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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영 시문학 칼럼](21)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생이란
[김필영 시문학 칼럼](21)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생이란
  • 뉴스N제주
  • 승인 2022.11.26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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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오세영 시집, 마른하늘에서 치는 박수소리 : 민음의 시 185) 24쪽, 생이란. 감상평 : 김필영(시인)

생이란

오세영

 

타박타박 물길을 간다.
자갈밭 틈새 호올로 타오르는
들꽃 같은 것,

절뚝절뚝 사막을 걷는다.
모래바람 흐린 허공에
살폿 내비치는 별빛 같은 것,

헤적헤적 강을 건넌다.
안개, 물안개, 갈대가 서걱인다.
대안에 버려야 할 뗏목 같은 것,

쉬엄쉬엄 고개를 오른다.
영(嶺) 너머 어두워지는 겨울 하늘
스러지는 노을 같은 것,

불꽃이라 한다.
이슬이라 한다.
바람에 날리는 흙먼지라 한다.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생生, 가장 아름다운 존재의 형식』

멸성으로 태어났으나 생명이 사라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사라지는 과정은 슬퍼도 아름다울 수 있다. 같은 생명도 그 삶의 형태와 빛깔과 향기는 다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제각기 다른 삶의 존재의 형식으로 사라져가며 제각기 다른 미적 가치를 발산한다. 그러면 인간의 삶에서 존재적 아름다움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오세영 시인의 시에서 인간 의 생(生), 그‘아름다운 존재의 형식’을 탐색해본다.

5연에 걸쳐 펼쳐진 존재의 형식은 영상미 넘치는‘시각적 미학“으로 옷을 입은 외롭고 쓸쓸한 이미지이나 이미지에 은유된 존재의 형식은 제각기 다른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를 발산하고 있다.

각 연의 “가고, 걷고, 건너고, 오르는” 걸음의 형태에서 다가오는 이미지는 우리 인간의 삶의 속도와 형태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들꽃, 별빛, 뗏목, 노을의 이미지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삶의 무대의 배경이 되는 자연의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첫 연은 “타박타박 물길을 간다”는 느린 걸음의 존재의 형식을 이야기하고 있다. 첫 행간에‘타박타박’이란 걸음의 속도를 일컫는 부사를 도입한 것은 빨리빨리 문화가 난무하는 현 세태에서 ‘짧은 생을 서둘러 갈 필요가 무엇인가’라고 에둘러 말하는 듯하다.

어차피 “자갈밭 틈새 호올로 타오르는 들꽃 같은“ 삶이라면 척박한 땅에 어떻게든 뿌리를 내려야 하는 삶일 것이기 때문이다.

2연에서 화자는 “절뚝절뚝 사막을 걷는다.” 우리 생을 살아가며 원치 않아도 닥치는 재해나 사고를 만나 나타날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타박타박 홀로 걸어오는 동안 발에 물집이 잡히고 넘어져 깨어지고 뼈는 뒤틀어질 수 있음이다.

그러나 아무리 막막해 보이는 사막 한 가운데를 걸어가도“모래바람 흐린 허공에 살폿 내비치는 별빛 같은” 희망이라는 것이 있기에 살아있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3연에서 펼쳐지는 생은, 보이지 않는 내일을 향해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한치 앞을 모르는 안개 낀 육로를, 물안개 낀 물길을 건너야하는 길을 우리는 숙명이라 부르며 건넌다. 그 길에 물을 건너고 나면 뗏목처럼 버려지면서도“헤적헤적 강을 건”너야 한다. 타박타박 물길을 가고, 절뚝절뚝 사막을 지나면 우리의 생 앞에 다가오는 것은 무엇인가?

4연에 등장하는 우리의 이미지는 어두워지는 겨울 석양에 영(嶺)을 넘는 존재다. 가파르거나 아직 넘어야 할 준령이 남아있을 때 해가 짧은 겨울의 석양에 노을마저 스러지고 있는 고개를 왜 쉬엄쉬엄 넘어가야 하는가?

그 노을로 인해 내일 아침 해가 밝아올 수 있음에 쓰러지지 않고 쉬엄쉬엄 고개를 넘으며 스러지는 겨울하늘의 노을을 바라보며 스러져야 하는 우리의 뒷모습을 묵상해볼 수 있는 것이리라.

마지막 연의 행간은 우리의 생을 불꽃, 이슬, 먼지로 은유한다. 우리의 생이‘불꽃이다’라 단정하지 않고 “불꽃이라 한다.”라고, ‘이슬이다’라고 단정하지 않고“이슬이라 한다.”라고, ‘흙먼지다’라고 단정하지 않고 “흙먼지라 한다.”라고 타자의 화법으로 에둘러 묘사했을까.

그것은 우리가 왕이든, 종이든, 부자든, 빈자든, 제각기 존재해온 걸음들이 허망한 스러짐이 아닌 다만 자연으로 돌아가는‘생의 아름다운 존재의 형식’의 하나임을 말하고 있음이다. 자연에 녹아든‘생의 일기’를 지금 살아있음으로 느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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