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20)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헛것을 따라다니다
[김필영 시문학 칼럼](20)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헛것을 따라다니다
  • 뉴스N제주
  • 승인 2022.11.1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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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김형영 시집,『땅을 여는 꽃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459) 90쪽, 헛것을 따라다니다

헛것을 따라다니다*

김형영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고 산다.
내가 꽃인데
꽃을 찾아다니는가 하면,
내가 바람인데
한 발짝도 나를 떠나지 못하고
스스로 울안에 갇혀 산다.

내가 만물과 함께 주인인데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한평생도 모자란 듯 기웃거리다가
나를 바로 보지 못하고
나는 나를 떠나 떠돌아다닌다.

내가 나무이고
내가 꽃이고
내가 향기인데
끝내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고
헛것을 따라다니다
그만 헛것이 되어 떠돌아다닌다.

나 없는 내가 되어 떠돌아다닌다.

*「열왕기 하권」17장 15절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만물에 비친 삶의 헛된 존재방식에 대한 성찰』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일’은 고등학문 중에서 극점에 달하는 깨달음이라 할 수 있다. 이 자아발견은 문명이 시작된 이래 모든 철학자들이 추구하는 고뇌와 구도의 길이었다. 그 길은 여러 갈래여서 사람마다 가는 길도 다양하다.

제각기 환경이 허락하는 공간에서 배움과 깨달음으로 자신을 알아간다. 어떠한 방법이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김형영의 시를 통해 자아발견의 한 길을 따라가 본다.

제목 ‘헛것을 따라다니다’에 대한 출처로 주석은 성경“「열왕기 하권」17장 15절”임을 알려준다. ‘솔로몬 왕’이 필자로 알려진『전도서』1장 14절의 “내가 해 아래서 행해지는 모든 일을 보았는데, 보라! 모든 것이 헛되어 바람을 쫓아다니는 것이었다.”라는 구절이 연상되기도 하는 제목에서 화자의 심상치 않은 삶의 행로(行路)를 직감케 한다.

첫 행은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고 산다.”로 시작 된다. 그러나 이미 ‘내가 누군지 모르는 자’임을 자처하는 화자는 제목에서 ‘헛것을 따라 다니다가’라는 원인을 밝히고 있음을 볼 때 이 시를 쓰는 시점의 화자는 이미 자아의 존재를 성찰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따라서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고 산다.”라는 독백은 성찰에 이르게 한 존재들과의 관계를 낮은 자세로 독자에게 고하려는 화자의 겸손한 마음이 드러난 표현이다.

첫 연에서 화자는 “내가 꽃인데” 꽃이었음을 모르고 “꽃을 찾아다”녔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꽃’이 상징할 수 있는 의미를 떠올려 본다면, 아름다움과 향기, 열정과 환희를 생각해볼 수 있고 풍상을 견디며 결실을 위한 과정을 연상할 수 있는 바, ‘자아의 존재’에서 꽃이었음을 발견하지 못하고 ‘타(他)의 존재에서 ‘꽃’을 찾으려했던 ‘삶의 헛됨’에 대한 비극적 존재에 대한 성찰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바람’이 상징할 수 있는 의미를 떠올려 본다면, 자유, 도전, 변화, 무한(無限)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바, “내가 바람인데 한 발짝도 나를 떠나지 못하고 스스로 울안에 갇혀 산다.”는 행간에서 ‘좀 더 자유를 찾아, 좀 더 도전하며, 무한을 향해 나아가지 못한 했던 뼈저린 성찰을 느낄 수 있다.

2연에 이르러 자신이 ‘꽃’이며 ‘바람’임을 깨달은 화자는 이제 “내가 만물과 함께 주인”임을 밝히고 있다. 이어지는 행에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한평생도 모자란 듯 기웃거리다가/ 나를 바로 보지 못하고/ 나는 나를 떠나 떠돌아다닌다.”라고 함으로 자신과 독자에게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인가?’라고 은유적으로 질문하고 있는 듯하다. 헛것을 따라다니다가 비로소 ‘사람이 꽃’임을, ‘사람이 바람’임을 깨달은 성찰은 그 시기가 언제이든 참으로 아름다운 발견이요, 반전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나무 같은 사람, 꽃 같은 사람’이라 하지 않고 “내가 나무이고/ 내가 꽃이고/ 내가 향기”라고 했는가? 그것은 ‘헛것’인줄 모르고 찾으려 했던 무수한 시간과 삶의 편린들 속의 열망 자체를 후회함이 아니라 스스로 주인이며, 나무이며, 꽃임을 자각하며 자신을 바로 바라보기를 인류에게 희구하고 있음이다.

사물과 같은 존재가 될 때 비로소 사물과 소통할 수 있을 것이며 언젠가 “나 없는 내가 되어 떠돌아다니다”가 흙으로 돌아갈지라도 나무뿌리나 꽃의 뿌리의 모세관을 타고 올라 꽃향기를 발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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