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7)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길
[김필영 시문학 칼럼](7)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길
  • 뉴스N제주
  • 승인 2022.08.06 09: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윤동주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주)미르북컴퍼니 발간, 43쪽, 길.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부끄러움의 힘으로 찾아가는 미래의 길』

문학작품에서 만나는「길」은 사람의 생生에서 삶의 방법일 수 있고, 도달해야 할 목표일 수 있다. 문자적인 길도 있고, 배양하고 닦아가는 길(道)도 있다.

사람은 그 길을 만들기도 하고 나 있는 길을 가기도 한다. 길이 있어 출발과 탐색과 도전이 있고 목적지가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 인간이 길을 찾아가는 행위로 시간이라는 과정이 형성된다. 윤동주 시인이 사유한「길」은 어떤 길인가? 그 길속으로 걸어가 본다.

첫 행의“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길에 나아갑니다.”라는‘상실’에 대한 혼돈스러운 행위 묘사는 상실상황의 무의식적 내면의 당황스러움에서 의식적인 확장된 공간인‘길’찾아 나서야 하는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연희전문학교 3학년에 재학하던 1941년 9월에 쓴 것으로 알려진 이 시에서 화자이자 시인은 일제 강점기를 사는 고뇌하는 청년이다. 두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는 무의식적인 행위는 억지스러운 행동이 아니라 식민지를 사는 청년의 내밀하고 비좁은 공간에서 길이라는 확장된 공간으로 나아가 ‘잃어버린 자아’ 또는 대상을 찾고자 하는 본능적 행위로 다가온다.

2연에서 화자가 가고 있는“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가는 길은 어떤 길인가? ‘돌’이라는 물성이 지닌 분자밀도의 단단한 의미와‘담’이라는 단절의 의미로 끝없이 연달아 이어진 돌담길은 안쪽과 바깥쪽으로 갈라놓은 차단적 상황을 연출한다. 화자는 결코 돌담 안쪽을 넘어갈 수 없다. 돌담 너머의 길은 화자가 희망하는 세계이나 돌담이 끝없이 이어져 있는 현재의 길은 암담한 길임을 알려준다.

3연에서 돌담을 끼고 가는 길에 문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 문은 ‘열린 문’이 아니라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 굳게 닫힌 ‘쇠문’이므로 그 차단된 담이 얼마나 단단하고 높은지 가늠하게 한다. 우리의 생에도 이런 길 존재할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 시인이 살았던 일제강점기의 ‘서대문 형무소 담벼락 밑을 걷는 고뇌하는 식민지 청년’을 떠올려진다.

4연“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라는 행간의 단순의미로는 원활하게 소통하는 길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나 이어지는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라는 행간의 정체된 이미지는 멈추지 않고 흐르는 시간 또는 어떻게든 흐르고 있는 생을 정의한 것일 뿐, “돌담을 더듬어 눈물”지의며 부끄럽게 하늘을 쳐다보는 모습에서 삶의 정체성을 찾고자 고뇌하는 청년의 존재를 알게 한다.

1941년 9월 이 시를 쓸 때, 시인은 3년 후의 일을 예언하듯 ‘길’의 후반에 묘사하고 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라는 행간에서‘후쿠오카 형무소 높다란 담과 굳게 닫힌 쇠문, 담벼락 안 차단된 ‘길’을 조국을 그리워하며 걷고 있는 자신의 존재를 예언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에 소름이 돋는다.

시의 결구는 화자가 넘을 수 없는 돌담과 쇠문, 자아의 안과 밖, 현실과 소망을 갈라놓는 환경 속에 있을지라도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라고 희망을 제시한다.

감옥 같은 역경의 길에도 담 저쪽을 길을 포기하지 않고 푸른 하늘을 부끄럽게 쳐다볼 때, 그‘부끄러움의 힘’으로 우리가 가야할‘길’을 찾아갈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