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18)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햇빛과 연애하네
[김필영 시문학 칼럼](18)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햇빛과 연애하네
  • 뉴스N제주
  • 승인 2022.11.0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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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김규화시집 시집, 햇빛과 연애하네 : 책 만드는 집) 45쪽, 햇빛과 연애하네

햇빛과 연애하네

김규화

가을 산의 나무가 햇빛과 연애하네
가을 산에는 단풍이 든
가을 산에는 단풍이 미처 안 든
불새의 깃털이 수두룩 꽂혀있네

햇빛이 먼 길을 단숨에 달려와
나무의 몸을 만지고, 반짝반짝
나무는 웃는 눈 노래하는 눈 빛나는 눈을 뜨고
가만히 애무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네
연애하고 있네
몸을 곧추세우고
엄마 젖 먹고 잠이 든 아가의 입술처럼
이파리마다 조랑조랑 붙어 있네

햇빛은 사랑을 하고 또 하고
나무는 제 몸의 깃털에 불을 붙이고 또 붙이고
붉은 깃털은 더 붉게 노란 깃털은 더 노랗게 화들짝 타는 불새가
불두덩 위에서 불의 알을 낳네

나무가 가을 산을 불사르어 연애하네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자연의 신비로운 조화, 사랑학 개론』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해야 하는 숙명을 유전 받은 나그네다. 사랑으로 사람을 창조한 것을 강조한 한 경전은 창조주를 가리켜 ‘사랑은 가진 존재’라 하지 않고 바로‘사랑’이라 하였으니 사랑이라는 무한의 관념을 빼놓고 사람의 생명과 삶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사랑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사랑의 힘으로 태어나고 존재한다. 단풍으로 물들어가는‘가을산’에서 자연의 신비로운 조화를 관찰하여『햇빛과 연애하네』로 은유한‘김규화 시인’의 詩에서『사랑학 개론』을 읽는다.

첫 연은 “가을 산의 나무가 햇빛과 연애하네”로 시작 된다. 계곡의 물소리를 깨우고 불어오는 갈바람을 마시며 ‘가을산’을 오르던 시인은 단풍 든 나뭇잎과 단풍이 미처 안 든 대조적 빛깔의 나뭇잎에 꽂히는 햇살에서 ‘불새의 깃털’을 발견한다. 이 행간에서 ‘가스통 바슐라르’의 “불의 시학”이 연상된다.

온 몸을 불사르며 나뭇잎위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온 몸으로 퍼덕였으면 “불새의 깃털이 수두룩 꽂혀” 나뭇잎을 붉게 물들게 했을까.

햇빛과 나뭇잎의 ‘연애’가 역동적 운율과 은유로 달아오르는 2연은 ‘연애의 장면’을 성스럽게 은유하고 있다. “햇빛이 먼 길을 단숨에 달려와 나무의 몸을 만지고, 반짝반짝” 빛난다는 이 묘사는 초현실적으로 보이나 과학적으로도 손색이 없다.

사랑하면 먼 길도 단숨에 달려오듯 ‘햇빛’도 태양을 떠나 1억4960만 킬로미터를 초속 30만 킬로미터 속도로 날아와 ‘불새’가 되었기 때문이다. 중력 없이도 사랑을 찾아 1600킬로미터의 대기권을 날아온 빛이며 바람이며 날개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방법은 ‘기다림을 아는 일’이라 한다.

“웃는 눈, 노래하는 눈빛”으로 애무해주기를 바라고, 이파리마다 아가의 입술을 조랑조랑 달고 따뜻한 입맞춤을 기다리는 나뭇잎처럼 사랑은 ‘상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을 태워주며 기다릴 때 가을단풍처럼 달아오를 수 있다.

시는 이 두 대상의 치명적 사랑의 비결을 은유하고 있다. 나뭇잎 위에 영혼을 불태우는 불새인 햇빛과 그 사랑을 기다리는 나뭇잎처럼 서로를 배려하고 연기를 참아가며 불을 피운다면 사랑은 아름답게 타오를 수 있지 않을까.

이제『사랑학 개론』의 결론을 내리고 가을산을 내려와야 한다. 이 불같은 사랑의 조건을 3연은 “햇빛은 사랑을 하고 또 하고/ 나무는 제 몸의 깃털에 불을 붙이고 또 붙이고”라고 함으로 지속적인 애정을 나타내는 사랑만이 결실을 맺을 수 있음을 알게 한다.

가을산처럼 외로운 사람들은 사랑이 찾아든 순간 나뭇잎처럼 제 몸의 깃털에 불을 붙이고 또 붙여볼 일이다. 그럴 때, 화들짝 타는 불새가 불두덩 위에서 불의 알을 낳을 것이다.

단풍이 낙엽이 되어 봄을 준비하는 소멸의 미학은 ‘수직적 불의 시학’이나 김규화 시인의『햇빛과 연애하네』에서 자신을 태워 불의 알을 낳는 단풍빛깔 사랑은 ‘수평적 불의 시학’이다. 그 사라지지 않을 사랑의 절정이 사랑에 주린 우리 가슴속 가을산을 물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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