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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영 시문학 칼럼](11)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노숙자* 1
[김필영 시문학 칼럼](11)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노숙자* 1
  • 뉴스N제주
  • 승인 2022.09.17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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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함동선시집, 연백延白. <세계사시인선 158> 67쪽, 감상평 : 김필영)

노숙자* 1

함동선

넥타이 느슨하게 풀고
구두 한 짝 벗고
대학로 베고 누운 사람
어떤 편견 고집 없이
구름 나거나 오거나 간잔지르한 눈으로
하늘만 쳐다보는 자유인
나 찾아 얼마나 멀리 가 봤나
혜화성당 종소리가 꼬리 늘일 적
내 오줌 장맛비 된 빗물 마시고 있다
지나는 사람들 물로 볼지 모르지만
올려다보는 방울나무 길
누군가 사랑 괸 옛길에서
내 어디 있는가
어디 향해 가고 있는가
그 생각뿐이다

*동성고등학교 담 밑에 있는 조각 작품.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자유인 속으로의 환유(換喩)』

노숙자를 생의 목표로 삼은 사람이 있을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떠나 노숙자가 되기까지 끈질기게 따라붙는 질곡의 터널을 벗어나려고 가족들 모르게 얼마나 많은 번민을 했을까?

퇴직하고 집을 나온 한 직장인이 정장차림의 모습에서 턱수염 더부룩하고 흐트러진 모습으로 하루하루 변해가는 모습을 게재한 기사를 떠올리면 입맛이 씁쓸하다. 함동선 시인의 ‘노숙자’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가?

첫 행에서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양복정장차림에 필수적인 넥타이를 버리지 못하고“넥타이 느슨하게 풀고”있는 모습의 보통 노숙자이다.

가족을 위해 열정을 바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던 이 시대가 사육한 노숙자의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집을 나온 후로 갈아 신지 못한 “구두 한 짝 벗고 대학로 베고 누”워 있는 모습, 어디로 가야할지 더듬이기능을 서서히 상실해가고 있는 우리주변에서 볼 수 있는 노숙자와 같은 모습이다.

4연에 이르러 묘사되는 노숙자의 모습은 평소 우리가 봐오던 노숙자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사회를 욕하거나 정치를 비난하거나 누구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신문지를 깔고 접힌 의자처럼 구겨져 등에 뱃가죽이 달라붙은 채 쓰러져 있는 무기력한 노숙자가 아니라, 그는 “어떤 편견 고집 없이 구름 나거나 오거나 간잔지르한 눈으로 하늘만 쳐다보는 자유인”의 모습인 것이다.

이 지점에서 화자는 노숙자 속으로, 아니‘자유인’으로 환유된다. 그는 “구름 나거나 오거나”하는 환경 따위는 관심 밖이다. 눈동자로 빨려드는 빛의 조리개를 줄이듯 그의 “간잔지르한 눈”은 구름 위 더 높고 더 먼 하늘로 향하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과 거리는 더 이상 물리적 시력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는다.

“나 찾아 얼마나 멀리 가 봤나”라는 묘사에서 마음의 시력으로 보는 그의 시선의 끝은 화자의 생을 통해 가본 유한거리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거리뿐만 아니라 “나를 찾”는 일, 즉 삶의 해답을 찾는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을 돌고 돌아온 존재임을 내비치고 있다.

그렇기에 “혜화성당 종소리가 꼬리 늘일 적 내 오줌 장맛비 된 빗물 마시고 있”는 그의 모습은 이젠 기상상황마저도 그를 구속할 수 없는 것으로 볼 때, 분명 자유인이 된 것이다.

결구에 이르며 묘사된 노숙자는 더는 측은한 노숙자가 아니다. 지나는 사람들의 연민어린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자유인이며, 생각하는 사람이다.

로뎅의‘생각하는 사람’은 고개를 수그린 채 턱을 괴고 번민하는 사람이나, 방울나무(버즘나무)길을 올려다보는 자유인은 “누군가 사랑 괸 옛길에서”“내 어디 있는가”라는 물음을 통해 존재의 정체성을 생각해보게 하며, “어디 향해 가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통해 생의 올바른 목표를 향해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 모두에게 묻고 있는 자유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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