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 칼럼](8)단 한사람
[경제인 칼럼](8)단 한사람
  • 현달환 편집장
  • 승인 2020.09.19 2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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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만난 제주인, "아, 제주마씸?"
[김택남 자서전] 제주 소년, 꿈을 투망하다
(주)천마그룹 김택남 회장의 인생 스토리
뉴스N제주가 창간기념에 맞춰 '제주경제인 칼럼'을 게재하는 가운데 그 첫 순서로 선보인 김택남의 자서전, '제주 소년, 꿈을 투망하다'라는 내용이 독자들로부터 많은 감동의 후기들이 전해오고 있다.

이번에 '단 한사람'이라는 제목은 총각에서 어떻게 프로포즈 하고 결혼까지 성공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글을 읽다보면 김택남 회장의 성격까지 보여주고 있다. 직접 들은 얘기는 워낙 가난해서 늘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만남의 시간(연애하는 시간)이 부족해 헤어질 뻔한 일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 '운명'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 운명적인 만남은 그 어떤 유혹이 들어와도 헤아질 수가 없는 것이다. 한눈에 반한 여성이 있는데 그걸 용기내어 만남이라는 시간을 통해 결국 결혼이라는 결과로 성공을 이룬 김택남 회장의 인생관은 자기가 맘에 들면 선택의 여지없이 투자를 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러한 삶은 결국 신의를 저버리지 않으려는 자신의 성격에서 온다고 볼 수가 있다.

김택남 회장은 영화처럼 만나서 가난한 연애를 하고 무던하게 결혼을 하게 된 아내에게 나는 미안한 것이 많다고 토로했다. 또한, 연애하는 동안에 아내에게 이렇다 할 추억 하나를 만들어 주지 못했고 남들처럼 좋은 음식을 사준 적도 없고, 좋은 곳을 함께 놀러간 적도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아내는 불평을 한 적이 없다. 언제나 내 편에 서서 나를 믿고 내 뜻을 따라주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사실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의 처지와 같은 배우자를 만나면 동병상련의 마음때문에 쉽게 헤어지기 어렵다. 그런 믿음이 더욱더 강해 사랑이라는 밀도는 더욱 진해졌을 것이다. 결혼 후 자신을 위해, 또한 아내를 위해 열심히 살아 온 김택남 회장의 결혼 후 인생이 더욱 흥미로와 진다.

앞으로 김택남 회장의 인생이 어떻게 성공으로 올라설지 다음편이 궁금해진다. 많은 필독이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 주] 

사람들이 하나 둘씩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야간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버스였으니 늦은 시간의 버스 안 사람들은 대부분 지쳐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가슴이 설 다. 저 앞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그녀 때문이었다. 그녀가 버스에 오르자 나는 한 대 맞은 듯 머리가 멍했고 미친 듯이 가슴이 뛰었다.

‘첫눈에 반하다’는 상투적인 말이 스물한 살, 젊은 나에게 현실로 벌어졌다.

버스는 비어 가는데 그녀는 일어날 줄 몰랐다.

‘어디로 가는 거지?’

나는 남몰래 그녀를 훔쳐보며 수많은 상상을 했다.

목소리는 어떨까? 물론 꾀꼬리 같겠지.

나이는 몇 살일까? 나보다는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말을 붙이면 대꾸는 해줄까?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내 옷차림을 살펴봤다. 근무를 마치고 바쁘게 학교에 갔던 터라 작업복 그대로였다. 그녀를 만날 줄 알았다면 좀 더 멋진 옷을 입고 오는 건데,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그날’ 내 인생의 ‘단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치 못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설마 대꾸는 해 줄 거야.’

얼마 전에 사내 모델로 뽑혀서 사보(私報)는 물론이고 신문광고에도 실린 공인된 미남(?)인데 무섭다고 도망가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옷차림이 부족하고 그녀가 도망간다고 해도 나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내가 내릴 정류장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났고 다시 그녀를 만날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입고 있던 작업복의 깃을 세우고 단추를 잠갔다. 비록 작업복이지만 그녀에게 단정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사진설명]5년의 연애시절, 단 한번 아내와 함께 찾았던 경주 꽃보다 고왔던 내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인 경자씨.
[사진설명]5년의 연애시절, 단 한번 아내와 함께 찾았던 경주 꽃보다 고왔던 내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인 경자씨.

버스가 마침내 종점에 이르자 그녀가 버스에서 내렸다. 나는 부리나케 그녀의 뒤를 쫓았다. 벌써 한참을 그녀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뭐라고 말을 붙일지는 생각을 못했다. 그녀에게 말도 붙이지 못하고 그저 그녀를 따라만 갔다. 그녀도 누군가 쫓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걸음에 속도가 붙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무작정 그녀를 불렀다.

“저기요!”

밤공기를 가르는 나의 목소리에 그녀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저기요…, 저는 현대중공업에 다니는 김택남이라고 하는데요, 제주에서 왔어요. 온 지 사흘밖에 안돼서 길도 잘 모르고 친구도 없는데 저랑 친구 좀 해주시면 안 돼요?”

막상 그녀를 부르자 준비했던 말들은 다 잊어버리고 두서없이 이 말 저 말을 털어놓았던 것 같다. 그러나 기름때가 묻은 작업복과 어눌한 제주 사투리에 그녀는 경계를 조금 풀었다고 한다.

“지금은 늦어서 안 되고요, 내일 저녁에 00다방에서 봬요.”

나는 그녀의 대답에 하늘을 날 것만 같았다. 기숙사에 돌아갈 버스는 벌써 끊겼고 택시 탈 돈도 없었다. 남은 방법은 걷는 것뿐이지만 상관없었다. 기숙사로 돌아오기 위해 두어 시간을 걸어가면서도 는 그녀만 생각했다. 목소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부드러웠고 새침하게 웃는 모습이 내 심장에 새겨졌다. 기숙사에 도착해서야 그녀의 이름도 묻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지만 내일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그날 밤, 울산에 올라와 처음으로 내일이 기다려져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나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침이 밝아오자 어젯밤의 흥분은 사라지고 슬슬 걱정이 몰려왔다. ‘오늘 안 나오면 어떡하지?’ 초조한 마음은 하루 종일 내 곁을 떠나지 않았고 그날따라 더디 가는 시간이 원망스러웠다.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 나는 최대한 멋을 부렸다. 가장 좋은 옷을 다려 입고 머리도 신경써 손질했다.

그녀에게 가장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사랑에 빠진 청년의 마음이었다.

약속시간을 한참 앞두고 찻집에 도착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찻집에 비어있는 자리가 많았다. 나는 중앙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녀를 기다렸다. 약속시간이 10여 분 지나자 문틈으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드디어 그녀가 빛을 이끌고 도착한 것이다. 나는 성급한 마음에 손을 크게 흔들어 나의 존재를 알렸다. 쑥스러웠던 그녀는 두어 명 친구들과 함께 왔고 나의 성급한 몸짓에 그녀의 친구들이 ‘풋’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친구들의 무례에 용서를 구하듯이 나에게 부끄러운 미소를 보냈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의 친구들은 보이지 않았고 웃음은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몸짓과 미소만으로 나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와 친구들은 내 앞 자리에 앉았다. 이런 만남이 익숙지 않은듯이 그녀와 친구들, 그리고 나 사이에는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김택남이라고 합니다.”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 나는 내 이름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나에게 친구들을 소개해줬지만 정작 그녀의 이름을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밤새 묻고 싶은 질문을 건넸다.

“그 쪽은 이름이?”

내 질문에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고 대답한 것은 그녀의 친구였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쫓아 온 거예요? 얘 이름은 경자예요. 김경자.”

그제야 나는 내 영혼의 반쪽 이름을 알았다.

‘김경자’

내 남은 인생을 곁에서 지켜주며 내 아이들을 낳아 줄, 내 반려자 경자씨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사실 이제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민망하지만 젊은 시절의 나는 꽤 인기가 있었다. 키도 훤칠한 편이었고 피부도 고왔다. 당시 근무하던 현대중공업의 사내 모델로도 뽑혀서 사진광고 모델도 했고 공장에 귀빈이 오시면 의전을 담당하기도 했다.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아가씨들도 있었고 친구들은 미팅에 나갈 때는 나를 찾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연애에 도통 관심이 없었다. 스무 살 청년이 연애에 관심이 없다면 거짓말일까?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연애에 들어가는 돈도 시간도 아깝기만 했다.

[사진설명]늘 바쁜 나를 만나 평생을 제주 돌하르방처럼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 아내 사랑하는 경자씨!우리 다시 태어나도 꼭 다시 만납시다.
[사진설명]늘 바쁜 나를 만나 평생을 제주 돌하르방처럼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 아내 사랑하는 경자씨!우리 다시 태어나도 꼭 다시 만납시다.

대기업에 입사하긴 했지만 신입사원이 받는 월급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들어갈 돈은 늘 정해져 있었다. 제주도의 부모님께 생활비를 보태 드리고 남은 돈으로 대학등록금을 마련해야 했다. 가끔 모델을 서고 받는 가욋돈으로는 인색한 아버지에게 시달릴 동생들에게 용돈을 부쳐 주고 나면 내가 쓸 돈은 언제나 부족했다.

나는 연애하는데 돈만 부족했던 것이 아니다. 시간도 없었다. 낮에는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저녁에는 대학에서 수업을 들어야 했다. 주말에는 수업시간을 배려해 단축근무를 허락해 준 회사에 대한 고마움으로 공장에 나가 일을 했다. 함께할 시간도 돈도 부족한 남자를 좋아해 줄 여자도 없었을 뿐더러 나는 연애에 기웃거릴 여유도 없었다. 그런데 김경자씨가 처음 버스에 올라온 그 순간부터 내 마음이 바꿨다. 저 사람이라면, 평생을 같이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고 해서 나에게 시간과 돈의 여유가 생긴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 아내와 난 참 가난한 연인들이었다. 내가 제주 부모님과 동생을 어깨에 짊어진 것처럼 아내도 2남 2녀의 맏딸로 집안의 기둥역할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빨리 가까워진 것도 서로의 책임과 의무를 잘 이해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우리들의 데이트 장소는 버스 안이었다. 내가 대학에서 수업을 받는 날이면 아내는 시내에서 나를 기다렸다. 내가 수업을 마치면 아내와 나는 같은 버스를 타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직장 이야기, 가족 이야기, 학교 이야기…. 그녀와 함께 있으면 이야기는 끝이 없었고 버스에서의 데이트는 언제나 아쉬웠다. 그렇게 버스 안에서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들의 정도 차곡차곡 쌓이고 만난 지 5년 되던 해에 결혼을 하게 됐다.

요즘처럼 번듯한 프러포즈도 없었다. 어느새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족보다 소중한 사람이 됐고 가야할 길을 가는 것처럼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

영화처럼 만나서 가난한 연애를 하고 무던하게 결혼을 하게 된 아내에게 나는 미안한 것이 많다. 연애하는 동안에 아내에게 이렇다 할 추억 하나를 만들어 주지 못했다. 남들처럼 좋은 음식을 사준 적도 없고, 좋은 곳을 함께 놀러간 적도 없다. 그런데도 경자씨는 불평을 한 적이 없다. 언제나 내 편에 서서 나를 믿고 내 뜻을 따라주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아내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토를 단 적이 없다. 회사를 이직할 때나 사업을 시작할 때나 아내로서의 걱정을 숨기고 내 뜻을 존중해주었다. 더욱이 다른 아내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들도 나에게는 건넨 적이 없다.

‘일찍 들어와라’, ‘술 많이 먹지 마라’ 같은 사소한 잔소리도 없었다.

내가 밖에 나가서 아무런 부담 없이 일을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제주 돌하르방처럼 소리 없이 나를 믿고 기다려준 아내 덕인지도 모른다. 아내는 황량하고 외로웠던 객지시절에 나에게 고향 같은 따뜻함을 준 사람이다.

“근데 왜 나랑 결혼 한 거야, 돈도 없었고 매일 바쁘기만 했는데?”

나는 오래된 질문 하나를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준비된 것처럼 생각할 틈도 없이 대답했다.

“당신이 열심히 사는 건 내 눈에도 보였어. 저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이면 믿어도 된다고 여겼지”

그래서 조금 어려운 질문 하나를 더했다.

“우리 하나나 두나나 나 같은 남자랑 결혼한다고 하면 당신은 찬성이야?”

아내는 이전과 다르게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내 눈치를 보며 답했다.

“당신 같은 사람 좋지. 좋은데…, 조금만 덜 바빴으면 좋겠어. 지금은 습관이 돼서 괜찮은데 옛날에는 조금 외로웠거든.”

아내는 오래된 서운함을 이제야 털어놓는다.

올 주말에는 아내와 가까운 오름이라도 걸어야겠다. 지금 비록 그때의 외로움을 덜어줄 수는 없지만 그 길을 걸으며 아내가 내게 준 따뜻함에 고마움은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진설명]아내도 나도 일생의 단 한사람을 만나 결혼했다. ‘가난’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책임이라는 속내를 나누며 우리는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아껴주는 ‘동반자’가 됐다.
[사진설명]아내도 나도 일생의 단 한사람을 만나 결혼했다. ‘가난’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책임이라는 속내를 나누며 우리는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아껴주는 ‘동반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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