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6)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행복
[김필영 시문학 칼럼](6)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행복
  • 뉴스N제주
  • 승인 2022.07.31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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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유치환 시집, 『한국대표명시선100』시인생각, 14쪽, 행복

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최상급 관념어 사랑, 편지에 감춰진 사랑의 은유』

사랑의 빛깔과 향기가 우주에 존재하는 사물의 빛깔과 향기보다 수효가 많을 것 같다.

지구가 존재하고 역사가 흐르는 동안 첫 인간조상에서부터 향후 영원한 나날까지 이 땅에 살아갈 사람들의 사랑의 빛깔과 향기가 제각기 다를 것이라는 생각에 기인할 때 그렇다. 그러면 사람들의 행복의 척도는 어떨까? 유치환 시인의 사랑의 편지에서 ‘행복’을 읽어본다.

첫 행“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다는 행간은 사랑의 편지를 쓰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긴 세월 사랑 받아온 행간이었다. 성경책「사도행전」20장 35절에도 똑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사도 바울이 예수그리스도에게 직접 들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사랑의 편지를 쓰는 화자는 처음이 아니라 벌써 여러 번“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썼던 것 같다. 에메랄드빛 하늘이라면 필시 그리움이 타는 어느 가을날이었으리라. 편지로 사랑의 안부를 전해야 했다면 서로 자주 만날 수 없는 환경과 지리적 위치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어떻든 첫 연 첫 행에 사랑을 정의함에 있어, 사랑을 주는 것에 대한 가치를 강조한 것으로 보아 화자는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입장에서도 상대를 사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연에는 사랑의 편지를 써야 하는 화자가 정작 사랑의 대상을 향해 간절한 그리움이나 마음의 고백하지 않고 시선을 우체국 문으로 들어와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려 자신의 모습을 묻히게 한다.

이는 어쩌면 이미 여러 번 보낸 편지에 대한 무반응에도 다시 동일한 사랑의 마음을 솔직하게 적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내면의 힘겨움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행동으로 보인다.

3연에서는 화자와 사랑의 대상 사이의 사랑의 빛깔을 ‘꽃’이라는 물체를 통해 언급하려 한다.

그러나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이라는 행간에서 화자가 사랑의 대상과 떨어져 겪어있는 ‘삶의 굴레의 고달픔’으로 꽃이 피기까지 바람이라는 장애물체 시달리며 나부끼듯 세상의 바람을 견뎌내야 하는 상황 속에 힘겹게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인정의 꽃밭”이라는 시어에서 그 가운데서도 한줄기 살게 하는 소박한 격려를 발견하고 있음을 가늠하게 한다. 그러나 화자와 사랑의 대상을 향한 사랑의 빛깔은 양귀비꽃처럼 붉다.

화자가 직언하지 못하고“진홍빛 양귀비꽃 인지도 모른다”는 행간의 ‘모른다’라는 부정적 얼버무림은 사랑의 결합이 화자의 뜻보다 상대의 마음에서 화답해 오기를 염원하는 표현이다.

4연에 이르러 화자는 첫 연의 말을 그대로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라고 다시 강조한다.

그렇기에 비로소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라고 편지를 쓰는 이유가 사랑이었음을 밝힌다. 그리고 그토록 아껴둔 말, “그리운 이”라는 말로 사랑을 고백을 한다.

그리고 사랑과 무관하게 살아온 존재의 마지막까지도 생각해본다.“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일지라도 그 사랑이 후회 없음을 밝힌다. 행복하려거든 이렇게 사랑해볼 일이다. 영원히 그리운이여! 그대도 행복할 수 있게 나를 사랑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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