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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 칼럼](17)어른이 되는 나이
[경제인 칼럼](17)어른이 되는 나이
  • 현달환 편집장
  • 승인 2020.11.22 0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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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만난 제주인, "아, 제주마씸?"
[김택남 자서전] 제주 소년, 꿈을 투망하다
(주)천마그룹 김택남 회장의 인생 스토리

뉴스N제주가 창간기념에 맞춰 '제주경제인 칼럼'을 게재하는 가운데 그 첫 순서로 선보인 김택남의 자서전, '제주 소년, 꿈을 투망하다'라는 내용이 독자들로부터 많은 감동의 후기들이 전해오고 있다.

이번에 올린 '어른이 되는 나이'라는 주제는 김택남 회장이 배움이라는 갈증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과연 제목처럼 '어른이 되는 나이는 어느 때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는 시점으로 대답을 할 것이다. 판단할 수 있는 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덩치는 어른이지만 아이처럼 어른스럽지 못한다면 나이만 먹었지 결코 어른이라고 할 수가 없다.

어른이란 말은 '성숙'이라고 말을 하고 싶다. 나이가 먹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 간다는 유행가의 노랫말처럼 어른이라는 것은 사람이 성장하면서 독립할 수 있는 '완성'의 단계이다.

그런데 그 완성의 마지막 카드는 '겸손'일 것이다.

김택남 회장이 석사학위를 받고 느낀 것은 우쭐대는 마음보다 오히려 더 겸손해진다는 표현을 썼다. 사실 이게 정답이 아니라면 헛공부를 한셈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공부한다는 것은 지식 습득이 가장 우선이지만 사람됨됨이, 즉 겸손과 겸양이 없다면 그 지식은 헛공부가 된다는 것이다.

40대 후반에 다시 시작하는 김 회장의 배움의 갈증을 푸는 것을 보면서 요즘 교육의 치침이 되는 모범답안이 아닌가 싶다.

최근에 제주에 폴리텍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기술과 학문을 배울 수 있는 대학으로 우리나라가 앞으로 가야할 산.학의 융합교육, 모범답안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고3때라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 공부에만 매달린다고 다 해결할 수가 없다. 가정형편이 안 좋다면 산.학의 우선 순위를 바꾸어 풀어가는 것도 좋은 치료제라고 말하고 싶다.

김택남 회장이 늘 배우려는 자세는 이글을 읽는 사람들이 가져야할 자세일 것이다. 배우려고 한다면 다 해결이 되는 요즘 시대. 결국 자신의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로 성공의 열쇠, 결과는 달라진다는 것이다.

김택남 회장이 늦은 나이에도 포기하지 않고 배우려는 정신. 지금 손놓고 무엇을 할까 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본보기가 될 것이다.

도전,
어른이 되는 것도 이 도전의 결과물이다.
백조가 우아하게 물위에서 여유롭게 다니지만 물속에서는 바쁘게 헤엄친다. 누군가 결과물을 만들었다는 것은 물속에서 즉,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청난 인내, 눈물, 고통을 이겨낸 결과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배움의 길을 향해 정진해 온 김택남 회장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지금도 길 위에서 주저앉아 일어서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 글을 통해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빌면서 많은 필독이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 주]

김택남 회장이 과수원에서 귤을 따며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는 모습
김택남 회장이 과수원에서 귤을 따며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는 모습

“기영아 너 대학 안 다닐래?”

함께 점심을 먹던 기영에게 내 오래된 결심 하나를 털어놓았다.

최기영 사장은 나와 같은 포항종합제철엔지니어링 출신의 기술자다. 기영은 포항에서 근무했고 나는 광양에서 근무했던 터라 포항종합제철엔지니어링 시절에는 인연이 없었다.

내가 사업을 시작하고, 기영도 자신의 사업을 꾸리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꼼꼼하고 붙임성이 좋은 기영과는 같은 전기설계 업무를 하는데다 포항제철 엔지니어링이라는 공통점도 있어서인지 쉽게 마음을 주고받는 친구가 되었다.

“대학?”

기영은 갑작스런 나의 제안에 밥이 얹힌 듯 가슴을 두드렸다. 공부에 대한 갈증이 있던 나는 언젠간 대학을 가야겠다, 마음먹었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그 ‘언젠가’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회사에 근무할 때는 주어진 업무에 자격증 공부만도 시간이 부족했고 사업을 시작하면서 일에 매진하느라 시간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큰 딸, 하나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 되자 그 ‘언젠가’를 미루고 있을 수는 없었다.

 자식 앞에서 늘 크고 당당하게 보이고 싶은 것이 아버지 마음이다.

“기영아, 네 아들 의대에 가 의사되는데 너도 공부해야지. 나중에 아들 장가들 때, 며느리에게 당당하려면 대학 졸업장은 있어야 되지 않겠냐?”

나이가 벌써 마흔아홉, 자식과 같은 학생들과 대학을 다니는 것이 못내 부끄러웠던 나는 나와 같은 처지의 기영을 꼬였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고, 늦은 공부도 혼자가 아니라면 자신 있었다. 기영은 나의 설득에 마음이 흔들렸다.

“너도 다니는 거지?”

기영이도 못다 한 공부에 미련이 남기는 나와 마찬가지였고 기영과 나는 그 길로 포항에서 제일 가까이 위치한 동국대학교를 찾았다.

사업을 운영하면서 다니기에는 가까운 동국대학교가 제격이었다.

입학처에 들어서자, 교직원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공부를 하기 위해 찾아온 학생이라기보다 학교에 불만이 있어서 찾아온 학부모 같았다. 당시 입학처장이 걱정스런 얼굴로 우리를 맞았다.

“어떻게 찾아 오셨어요?”

쑥스럽기는 기영과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교직원들에게 나의 용건을 밝혔다.

포항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인데, 이 학교에서 못다 한 공부를 하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속내를 비쳤다.

우리의 용건을 밝히자, 긴장한 교직원의 얼굴이 풀어졌다. 다 늦게 공부하고 싶다는 초로(初老) 아저씨들의 용기를 높이 평가했는지, 어렵지 않게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편입이 이뤄졌다.

공부를 하겠다, 결심하는데도 용기가 필요했지만 막상 학교를 다니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가장 어려운 것은 시시각각 상황이 변하는 회사일 때문에 수업시간을 맞추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수업시간이 있으니 입찰을 미뤄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시험기간이니 공사기일을 연기해 달라고 할 수 없었다.

‘공부’가 직업인 학생들에 비해서 늘 초조하게 수업을 받아야 했던 것이 늙은 학생들의 고초였다.

늙은 학생들의 고초는 출석을 남들처럼 해야 하는 것뿐 아니었다. 교우관계에서도 만만치 않았다. 교수와 비슷한 또래의 학생이다 보니, 언제나 학생들은 우리와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나와 기영의 주변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고 수업에 들어오는 교수나 조교들 눈에 더 띄었다. 수업하는 사람도, 수업을 받는 사람들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김택남 회장이 과수원에서 귤을 따며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는 모습
김택남 회장이 과수원에서 귤을 따며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는 모습

하지만 나이를 먹고 하는 공부니 용기를 낸 만큼 얻은 것도 많았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우리나라는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의 잘못은 실수로 받아들이지만 공부가 모자란 사람의 잘못은 실력으로 인정해 버린다.

이런 학력위주의 사회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현실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 경영자로서 나는 직원을 채용할 때 인품과 능력을 우선시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받기 위해서 학력이 불필요하다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30년 전, 육지에서 일하던 나는 명절이 돼 고향을 찾았다. 부모님도 그립고 친구들도 보고 싶었다.

그때만 해도 아직 귀에 익지 않은 경상도 사투리 대신 제주말로 육지 놈들 흉을 실컷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친구들은 바빴다.

다들 대학생이 돼 공장에서 일하는 나와 놀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빼고 놀았다. 나의 괜한 자격지심에 그리 느꼈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나만 빼고 노는 친구들이 야속했고, 대학에 들어가야겠다는 마음이 처음으로 생겼다.

명절을 지내고 육지에 와 대학을 알아봤다. 대학만 다닐 수 없는 형편이니, 일을 하며 다닐 수 있는 야간대학에 진학해야 했고 고등학교 때 전공한 전기과에 들어갔다. 아마 다른 사람들은 대학을 생각하면 캠퍼스의 낭만부터 떠올리겠지만 나에게 대학은 배고픔이었다.

1년에 두 번씩 내야 하는 등록금은 내게는 큰 부담이었고 밤늦게 수업을 끝내고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잠들어야 했던 날이 많았다.

학교 앞 제과점에서 팔던 샌드위치 하나만 먹으면 이 허기가 금방 사라질 듯싶었지만 단돈 30원이 없어 그림의 떡처럼 눈으로 허기를 달래야 했다.

금전적으로도 어려웠고 시간도 늘 부족했지만 대학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대학은 내게 배움의 장이 되기도 했지만 나 스스로를 증명하고 발전해 나가는 지표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30년이 지나서 다시 찾은 대학에서 나는 그 당시 내 또래의 학생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근심 없이 친구들과 우정을 쌓아가며 공부에만 매진하는 그들을 보면 우리 아이들이 생활을 보는 것 같아 뿌듯한 반면,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나는 열아홉 살에 육지에 홀로 나와 모든 것을 책임지는 어른이 되어야 했다.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눈치로 살피며 경험으로 배우기 위해서 남모를 눈물을 참아야 했다. 그런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 나혼자는 아닐 것이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많은 사람들은 지금보다 이른 나이에 어른이 되어야 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가 어른이 되어야 했던 나이에 ‘학교’라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간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성격도, 자라온 환경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 서로 토론도 하고 규합도 하면서 나와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며 우리 세대보다 천천히 어른이 되어 간다.

그러나 천천히 어른이 되는 만큼 우려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요즘 대학들은 변화하려고 노력하지만 아직도 상아탑 속에 ‘실용’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기 힘든 부분들이 남아있다.

이론을 중심에 놓고 수업을 하기 때문에 현실과의 괴리가 어쩔 수 없이 생겨난다. 특히 경영학이라는 실용적인 학문은, 야전(野戰)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 세계에서 10년 동안 경험을 쌓은 내가 보기엔, 현실과 차이가 컸다.

국제 마케팅의 실무는 국가별로 특수한 사항에 따라서 융통성 있게 활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반해, 학교에서 배우는 국제 마케팅은 원론에 치우쳐 실무에 도움이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겸손해진다는 것이다.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사람은 배울수록 겸손해진다.나이 들어 공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겸손해진다는 것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사람은 배울수록 겸손해진다.

산·학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사회가 더 빠른 발전을 이룰 수 있다.

특히나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어른이 되는 학생들에게 대학에서의 교육은 사회에 나가 하나의 구성원으로 제 몫을 하기 위한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산·학 연계를 통해서 기업과 학문의 거리를 좁혀보려는 시도가 있지만 기대만큼 성과를 얻지 못한다. 대학과 실무를 동시에 경험한 나에게 아직도 고답적으로 이뤄지는 교육과 실무의 연계가 조금은 안타깝다.

산·학 연계가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 학생의 현장적응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교수들도 직접 산업계에 뛰어들어 이론과 현장의 차이점을 깨닫고 새로운 학문으로 개척해야 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이고 아래로부터의 변화보다 위에서 시작된 변화가 빠른 법이다. 교수들이 공고한 상아탑에 갇혀 학문의 깊이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산업계의 요구와 필요를 교육에 적용시켜 나가야 우리 사회가 더 빨리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 들어 공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어려운 일도 혼자가 아니면 훨씬 쉽고 ‘함께’라면 어려움도 이겨내는 힘이 된다.포스텍 최고경영자과정의 만학도 친구들이 나에게 귀중한 이유다.
나이 들어 공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어려운 일도 혼자가 아니면 훨씬 쉽고 ‘함께’라면 어려움도 이겨내는 힘이 된다.포스텍 최고경영자과정의 만학도 친구들이 나에게 귀중한 이유다.

나는 얼마 전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손 가야 할 데는 많은데 공부까지 벌려놔 공부하는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평생을, 남들에 비해 뒤처지지 않게 공부했지만 편하게 공부를 한 적은 없다. 그러나 내가 끊임없이 공부를 하는 것은 학력중심의 사회에서 남부럽지 않은 학벌을 따기 위한 것도 아니고 대학에서의 공부가 내가 하는 일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 마음가짐이 바뀐다. 대학을 가기 전보다는 대학교육을 마친 후, 석사를 받기 전보다는 석사학위를 딴 이후에 나는 좀 더 겸손해진다.

내가 경험에서 얻은 지식이 전부가 아니고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리고 겸손함은 대학에서 배워야할 가장 소중한 것 중에 하나다.

많은 젊은이들이 취업을 위해서 배움보다는 스펙 쌓기를 더 중요시하는 요즘,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한번쯤 되돌아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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