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23)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나의 화장법
[김필영 시문학 칼럼](23)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나의 화장법
  • 뉴스N제주
  • 승인 2022.12.17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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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문정희 시집, 응<민음의 시 205. 30쪽. 나의 화장법)

나의 화장법

문정희

마치 시를 쓸 때처럼
나의 화장법은
먼저 지우기부터 한다
빈자리에 한 꽃송이 피운다
고통이 보석지팡이가 되고
가난이 장미가 되는 젊음*을 불러온다
신비한 샘물이 새로 차오르는
달의 계단을 즐긴다
기실 시법(詩法)은 길이 없음을 알고 있다
길을 만들려고 할뿐이다
이게 뭐죠?
어때요?
온몸으로 질문을 할 뿐이다
오묘한 나만의 이미지와 여백을 만들고
그리고는 누군가의 매혹 때문에
한 송이 꽃 속에서
그만 길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이다.
* 릴케.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화장법과 시법, 그 옴니버스적 미학』

하얀 가운을 입고 젖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욕실에서 나오는 여인의 모습은 어떤가. 신혼여행을 가서 첫날밤을 맞은 신부가 욕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고 신랑이 기절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신부화장’을 다 지워 속눈썹도 떼어내고 눈썹이 반쯤 잘린 창백한 얼굴에 하얀 가운을 입고 나타났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화장법이 가장 잘하는 화장일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문정희 시인이 시작법과 화장법을 옴니버스로 묘사한 시인의 화장법을 들여다본다.

첫 연에서 “마치 시를 쓸 때처럼 나의 화장법은 먼저 지우기부터 한다.”로 시작된다. 시를 쓸 때, 시인이 정신과 마음을 온갖 잡념을 깨끗이 지우고 마음에 여백을 펴 시의 주제만을 묵상하여 듯, 화장의 첫 단계도 피부를 세안하고 모공까지 피부바탕을 깨끗이 지우므로 기초화장과 색조화장을 펼칠 여백을 준비해야 함을 알게 한다. 그래야만 행간에 시어를 채워나가듯“빈자리에 한 꽃송이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3연엔 거울 앞에서 화장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묘사되고 있다. 마음의 여백을 들여다보듯 화장을 지운 얼굴을 들여다본다. 잡티와 잔주름 등 세월의 기억들이 각인된 얼굴을 들여다본다.

한 잎 한 잎 꽃잎 같은 시어들이 행간을 향해 몰려도 감정의 질서를 잡아나가듯, 두터워져 뜨지 않게 팩트로 가볍게 두드려 주고, 피니쉬 파우더로 두드려 준다. 무수한 이미지들 속에 가장 적합한 시어를 선택하며 자아를 찾으려는 행복한 번뇌(고통)로 동화(보석지팡이)처럼 시의 완성을 해 가듯, 이제 색조를 선택하여 선을 그려나가야 한다.

그러나 여러 편의 시를 써온 시인처럼 평생을 화장을 해온 사람일지라도, 시가 무의미한 이미지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객관적 상관물을 불러들여 상상과 은유를 통해 낯설게 하고, 다선구조를 통해 다의성을 부여하듯, 화장할 때마다 달리 시도해보는 선의 표현과 색조의 조합은“가난이 장미가 되는 젊음*을 불러”오는 일처럼 완성의 결과가 궁금해지고 설레게 된다.

시의 결구를 향하며 운율을 타고 역동적 이미지가 감동의 색채를 더해가듯 아이 샤도우를 터치하고 손등에 발라보는 립스틱 색상을 선택하여 달라진 모습을 기대하며“신비한 샘물이 새로 차오르는 달의 계단을 즐”긴다.

4연에 이르러 “기실 시법(詩法)은 길이 없음을 알고 있다”는 묘사는 당황스럽다. 그러나 시인이라면 그 말이 이내 인정하게 된다. 시가 진리로 향하는“길을 만들려고 할뿐이”듯, 화장도 아름다움으로 가는 길을 만들려고 할 뿐이며, 어떠한 화장법도‘젊음’이라는 원초적 아름다움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화장법도 길이 없음을 알고 있음이다.

따라서 마주하는 독자들에“이게 뭐죠? 어때요? 온몸으로 질문”하듯, 동일한 응석을 부리며 당신 앞에 좀 더 아름답게 나타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화장을 마친 거울을 들여다보면,

시작(詩作)할 때마다 매번 시도하듯,“오묘한 나만의 이미지와 여백을 만들고”‘아포리아’에 막혀 무지와 혼돈을 겪고 나서야 생경하고 낯선 사유의 꽃으로 피어난 시가 자신이 쓴 시인 것도 잊어버리고 희열하듯, 화장을 마친 거울 속의 얼굴이 자신의 모습인 것도 잊어버리고 그“매혹 때문에 한 송이 꽃 속에서 그만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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