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8)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꽃을 위한 서시
[김필영 시문학 칼럼](8)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꽃을 위한 서시
  • 뉴스N제주
  • 승인 2022.08.27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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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김춘수 시집, 『한국대표명시선100』시인생각, 35쪽, 꽃을 위한 서시

꽃을 위한 서시

김춘수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의 대상을 향한 끝없는 갈망』

누군가를 그리워하여 간절히 부르고 싶을 땐 애가 탄다. 그러나 부르고 싶은 대상을 향해 아무리 다가서고 싶어도 닿을 수 없을 때 절벽 앞에 서게 된다. 무엇으로 그 막힌 절벽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손을 내밀어도 닿을 수 없는 존재, 불러도 대답 없는 대상 앞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게 되는가? 김춘수 시인의 시 속에서 그 존재가 되어본다.

1연은 “나는 지금 위험한 짐승이다.”로 시작된다. 꽃이라는 존재인 그리움의 대상을 향한 화자의‘현재’의 인식 주체를‘짐승’이라고 표현함은 화자의 현 상황에서의 자태를 꽃과 짐승이라는 대조적 이미지를 등장시켜 낯설게 함으로 행간에 긴장을 불러일으키면서 겉으로는 자아의 본질이 감추어져 있다.

이는 화자를 닿아보려는 대상을 향하여 이성도 분별력도 없는‘짐승’처럼 돌진할 것 같은 존재로 묘사하여‘꽃’이라는 그리움의 대상을 향한 갈망을 어떤 상황이나 존재의 위치를 누구에게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태세를 은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의 처음 사랑이 너무도 서툴렀듯, 화자 역시 사랑하고픈 대상에게 다가가 손이라도 닿아보려고 애써보지만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되는 절망적 상황을 맞게 된다. 꽃의 존재와 꽃과 만나려고 하는 관계로서의 화자의 존재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상황이 안타깝다.

2연은 그런 나와 너라는 관계를 한 장의 필름에 담긴 영상처럼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고 알려주므로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되고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이름을 불러주고 싶어도 불러줄 수 없는 절망적 모습이 비춰진다. 이는 그토록 갈망하는 존재인 꽃이라는 그리움의 대상이 닿을 수 없고 만날 수 없어 이름마저 불러줄 수 없을 때 무의미한 존재일 뿐임을 말해준다.

3연에서“이 무명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는 행간에서 그리움의 대상에 대한 갈망으로 고뇌하고 슬퍼하는 지독한 환우에 빠진 화자의 가슴앓이를 보여준다.

대상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 슬픔에 추억을 되새기며 잠시 눈물짓는 것이 아니라 “한밤내 운다.”고 하므로 무명의 어두움이란 대상의 본질과 닿을 수 없고 부를 수 없는 무의미 상태에서도 어떻게든 대상의 본질을 그리워하며 갈망하며 이름을 부르고자 하는 슬픔의 시간이 의도적으로 밤을 새우며 드리워지고 있다.

꽃으로 은유된 존재를 그리워하며 밤새워 우는 절망적 슬픔으로 화자는 영영 환자처럼 스러져갈 것인가? 그렇지 않다. 4연의“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라는 초자연적 현상으로 슬픔을 딛고 일어서려는 초월적 의지표출은 서로에게 어떤 의미가 되려는 조용한 소망보다 강렬한 갈망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그토록 그리운 꽃은 끝내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무리 다가서려해도 보이지 않고 부를 수 없고 닿을 수 없는 꽃, 당신이 그래서 더욱 애련하게 지금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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