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8)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흙을 만지며
[김필영 시문학 칼럼](8)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흙을 만지며
  • 뉴스N제주
  • 승인 2022.08.13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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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조지훈 시집, 승무,『시인생각』발행, 한국대표명시선 100, 50쪽, 흙을 만지며

흙을 만지며

조 지 훈

여기 피비린 옥루(玉樓)를 헐고
따사한 햇살에 익어가는
초가삼간을 나는 짓자.

없는 것 두고는 모두 다 있는 곳에
어쩌면 이 많은 외로움이 그물을 치나.

허공에 박힌 화살을 뽑아
한 자루 호미를 벼루어 보자.

풍기는 흙냄새 귀 기울이면
뉘우침의 눈물에서 꽃이 피누나.

마지막 돌아갈 이 한 줌 흙을
스며서 흐르는 산골 물소리.

여기 가난한 초가를 짓고
푸른 하늘이 사철 넘치는
한 그루 나무를 나는 심자.

있는 것 밖에는 없는 곳에
어쩌면 이 많은 사랑이 그물을 치나.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사람과 동일한 구성원소인 흙을 통한 자아성찰』

맨발로 흙을 밟고 걷거나 흙을 만지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사람을 흙으로 만들어 생명력을 불어넣으니 산 영혼이 되었다’는 한 경전의 기록대로라면 조물주는 토기장이인 셈인데, 토기장이 조물주가 흙으로 사람을 어찌 이렇게 신묘막측하게 만들었을까?

사람과 흙의 구성원소가 동일한 것에 대해 현대과학으로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일이다. 시인은 흙을 만지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조지훈의 시인의 시를 통해 흙을 만져본다.

시의 서두에 흙을 만지던 화자는 집을 짓고자하는데“여기 피비린 옥루(玉樓)를 헐고/ 따사한 햇살에 익어가는/ 초가삼간을 나는 짓자.”고 한다.‘피비린 옥루를 헐’고자 함은 생존현장에서 삶과 죽음의 악전고투로 피땀을 흘리며 인간의 영욕으로 만든 옥과 같은 값나가는 재료로 지은 호화로운 집일 것인데, 실제 존재하는 집이라기보다 화자 내면에 자리하려는 욕망의 집일 것이다.

화자는‘여기’라는 흙을 만지고 있는 공간에 그 욕망의 집을 헐고 소박한 초가삼간을 짓고자 한다. 옥으로 된 내면의 화려한 누각을 헐고 흙과 풀이 주된 재료인 초가삼간을 지으려함은 세상의 피비린내 나는 공간과는 대조적인 소박한 집을 짓고자 함이며 이는 자연의 공간에서 흙을 만지게 됨으로 생각하게 된 성찰일 것이다.

세상의 모습은 어떠한가? “없는 것 두고는 모두 다 있는 곳에/ 어쩌면 이 많은 외로움이 그물을 치나.”라는 행간의 의미를 새겨보면, 삶의 공간에 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과 불필요한 것들로 여겨지는 것들의 혼재 속에 정작 절실한 무언가의 ‘결핍’을 느끼고 있다. 그 것을 화자는 ‘외로움의 그물’이라는 시어에 함축해 놓았다.

이제 화자는 손을 들어 “허공에 박힌 화살을 뽑아/ 한 자루 호미를 벼루어 보”려 한다. “허공에 박힌 화살”은 의도적이거나 무의식중에 욕망을 향해 허공과 같은 세상에 무수히 쏘아댄 부질없었던 과거의 행위들을 상징하는 것인데 화자는 그 화살을 뽑아 흙을 만지며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기본 도구인 호미를 만들고자 한다.

초가삼간을 짓고 호미를 벼루어 소박하게 살려는 마음으로 흙 가까이 다가가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 “풍기는 흙냄새 귀 기울이면/ 뉘우침의 눈물에서 꽃이” 피게 되는 것이다. 화자는 흙냄새를 후각으로 감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청각으로 인식하려 한다.

이는 눈을 감고 흙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몸짓이자, 오감을 넘어 영혼으로 흙의 가치를 느끼려는 깨달음의 계기가 되는 겸허한 자세이다. 이때 화자의 가슴에서 뉘우침의 눈물이 솟아오르고 그런 뉘우침과 겸허한 의지의 눈물은 아름다움의 상징인 ‘꽃’이 되는 것이다.

눈물꽃을 피우며 성찰하는 마음의 시각이 열린 화자는, 흙이라는 존재가 집짓고 경작하며 살아가는 흙의 경계를 넘어 “마지막 돌아갈 이 한 줌 흙”임을 깨닫게 되고 물소리도 대자연의 순환계 속에 구름에서 내려 비가 흙에 “스며서 흐르는 산골 물소리”임을 자각하게 됨으로 우리가 흙으로 만들어져 흙으로 돌아야 하는 생의 길에 공감하게 된다.

따라서 시의 결구는 “여기 가난한 초가를 짓고/ 푸른 하늘이 사철 넘치는/ 한 그루 나무를 나는 심자”고, “있는 것 밖에는 없는” 세상을 자족하며 살자고, “어쩌면 이 많은 사랑이 그물을 치”고 있으니, 살아있는 날까지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숙명이라고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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