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 칼럼](24)초심
[경제인 칼럼](24)초심
  • 현달환 편집장
  • 승인 2021.01.09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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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만난 제주인, "아, 제주마씸?"
[김택남 자서전]제주 소년, 꿈을 투망하다
(주)천마그룹 김택남 회장의 인생 스토리

뉴스N제주가 창간기념에 맞춰 '제주경제인 칼럼'을 게재하는 가운데 그 첫 순서로 선보인 김택남의 자서전, '제주 소년, 꿈을 투망하다'라는 내용이 독자들로부터 많은 감동의 후기들이 전해오고 있다.

이번에 올린 '초심'이라는 제목은 김택남 회장이 회사를 운영하면서 학업에 대해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시간을 할애하고 공부하는 과정을 서술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정규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현장에서 일을 하며 사회생활을 하는 경우가 우리 사회엔 허다하다. 이러한 실정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교육에 대해 한이 맺힌 사람들이 많다.

초등학교만 나와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그렇게 일찍 사회생활을 하며 살았던 형님들, 누나들을 보면서 업신여기기 보다 자신이 동생들을 위해 희생하는 그런 아름다운 정신에 경건해져야 된다고 말하고 싶다.

이 교육에 한이 맺그러한 과정을못한 사람들이 흔히, 어려움을 겪고 성공을 한 뒤 이제 살만하면 사람들이 건강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을 드라마 혹은 실제로도 많이 본 적이 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재산보다도 건강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김택남 회장 역시, 고등학교를 인문계가 아닌 기술계통의 학교를 나와 일찍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되면 공부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으리라 생각됐다. 그렇게 공부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어도 공부를 하기가 쉽지 않다.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다행히 친구와 공부를 하면서 시험보는 과정을 그린 이 본문을 보면 김택남 회장이 솔직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자서전이지만 이러한 일까지 서술했다는 것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드러내고 '초심'의 마음을 가지려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김택남 회장의 얘기처럼 초심이란 것은 자전거 바퀴와 같다는 말이 적절한 표현인지도 모른다. 우리 집에도 몇 년 전 현병찬 선생이 써 주신 '늘 처음처럼'이란 글귀가 액자로 만들어져 걸려져 있다.

그런데, 매일 보면서도 '늘 처음처럼'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나마 그러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만 해도 어느 정도의 생활에서 파이팅하는 계기가 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김택남 회장은 '초심' '열심' '뒷심'이라느 3심을 말했지만 필자는 여기에 '강심'을 덧붙이고 싶다. 모든 것은 김택남 회장의 강심으로 이뤄졌다. 그 마음에는 열정과 정열을 모두 끌어 모아 제주에서 육지로 갈 때의 초심의 마음, 그러한 목표가 열심으로 이뤄졌고 많은 이들의 도움과 협력, 응원으로 뒷심을 발휘해 이 자리에 섰다는 것. 

평소 책을 좋아하는 김택남 회장이 더욱더 뒷심을 발휘할 날을 기대하며, 눈이 오면 직원들과 함께 발벗고 나서서 눈과 쓰레기들을 치우며 남을 배려하는 남자, 제주에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에게 울림이 된다.

신축년(辛丑年) 맞아 초반에 계속 안 좋은 날씨가 이어지는데 건강하시기를 기원하며 김택남 회장의 '제주소년, 꿈을 투망하다'가 종착역을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 가운데 이글을 통해 다시 한 번 자신과 가족의 모든 목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만들기를 빌면서 많은 필독이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 주]

사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삼심(三心)이 필요하다고 한다. “초심, 열심, 뒷심.” (제주발전포럼 모습)

“야, 나 너 때문에 망신만 당했다.”

내 간곡한 부탁으로 대리시험을 치룬 기영이 전화 목소리에는 황당함이 묻어 있었다.

“어떻게 됐는데?”

친구의 당황한 목소리에 애가 타기 시작했다.

“시험 치다가, 답안지 뺏기고 쫓겨났다, 미리 다 이야기된 거라며?”

친구는 시험 중간에 대리시험인 것이 탄로 난 듯했다. 내 자세히 알아보겠다며 당황한 친구의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던 나는 입안이 바싹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2009년에는 홍길동에게 몸을 여러 개로 나누는 분신술을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곧잘 들었다.

제주에, 포항에, 말레이시아에 벌려놓은 일들이 많았고 몸도 성치 않았다. 시간이 내 사정을 좀 봐줬으면 좋겠건만 늘 여지없이 흘러만 가고 대학원 기말고사가 다가왔다. 국내에 있었으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보겠지만 하필 말레이시아 출장기간과 때가 겹쳤다.

시간을 낼 방법이 없던 나는 학과 사무실에 사정을 알렸다. 리포트를 제출하거나 시험을 대체할 다른 방법을 문의했다. 융통성 없는 과 사무실에는 시험을 대체할 다른 방법은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그럼 시험만 치면 됩니까?”

해결책을 찾지 못한 나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그럼 내 대신 다른 사람 보냅니다.”

나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과 사무실도 난처했는지 알아서 하라는답변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대리시험을 치겠다, 선언한 나는 대학 동기인 기영을 졸랐다. 기영은 대학을 높은 성적(?)으로 마쳤지만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부탁할 사람은 기영뿐이었다. 미리 시험문제가 출제가 되었으니 답안지에 쓸 내용을 알려주었다.

자전거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고 만다. 바로 우리들 인생처럼.
자전거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고 만다. 바로 우리들 인생처럼.

“내가 대신 가는 거 학교에서도 아는 거지? 네가 쓰라고 한 내용만 적고 나오면 되는 거지?”

대리시험이 걱정된 기영은 내게 세, 네 번 다짐을 받았고 나는 걱정하지 말라며 불안해하는 기영의 등을 떠밀었다.

세상 일이 마음먹은 대로 이뤄지는 것도 없고 특히나 나쁜 일을 하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기영은 뒤에 앉으면 괜한 의심을 살까 싶어 제일 앞자리에서 시험을 치렀다. 시험감독으로 좀 더 나이 든 사람이 들어왔다면 초로의 아저씨에게 특혜(?)를 주었을 법도 한데 그날은 딸 또래의 어린 조교가 시험감독으로 들어왔다. 처음 본 아저씨가 시험을 치고 있으니 조교도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계속 기영 주변을 서성이더니 시험감독을 하다 말고 밖으로 나갔다. 답안지에 쓰인 ‘김택남’의 이름과 학적부에 있는 ‘김택남’의 얼굴을 확인한 모양이다. 심증에 물증까지 나왔으니 돌아온 조교는 기영에게 쪽지를 건넸다.

‘15분 내로 시험장에서 나가세요.’

쪽지를 받아든 기영은 당황했지만 친구와의 의리도 중요했다. 그때 나갔으면 좋았을 텐데, 기영은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끝까지 답안지를 작성했다. 15분이 지나도 기영이 시험장을 나가지않자, 조교는 답안지를 빼앗고 기영을 강제로 쫓아냈다.

자전거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고 만다. 바로 우리들 인생처럼.
자전거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고 만다. 바로 우리들 인생처럼.

친구의 선의는 어린 조교에게 봉변을 당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나는 친구에게 사과주를 거하게 사기로 약속하고 귀국하자마자 교수님에게 연락하기로 결심했다. 대리시험을 본 것이 결코 잘한 일은 아니었지만 시험을 대체할 다른 방법도 없이 고지식하게 시험만을 보라고 주장하는 교수님에게 화가 나 있었다. 단판을 짓기 위해 무례를 무릅쓰고 아침 일찍 교수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내 소개가 끝나자마자 따져 물었다.

“내가 석사를 받고 박사를 받는다고 교수할 것도 아닌데 적당히 학점 주시면 안 됩니까?”

나의 무례에도 000 교수님은 나이 많은 학생에 대한 예의를 잊지않았다. 그렇다고 쉽게 물러서지도 않았다.

“안됩니다. 공부한 만큼 성적을 받아 가셔야죠.”

교수의 융통성 없는 대답에 나의 목소리를 커졌다.

“아니 업무 때문에 시험을 볼 시간이 안 되면 대체할 방법을 알려줘야지, 무조건 시험만 보라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제가 홍길동입니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게요.”

교수님은 나의 변명에 일침을 놓았다.

“다른 학생들 다 시험을 보고 학점을 받아 갑니다. 나이 많고 하시는 일 많다고 특혜를 드릴 수는 없죠. 학교에서는 다 같은 학생이니까요.”

교수님의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초심을 잃고 있던 것이었다. 나는 순간 민망해졌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성적을 받아갈 수 있겠습니까?”

나의 목소리는 부끄러움으로 잦아들었다.

“00일에 교수실로 오세요. 재시험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교수님의 말에 나는 00일에 뵙자며 전화를 끊었다. 내 얼굴은 부끄러움으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자전거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고 만다. 바로 우리들 인생처럼.
자전거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고 만다. 바로 우리들 인생처럼.

처음처럼

신영복

처음 하늘을 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 날을 시작하고 있다.

사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삼심(三心)이 필요하다고 한다.

“초심, 열심, 뒷심.”

그 중에서도 초심이 제일 중요하다. 굳은 초심에서 열심이 나오고 초심을 잃지 않아야 뒷심을 발휘할 수가 있다. 초심을 잃는 순간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간다.

자전거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고 만다. 바로 우리들 인생처럼.
자전거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고 만다. 바로 우리들 인생처럼.

처음 육지에 올라와 인정받았을 때, 처음 하나가 태어났을 때, 사업을 시작하고 처음 수주를 받았을 때 터질 듯 큰 기쁨 뒤에 남은것은 ‘고마움’이었다. 나를 인정해준 상사에 대한 고마움, 하나를 낳아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 나를 믿고 작업을 맡겨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 나는 보답해야 할 사람들이 많았고 그 고마움을 보답하기 위해서 참 열심히 살았다.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잊지 않은 것, 그것이 나의 초심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해서 처음에 가졌던 고마움은 시간이 흐르면서 익숙해지고 당연해졌다. 초심이 사라지면 보답하기보다 대접받으려는 교만이 싹튼다. 교만한 마음에서 ‘열심’이 나올 수 없고 ‘뒷심’을 유지할 수가 없다. 초심은 달리는 자전거와 같다.

열심히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는 자전거처럼 초심을 유지하지 못하면 열심과 뒷심마저도 사라지게 된다. 나이를 먹었다고, 어린 학생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한다며 대접받고 특혜 받으려던 나에게 낭패로 끝난 대리시험은 오히려 약이 되었다.

약이 된 재시험이었지만 그리 끝이 좋지 않았다. 교수실에서 교수님과 단 둘이 보는 시험은 학생에게 부담스러운 일이고 대리시험을 시도한 학생에게 너그러운 교수님은 흔치 않았다. 재시험이 아니라 새시험이 됐고 문제도 새롭게 출제돼 준비한 답안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러나 초심으로 돌아간 나는 어렵지 않았다. 대접받으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나니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모르는 문제는 과감하게 교수님에게 물었다. 시험을 치면서 교수님에게 답을 요구하는 학생의 뻔뻔함에 두 손을 든 교수님은 시험 대신 강의를 해주었고 교수님과 토론을 하면서 답안을 작성했다.

대리시험에 재시험, 거기다 썩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나에게 그 시험은 마음 속 깊이 남아 있다. 학교에서 000 교수님을 볼 때마다 나는 나를 뒤돌아보게 된다. 처음 가졌던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내 마음에 감사함이 사라지진 않았는지, 자전거 페달을 밟듯 초심을 되새긴다.

자전거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고 만다. 바로 우리들 인생처럼.

자전거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고 만다. 바로 우리들 인생처럼.
자전거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고 만다. 바로 우리들 인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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