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22)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지금 내가 가진 것
[김필영 시문학 칼럼](22)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지금 내가 가진 것
  • 뉴스N제주
  • 승인 2022.12.0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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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강은교 시집, 바리연가집 : 실천시선 217) 27쪽, 지금 내가 가진 것. 감상평 : 김필영)

지금 내가 가진 것

강은교

지금 내가 가진 것 :
너무 큰 가방, 너무 무거운 코트, 서랍이 많은 신발장, 떠날 시간이 지나버린 은빛 기차표, 팔락거리는 한밤중 창의 눈까풀들, 만질 길 없는 지금, 손톱에 꽈악 낀 고독,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너와 걸은 오솔길, 거기 피어 있던 보랏빛 흰술패랭이꽃, 기타, 기타아, 등등, 둥둥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욕망의 허망을 일깨워주는 지금 우리의 소유(所有)』

KTX보다 빠른 슈퍼카를 비롯하여 억대 수입차만 124대를 보유한 자동차 애호가로 알려진 재벌 총수에 대한 기사를 본적이 있다.

고대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의 부와 소유의 기록은 [한 해의] 세입금의 중수가‘육백 육십육 금 달란트’였다고 하니, 한 해에 25톤이 넘는 금을 획득한 셈인데, 이것은 오늘날의 가치로 2억 4000만 달러나 된다고 한다. 지구상에 사는 우리 각자의 소유는 무엇이고 얼마나 될까? 강은교 시인의 시에서 화자가 지닌 소유의 현주소를 들여다본다.

필시 시인이었을 화자는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을 행간에 하나씩 열거하고 있다. 여기서 순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무엇이 얼마나 더 귀하거나 헐한지도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열거되는 사물에 시인은 어떤 관념도 부여하지 않고 있다. 본문에서 끌어다 열거하면, “너무 큰 가방, 무거운 코트, 서랍이 많은 신발장, 은빛 기차표”등은 여정의 도구와 관련이 있다.

“너무 큰 가방”은 무엇인가? 짧은 기간 가깝게 여행을 할 때는 간편한 옷가지나 노트와 몇 권의 시집 등을 챙겨 넣는 가방이면 되므로 그다지 큰 가방일 리 없다. 따라서“너무 큰 가방”이란 인생이란 여정에 필요한 온갖 것들을 넣는 도구, 즉 물질적 소유를 담을 욕망의 그릇을 상징할 수 있다.

사람 수 만큼 각기 다른 욕망의 가방들, 우리는 얼마나 큰 가방을 가지고 있었으며, 앞으로 들고 갈 가방은 또 얼마나 큰 가방일까, 생각해보게 한다.

코트는 의상 중에 가장 겉에 입는 옷이다. 속에 어떤 옷을 입었든 넉넉한 코트를 입으면 실제의 모습도 가려질 수 있음을 생각할 때, 화자가 입은‘너무 무거운 코트’는 외적 치장에 필요한 체면 같은 것일 수 있다.

발이 둘뿐인 신발이 아무리 많아도 여행을 할 때는 한 켤레밖에 신을 수 없으면서도‘서랍이 많은 신발장’에 가득한 신발들과 함께 산다. 왜 신발장의 서랍이 늘어만 갈까? 버리지 못하고 살기 때문이다.

마른 땅이든 진흙탕 길이든 주인을 한 번도 배반하지 않고 동행했던 길에서 파란만장한 여정을 함께한 산 증인일 것이기에 버리지 못하고 산다. 가고 싶은 곳을 향하여 제 때 가보지 못한 회한은 평생을 따라다닌다.

초등학교 교정을, 늙으신 은사님 댁을, 그대를 처음 만났던 장소를, 함께 가지 못한 노을 타는 저녁 바닷가를, 아직도 가보지 못하고 이미“떠날 시간이 지나버린 은빛 기차표”를 버리지도 못하고 산다.

불면의 밤은 깊어만 가고, “팔락거리는 한밤중 창의 눈까풀들”은 그리움의 열병으로 말똥말똥하다. 그러나 다시 돌아가려해도‘너무 큰 가방이 무겁고, 코트가 무겁고, 은빛 기차표는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잡아보고 싶어도 “만질 길 없는 지금”어디를 향하여 손 내밀 수 없는 “손톱에 꽈악 낀 고독”이 집채만 하다.

막상‘가진 것 다 내 놓으라’하면 마땅히 내 놓을 것이 없어서, 나누어 갖자 해도 나눌 게 없어서 “그리고, 그리고”를 연신 내뱉다가 걸어온 길 다 말 못하고 “너와 걸은 오솔길, 거기 피어 있던 보랏빛 흰술패랭이꽃”을 생각해 낸다.

죄다 사라져버려도 지금 그곳에 있을 것만 같기 때문에 “기타, 등등” 버리지 못할 것들을 데리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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