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5)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김필영 시문학 칼럼](5)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 뉴스N제주
  • 승인 2022.07.23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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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김영랑 시집, 『한국대표명시선100』시인생각, 12쪽,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詩)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밝고 순수한 하늘을 우러르는 삶과 자유에 대한 동경』

지상에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하늘을 우러르는 일에 생사가 달려 있다. 하늘을 통해 생명을 영위할 수 있는 빛과 공기와 물이 제공되고 순환, 정화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늘을 우러르는 일이 생명을 부지하는 데에만 의미가 있을까? 진정 가치 있는 생명의 존재로 하늘을 우러를 수 있는 것은 어떠한 삶인가? 김영랑 시인의 시를 통해 하늘을 우러러본다.

시적 화자는 하늘과 지상의 교감과 조응(照應)을 바탕으로, 순수한 봄 하늘의 질서를 동경하고 있다. 이 시에 대한 여러 해설에서, 이 시는 의미중심의 시가 아니라, 언어가 갖고 있는 음악성을 최대로 살려‘봄’이란 계절의 특성을 살린 것으로 조명하였으나 여기서는 시인의 시작의도(詩作意圖)에 깔린 내면정서 이면을 주목해보고자 한다.

1연, 1행의“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하늘을 우러르는 일은, 돌담에서 햇살을 따라 하늘을 우러르는 것을 의미한다. 겨울을 보낸 봄날, 꽁꽁 얼어붙었던 지상의 생명들에게 가장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양지바른 곳의 상징으로‘돌담’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햇살의 입장에서는 생명을 일깨워주는 자애로운 손길을 보내는 것이다. 반대로 생명체가 하늘을 우러르는 것은 어머니 젖을 빠는 아이의 마음으로 햇살이 비추는 하늘을 보는 것일 것이다.

2행의“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하늘을 우러르는 일은, 어떻게 하늘을 우러르는 것인가? 겨울을 난 땅이 녹아내리고 봄비에 잠에서 깬 풀들이 돋아날 때, 풀뿌리를 적시고 물길을 따라 고인 샘물을 떠올려본다.

샘물은 어떻게 웃을 수 있을까? 초목들이 샘물 가까이 뿌리를 내리고 물을 빨아들일 때, 사슴이나 토끼가 샘물가에 다가와 목을 적실 때, 샘물에 웃음이 파문으로 피어날 것이다. 그 웃음의 기쁨으로 하늘을 우러르는 것일 것이다.

3~4행은‘햇발’과‘샘물’처럼 하늘을 우러르겠다는 화자가 비로소 스스로“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는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고요히”라는 부사를 대입한 것은 화자의 마음이 고요하지 못한 반대적 상황에 처해 있음이며, “오늘 하루”라는 짧은 기한에서 단‘하루’도 순수하고 기쁜 마음으로‘하늘을 우러르지 못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가늠할 수 있다.

2연, 1행에서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하늘을 우러르는 마음은 화자이자 시인 자신의 마음이 드러나고 있다. 새색시가 시집가서 겪는 첫 경험이야말로 얼마나 ‘순수한 부끄러움’이겠는가? 그 부끄러운 볼우물은 우리 모두의 첫사랑의 기억 속에 각인된 부끄러움과 같을 것이다.

2행의 “시(詩)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하늘을 우러르는 것은 어떻게 하늘을 우러르는 것인가? 그것은 시인의 가슴에 흐르는 서정의 물결처럼 거짓 없는 시심(詩心)으로 겸허히 우러르는 것일 것이다. 화자는 3~4행에서“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고 간절한 소망을 밝히고 있다.

이는 화자가 지상에서 겪고 있는 평화롭지 않은 상황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화가‘고흐(Vincent van Gogh)’그림 속의 연록 하늘보다 더 평화로운“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우리 모두가 그런 평화롭고 순수한 하늘을 자유롭게 우러르며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갈망하는 마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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