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 칼럼](11)쉬지 않는 아빠
[경제인 칼럼](11)쉬지 않는 아빠
  • 현달환 편집장
  • 승인 2020.10.09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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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만난 제주인, "아, 제주마씸?"
[김택남 자서전] 제주 소년, 꿈을 투망하다
(주)천마그룹 김택남 회장의 인생 스토리

뉴스N제주가 창간기념에 맞춰 '제주경제인 칼럼'을 게재하는 가운데 그 첫 순서로 선보인 김택남의 자서전, '제주 소년, 꿈을 투망하다'라는 내용이 독자들로부터 많은 감동의 후기들이 전해오고 있다.

이번에 올린 '쉬지 않는 아빠'라는 주제는 김택남 회장이 직장생활에서 하다가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게 되는 과정에 대해 서술했다.

사람이 살다보면 우연이라는 게 있다. 그 우연히 일어나는 과정에서 자신의 업무와 맞물려 일어난다면 성공할 확률이 많다.

김회장이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업무를 맡게되면서 사업을 하게 된 내용을 보면서 사람이 열심히 자기일을 하다보면 '운도 자기 편이 되는구나'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것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만큼 그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가 될려고 노력하고 그 자리에 올랐을 때 그 행운이 따라오는 것이다.

사업을 해도 타이밍이 맞물려야 성공의 자리가 자신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우리가 사업에서 실패하면 대개 자신의 실력보다 운이 없다고 토로한다. 흔히 사람들이 운칠기삼(운이 70%, 기술 30%)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다. 운도 이래서 중요하다.

김택남 회장이 보여준 모습은 자신에게 냉정하고 불의에 대해 타협할 줄 모르는 성격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그의 성공의 기반에는 그러한 책임감으로 뭉친 철저한 업무실행 능력이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하루 3시간만 잠을 잤다는 것이 여기서 증명된다. 우리가 성공에 대한 열정과 확신이 생겼을 때 잠이라는 것은 이상하게 다 도망가 버린다.

그레서 우리는 늘 열정으로 뭉친 열정맨으로 살아가야할 이유이다.

오늘 김택남 회장의 '쉬지 않는 아빠' 편에 탑재된 가족 사진을 보면서 남자(아빠)는 가족을 위해 온몸을 바쳐 일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지금은 웃고 있지만 당시는 힘들었고, 지금은 울고 있지만 당시는 편하게 살았건 세상의 가장들이여, 당신의 땀과 열정에 큰 박수를 보낸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가족은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왔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남자로서 아직도 열정과 꿈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지금 '쉬지 않는 아빠'에게 따뜻한 응원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지금 잠을 자는 남편의, 아빠의,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라. 숨소리를 들어보라. 

남자는, 아빠는, 남편은 가족이 큰 그릇을 장만하면 그 그릇을 채우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많은 필독이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 주]

되도록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만큼 지난날의 후회도 커진다. 밖에서는 무서울 것 없는 사업가였지만집에서는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없어 미안하기만 한 아빠일 뿐이다
포항종합제철엔지니어링에서 광양제철소를 건설할 때 내가 맡는 부분은 제선공정에 관련된 업무였다.

“김 계장님 퇴근하시면 저녁이나 드시죠?”

설계도면을 거절당한 협력업체 직원은 돌아가지 않고 내 눈치만 살폈다.

“요즘 밥 못 먹는 사람 있습니까? 돌아가셔서 설계도면이나 수정하세요.”

나의 핀잔 섞인 거절에도 막무가내였다.

“김 계장님도 저녁은 드실 거 아니에요. 잠깐만 시간 내주시면 됩니다.”

그날은 작정이라도 한 듯이 무안을 줘도 버티고만 있었다. 다른 직원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것은 오히려 내가 되었다.

“그럼 이따가 퇴근할 때 연락드릴 테니까 지금은 돌아가세요.”

“그렇게 거절하신 게 벌써 몇 번인데, 퇴근시간까지 기다리겠습니다.”

협력업체 직원은 퇴근시간까지 서너 시간을 꼼짝 않고 기다렸다.

나는 일이 끝나자마자 연행이라도 된 듯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이끌려 저녁 식사 자리에 가게 됐다.

포항종합제철엔지니어링에서 광양제철소를 건설할 때 내가 맡는 부분은 제선공정에 관련된 업무였다. 제선공정은 철광석과 원료탄, 유연탄을 고로에 넣은 뒤 높은 온도의 바람을 불어넣어 원료탄이 타면서 나오는 열에 의해 철광석을 녹여 쇳물이 되는 작업이다.

뜨거운 바람을 만들어내는 열풍로나 쇳물을 이동시키는 전로 등에 관련된 전기설비의 설계와 감리를 맡았다. 가장 높은 열을 내는 곳인데다가, 원료탄에서 나오는 미분탄도 많이 날려서 설계에 각별히 주의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모든 부품을 직접 생산하지는 않고 외부 협력업체를 통해서 생산하게 됐는데 하청업체의 전기설비 설계도면이 매번 문제가 됐다. 표준기술서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나였고 일에 관해서는 야무지고 꼼꼼한 편이니 일에 대한 기준이 남들보다 높았다. 특히 전기설비는 안전에 관련된 일이기에 나는 예나 지금이나 허투루 지나가는 법이 없다.

하청업체들의 설계도면은 번번이 통과하지 못했고 답답해지는 것은 협력업체들도 마찬가지였다. 마감날짜는 다가오는데 설계에서부터 클레임이 걸리니 일의 진행이 더디기만 했다. 그래서 감리를 맡은 나에게 밥을 먹자, 술을 먹자는 제안들이 많았다.

되도록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만큼 지난날의 후회도 커진다. 밖에서는 무서울 것 없는 사업가였지만집에서는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없어 미안하기만 한 아빠일 뿐이다
되도록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만큼 지난날의 후회도 커진다. 밖에서는 무서울 것 없는 사업가였지만 집에서는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없어 미안하기만 한 아빠일 뿐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자리를 즐기지 못했다. 감리기준은 설계기술에 달려 있지, 나와의 친분과는 상관없는 노릇이었다. 엄격하고 공정하게 대할 사람들과의 저녁 식사는 불편했다.

가끔 선배나 동료들의 권유에 어쩔 수 없이 쫓아가도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어색하기만 했다. 그런 내 성격을 뻔히 아는 업체에서 저녁을 먹자고 강권하자 나는 오늘 싫은 소리를 단단히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따라 나섰다.

협력업체 사장은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온 듯이 나를 반겼고 푸짐한 잔칫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술잔이 돌아가기 시작했지만 나는 목석처럼 자리만 지킬 뿐이었다. 불편한 사람들과의 저녁 식사는 나에게 곤혹이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가자, 협력업체 사장은 주위를 물렸다. 그 쪽에서도 나에게 할 이야기가 있어 어렵게 만든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일단 들어보자는 심정이었다. 이상한 청탁을 하면 단칼에 거절하고 그 자리에서 일어서리라 마음먹었다.

“김 계장, 나 좀 살려줘.”

업체 사장은 시작부터 죽는 소리였다.

“납기일이 있는데 그렇게 설계부터 퇴짜를 놓으면 어떡해?”

“사장님이 저 좀 살려 주세요. 설계를 제대로 해 오셔야죠. 그렇게 해 오시면 저는 설계도면 통과 못 시켜요. 사고 나면 비용도 문제지만 사람이 다치는데요.”

업체 사장의 엄살에 나는 내가 더 죽는 소리를 했다.

“그래서 말인데…”

사장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우리 설계를 김 계장이 하면 어떨까?”

예상치 못한 제안에 나는 순간 멍해졌다.

“설계를, 제가요?”

“김 계장 말대로 잘못 설계하면 사람이 다치는데 허술하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광양천지를 다 찾아도 김 계장 마음에 들게 설계할 사람도 없는데 자네가 수고를 좀 해 줘.”

되도록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만큼 지난날의 후회도 커진다. 밖에서는 무서울 것 없는 사업가였지만집에서는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없어 미안하기만 한 아빠일 뿐이다
되도록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만큼 지난날의 후회도 커진다. 밖에서는 무서울 것 없는 사업가였지만 집에서는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없어 미안하기만 한 아빠일 뿐이다

황당한 제안에 나는 거절의 의사를 표했지만 업체 사장의 설득은 이어졌다.

“자네는 없는 자격증도 없고, 전기설계는 광양바닥에서 자네보다 잘하는 사람이 없는데 나 좀 도와주게. 이러다가 납기일 못 맞추면 우리 공장 문 닫아. 저 직원들 다 실업자 돼.”

설득이 안 먹히자 나중에는 반 협박까지 이어졌다. 간곡한 설득에 생각해 본다며 자리를 일어섰다. 집에 오는 길, 머리가 무거워졌다. 번번이 설계수정을 요구하는 것도 답답한 일이었고 설계도면을 수정할 때마다 납기일이 촉박해져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공장의 전반적인 전기시스템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협력업체 사장의 말처럼 나였고 공장의 필요에 맞게 전기설계를 가장 잘할 사람도 협력업체 사장의 생각대로 나였다. 그렇다고 내가 감리할 도면을 내가 설계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고민이 시작됐다.

“아니, 왜 안 돼?”

상사인 과장님께 고민을 털어놓자 당시 과장은 내 고민이 우습다는 듯 내게 반문했다.

“김 계장 능력 있으니까, 설계를 제대로 잘하겠지.”

과장은 오히려 나를 격려해 주고 있었다.

“그래도 저한테 납품하는 건데 제가 설계하는 건 이상하지 않아요?”

과장의 격려에도 나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자네가 하든, 업체에서 하든 잘못되면 감리한 자네 책임인데 차라리 자네가 하는 게 낫지.”

과장은 자꾸 고민만 하는 나를 답답해 했다. 과장의 말대로 문제가 발생하면 납품을 한 업체보다는 그 제품을 승인한 주무부서의 책임이 됐다. 누가 설계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확하고 안전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오랜 고민을 끝내고 설계를 해보겠노라, 업체 사장한테 연락을 했다.

“고마워, 김 계장. 내 이 은혜 평생 잊지 않을게.”

그때부터 낮과 밤, 두 가지 신분이 생겼다. 낮에는 포항종합제철 엔지니어링의 계장이었지만 밤에는 전기설계 회사의 사장님이 되었다. 퇴근을 하고 나서 동료들과 다시 모였다.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던 과장, 나의 승진을 시기했던 동료들과 함께 ‘신성엔지니어링’ 이라는 회사를 창업하고 당시 공장에 필요했던 전기기기들을 설계했다.

늘 두 가지 일을 하며 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루는 가족 때문이다. 나뿐 아니라 내 나이 또래의 모든 가장이 슈퍼맨이 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이었다.
늘 두 가지 일을 하며 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루는 가족 때문이다. 나뿐 아니라 내 나이 또래의 모든 가장이 슈퍼맨이 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이었다.

처음에는 살려 달라 부탁을 하는 업체 사장의 강권으로 시작했지만 조금씩 일을 부탁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아무리 비밀을 지켜 달라고 부탁해도 하늘과 땅, 사람 하나가 알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이런 저런 설계를 부탁하는 사람들 때문에 차라리 정식으로 회사를 창업해 당당하게 일을 하는 것이 좋을 듯싶어, 동료들과 설계 전문회사를 차리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이다.

하나의 일만 해도 빠듯한 시간인데 낮과 밤, 신분을 바꿔가며 일을 하자니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또 쪼개야 했다. 돈을 쪼개고 나누면 모자라기 마련인데 시간은 화수분 같아서 쪼개고 나누면 언제나 틈이 생겼다. 그러나 그 틈을 찾기 위해서 내가 챙기지 못한 것들도 많다.

나는 육지에 나오는 순간부터 한 가지 일만 한 적이 없다. 젊은날의 나는 늘 바빴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떻게 컸는지, 어린 시절 하나와 두나의 얼굴을 떠올리면 먹먹해질 때가 많다. 밖에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지만, 최선의 아빠였는지, 최선의 남편이었는지 생각해보면 아이들과 아내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바쁜 남편을 믿고 지지해준 아내, 열심히 일하는 아빠의 등뒤에서 자란 아이들, 그리고 멀리 제주에서 아들의 작은 성공에 흐뭇해하는 부모님들, 나는 그런 가족들이 있어 쉬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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