리는 노래
  • 뉴스N제주
  • 승인 2022.10.23 16: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정현종 시집, 그림자에 불타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66) 34쪽, 시선을 기리는 노래.

시선을 기리는 노래

정현종

멀리 있는 것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가까이 있는 것과 살 수 있겠는가.
바라보는 저 너머가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여기서
살 수 있겠는가
멀리서 우리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공간이여,
시선은 멀수록 좋아해 날개를 달고,
시선에는 실은 끝이 없으며,
시선은 항상 무한 속에 있는 것이거니.
여기 있으면서 항상 다른 데에도 있을 수 있게 하는 시선이여.
움직이지 않지만 항상 떠날 수 있게 하는 시선이여.
오 눈보다 앞서 있는
먼 공간의 시원함이여.
그러나 시선 속에는 이미
무한이 들어 있는 것이어니.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시선(視線), 공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끈』

사물이 망막에 착상되었을 때 사물과 망막간의 연결되는 선(線)을 시선이라 부른다. 존재하는 사물을 맨 먼저 인식하는 것이 시선이다.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는 시선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북극성중 지구와 가장 가까운 여섯 번째 별인 미자르(Mizar)까지의 거리는 지구에서 78광년이나 떨어져 있다고 하는데 우리 눈으로 볼 수 있으니 우리 시선의 능력은 실로 놀랍다. 나아가 물리적 시선을 초월한 영적, 정신적 시선은 어떠한가? 정현종 시인의 시를 통해 시선의 새로운 의미를 들여다본다.

첫 행간은 멀리 있는 존재들에 대한 시선의 인식으로 인한 우리의 존재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도 있듯이 우리는 시선 가까이 있는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멀리 있는 존재들로 인해 가까운 존재를 새삼 깨닫게 되곤 하기에“멀리 있는 것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가까이 있는 것과 살 수 있겠는가.”라는 묘사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밤하늘의 셀 수 없는 별들은 어찌 그리 제각기 반짝임이 다른 것인지, 잡아보려고 언덕을 넘어가도 멀어지는 일곱 빛깔 무지개는 어찌 그리 고운지, 이처럼 멀리 있는 존재들을 보는 시선이 있어 사람에게‘그리움’이란 것이 생겨났을 것이다. “바라보는 저 너머가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여기서 살 수 있겠는가.” 라고 던지는 물음에서 가까이 있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준 시선에 대한 고마움을 에둘러 은유하고 있다.

“멀리서 우리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공간이여”로 시작되는 3연에서는 시선을 사물 너머 공간으로 옮겨 사유한다. 공간을 응시하는 동공이 열릴 때, “시선은 멀수록 좋아해 날개를 달고, 시선에는 실은 끝이 없으며, 시선은 항상 무한 속에 있는 것”이라는 묘사는 시선에서 공간을 향해 줌을 당겼을 때 시선(視線)이 형성됨을 은유한 것이며, 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사물에 대한 애정이 생겨나는 과정에서“시선은 멀수록 좋아해 날개를”단 듯 기뻐할 수 있다.

애정의 탄생은 공간과 동공 사이에 존재하는 시선에 포착된 사물에 대한 충성스런 애착관계가 성립되었을 때 생겨난다.

정현종 시인의 시집 권말에 실린‘시와 시인에 관한 짧은 성찰’이란 부제를 달아 실은 『세상의 영예로운 것의 변용』이란 제목의 ‘젊은 시인에게 보낸 편지’로 발표되었던 편지형식의 산문 내용에서는, 시인의 예술적 역할과 기능에 대하여“예술이 세상을 변화시킬 때 그것은 영예로운 것으로서의 전적인 변용”이며“사랑할 줄 아는 영혼이라야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모든 기적은 사랑의 소산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 사랑의 발생을 역추적 해보자. 기적이 사랑의 소산이라면, 사랑은 무엇의 소산일까? 먼 존재에 대한 그리움의 소산이다. 그리움은 먼 공간과 시선 사이에 존재하는 사물과의 충성스러운 애착의 소산이 아닐까 생각된다. 마음의 시선은 “여기 있으면서 항상 다른 데에도 있을 수 있”으며, 정신의 시선은 시공을 초월할 수 있어 “움직이지 않지만 항상 떠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선은 측량할 수 없는“무한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 무한의 시선 가장 가까운 곳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리운 당신이 있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