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14)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천년의 강
[김필영 시문학 칼럼](14)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천년의 강
  • 뉴스N제주
  • 승인 2022.10.0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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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이수익 시집, 천년의 강<서정시학 서정시 121> 15쪽, 천년의 강, 감상평 : 김필영)

천년의 강

이수익

나는
너의 살 한 움큼씩 뜯어먹고
오래 산다
너는
나의 생생한 피 한 됫박씩 훔쳐 먹고
오래 오래 산다
나와 너 사이에는
차마 죽을 수 없는 천년의 강물이
굽이치고 있다
사랑아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생명을 나누는 상생의 존재론적 미학』

우리 선조들은 배산임수(背山臨水)지역에 삶의 둥지를 틀었다. 강 유역에 펼쳐진 들에 곡식을 기르고 물을 마시고 몸을 씻으며 사랑하고 자식을 길렀다. 사랑을 위해 강을 건너기도 하고 강을 따라 오르내리며 만남과 이별에 울고 웃으며 살아왔다. 지금도 강은 강물을 보듬고 흐르는 생명의 젖줄이다. 이수익 시인이 은유한“천년의 강”은 어떠한 강일까?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천년의 강』은 제목부터 강한 의문을 일으키는 상징적 제목이다. 길면 팔십이요, 잘해야 백년을 넘길까 말까한 우리의 생에서 천년이라니, 그 세월은 영원한 세월을 상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면 그 영원히 흐르는 강과 강물은 무엇을 상징하고 은유한 것인가, 10행의 짧은 행간은 단조로우나 영상이미지는 강렬하다.

행간의 첫머리는 너와 나의 생을 영위하는 근원 즉 존재론적 원동력인 먹이를 묘사하고 있는데 섬뜩하다.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너의 살 한 움큼씩 뜯어먹고/ 오래 산다.”는 행간은 언뜻 식인종이 연상되는 동물적 묘사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나에게‘살’을 뜯어 먹도록 하여 내가 살도록 했다면,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오래 살도록 그 일이 계속되었다면‘너’라는 존재는 내 삶의 양식인 셈이다. 일단 살을 뜯어먹는 나도 섬뜩한 존재지만, 내게 오래 살을 뜯어 먹히며 살고 있는‘너’라는 존재 또한 섬뜩한 존재로 묘사된다.

영화의 한 장면이 연상되는 묘사에서‘너’라는 존재는 흡혈귀(vampire)와 같다. “너는 나의 생생한 피 한 됫박씩 훔쳐 먹고/ 오래 오래 산다.”라고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목할 묘사는“피 한 됫박씩 훔쳐 먹”는다는 묘사인데, 인체의 혈액량은 체중의 1/12 이라 하니, 체중을 60Kg일 때 온몸의 피는 5Kg, 즉 5리터이니, 한 됫박(2리터)이면 40%의 피를 훔쳐 먹는 셈이다.

‘너’와‘나’는 서로의 생명을 양식으로 먹고 살고 있는 존재로 묘사되었다. 너와 내가 피와 살을 주고받는 소름끼치는 숙명적 관계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너의 살 한 움큼씩 뜯어먹고 / 오래”사는‘나’라는 존재가 식인종처럼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의 생생한 피 한 됫박씩 훔쳐 먹고/ 오래 오래”사는‘너’라는 존재가 흡혈귀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 번의 행위로도 생명을 상실할 수 있는 두 존재가 오래오래 서로에게 생명과 같은‘피와 살’을 서로의 양식으로 제공하며 상생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여기서 ‘살’과 ‘피’가 대유(代喩)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 그 이상의 것일 수 있다.

오래오래 존재하는 동안 서로 나눈 피와 살은 단순한 물리적 관계를 넘어 인식과 감정을 지닌 인간의 상생 이상의 의미를 나눈 존재로 다가오는 것이다.

너와 나는 어느 하나가 존재하지 않으면 둘 다 존재할 수 없다. 너와 내가 오래오래 피와 살을 나누며 결코 죽을 수 없는 이유 무엇인가? 살이 뜯기고 피를 앗기면서도 둘 사이엔“차마 죽을 수 없는 천년의 강물이 굽이치고”있기 때문인 것이다.

산을 돌아 바위를 넘으며 뒤엉켜도 손을 놓지 않고 제살과 피를 섞으며 하나 되어 흐르는 그 천년을 흐르는 강.‘영원한’이 생략된“사랑”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시의 결구를 읽는 무수한 가슴들은 구멍이 뚫린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피와 살, 생명을 나누었다고 생각해보지 못한 가슴들은 천년의 강에 무너진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했느냐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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