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9)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원圓에 대하여
[김필영 시문학 칼럼](9)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원圓에 대하여
  • 뉴스N제주
  • 승인 2022.09.0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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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문덕수시집, 라일락 향기, 2013<한국대표명시선100> 41쪽, 원圓에 대하여

원圓에 대하여

문덕수

네 품안에 한 알의 씨로 묻혀
너를 닮은 과일로 익고 싶다
내 물살의 칼날은 꽃잎이 되고
뾰족한 내 돌부리는 만월滿月처럼 깎이어
너를 닮아 차라리 타버리고 싶다

외길로만 뻗는 이 직선을 잡아다오
부러져 모가 서는 이 삼각을 풀어다오
꺾이어 모가서는 이 사각에서 놓아다오
윤곽이 아니라 그대로 가득 찬 충실이기에
실은 우주도 너를 닮은 충실이기에
네 품안에 떨어진 하나의 물방울로
바다처럼 넘치며 출렁이고 싶다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한 알의 씨에서 생명에 이르는 원圓의 詩學』

동그란 원圓, 우주보다 태양보다 지구보다 달보다 사과보다 한 방울 이슬보다 작은 원이라면 하나의 점, 씨일 것이다. 하나의 생명은 씨라는 원에서 출발한다.

문덕수 시인의 3인 연대 시집 <본적지>(1968)에 발표된 “원에 관한 소묘”에서는 하나의 원이 다른 이미지와의 결합에 의한 변용 과정을 거치면서 관념과 감정을 제거하고 이미지와 이미지들이 천 개의 원, 신의 눈알, 삼각형, 불기둥, 한가위의 달 등 연쇄반응에 의한 순수조형(造形)을 등장시켜 무의미를 부여하는 듯한 묘사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위 “원圓에 대하여”에서는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원으로 가는 이미지에 생명의 힘이 역동적으로 출렁이고 있음을 본다.

하나의 ‘씨’가 원이라는 1~2연은 “품안에 한 알의 씨로 묻”힌다면 궁극적으로 완성체인 원을 “닮은 과일로 익고 싶다”는 소망이 담겨 있으므로 원에 생명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소망은 순순히 이루어지는 것인가. 3~5행에 “내 물살의 칼날은 꽃잎이 되고 뾰족한 내 돌부리는 만월滿月처럼 깎이어 너를 닮아 차라리 타버리고 싶다”는 묘사를 볼 때, 그 생명의 완성체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 것이며 얼마나 큰 희생을 치러야 생명의 ‘원’이라는 궁극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지 ‘원’에 생명의 집념이 불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원이 평면적으로 점에서 출발하여 선이 되고 형型을 이루는 것은 생명체로 존재하여 완성체에 이르는 과정에서 겪는 시련의 과정일 수 있다. 6~8행에서 화자는 처절하게 그 시련에서 몸부림치며 “외길로만 뻗는 이 직선을 잡아다오, 부러져 모가 서는 이 삼각을 풀어다오, 꺾이어 모가서는 이 사각에서 놓아다오”라고 절규를 쏟아놓고 있음을 본다.

직선과 삼각과 사각이라는 방식의 선의 진행은 지극히 일방적이다. 그렇게 질주하다 부러지고 꺾이어 모가 난 잘못된 틀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고통과 눈물을 흘려왔는가. 그런 모가 난 평면구도에서는 생명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없다.

이제 시의 화자는 스스로 ‘원’이 되고자 한다. ‘원’은 결코 “윤곽이 아니라 그대로 가득 찬 충실이”라고, “우주도 너(원)를 닮은 충실이”라고, 무질서한 평면이 아닌 질서와 균형을 가진 입체적으로 살아 있는 생명이 참 ‘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 점 지극히 작은 ‘원’ 씨로 시작된 원, 우리는 “하나의 물방울로”, 마땅히 떨어져야 할 곳에 떨어져 “바다처럼 넘치며 출렁”일 것인가를 자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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