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32)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퉁
[김필영 시문학 칼럼](32)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퉁
  • 뉴스N제주
  • 승인 2023.02.18 10: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정호승 시집, 여행,46쪽 : 창비시

(송수권 시집, 퉁 <서전시학 서정시 122>18쪽, 퉁, 감상평 : 김필영)

퉁*

송수권

벌교 참꼬막 집에 갔어요
꼬막 정식을 시켰지요
꼬막회, 꼬막탕, 꼬막구이, 꼬막전
그리고 삶은 꼬막 한 접시가 올라왔어요
남도 시인, 손톱으로 잘도 까먹는데
저는 젓가락으로 공깃돌 놀이하듯 굴리고만 있었지요
제삿날 밤 괴**
꼬막 보듯 하는군! 퉁을 맞았지요
손톱이 없으면 밥 퍼먹는 숟가락 몽댕이를
참꼬막 똥구멍으로 밀어 넣어 확 비틀래요
그래서 저도- 확, 비틀었지요
온 얼굴에 뻘물이 튀더라고요
그쪽 말로 그 맛 한번 숭악***하더라고요
비열한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런데도 남도 시인- 이 맛을 두고 그늘
있다나 어쩐다나
그래서 그늘 있는 맛, 그늘 있는 소리, 그늘
있는 삶, 그늘이 있는 사람
그게 진짜 곰삭은 삶이래요
현대시란 책상물림으로 퍼즐게임하는 거 아니래요
그건 고양이가 제삿날 밤 참꼬막을 깔 줄 모르니
앞발로 어르며 공깃돌놀이 하는 거래요
詩도 그늘이 있는 詩를 쓰라고 또 퉁을 맞았지요.

1) 퉁(꾸지람): 퉁사리, 퉁사니, 멋퉁이 등.
2) 괴: 고양이.
3) 숭악한 맛: 깊은 맛.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그늘의 미학』

‘퉁’은 사전에서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핀잔, 또는 큰북이나 속 빈 나무통 따위를 칠 때 울리는 소리 말, 품질이 낮은 놋쇠 등을 말하고, 음악적으로는 ‘고수(鼓手)가 왼손으로 북 가죽을 쳐서 소리를 내는 기법’으로 정의하고 있다.

재미있는 우리말이다. 송수권 시인이 “퉁”시집의 권말에 「시에 대한 요즘의 생각」이란 주제로 쓴 산문에서 "그늘이 있는 맛과 시는 우리들의 영혼을 흔든다. 아니 이 그늘에서 한국인의 기질과 성품, 인성 그리고 유전자 소인으로 각인된다고 함이 옳다. 봉인된 이 언어에서 시의 혼 즉 대활령이 숨 쉬고 있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퉁‘을 통해 그늘의 멋과 맛, 그 미학을 음미해본다.

시는 순천만의 벌교 꼬막집을 찾아간 두 시인이 삶은 꼬막 한 접시를 놓고 마주한 장면 묘사로 시작된다. 꼬막을 보고도 “공깃돌 놀이하듯 굴리고만 있다"가 어쩌면 김지하 시인일 듯한 ‘남도시인’에게 ‘퉁’을 맞게 되는 이 장면을 ‘그늘의 멋’이라 할 수 있는가?

고흥태생인 시인이 ‘꼬막 까먹는 법’을 모를 리 없으므로 삶은 꼬막을 보고 “제삿날 밤 괴(고양이), 꼬막 보듯 하는” 태도묘사가 암시하는 것은, 화자가 꼬막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음으로 보인다.

하얀 꼬막껍질 방사륵 굴곡 사이사이에 켜켜이 서린 순천만의 밀물과 썰물의 그늘을 읽고 있었을 것이다. 바다의 마음 같은 부채살 속 촉촉한 조갯살의 수줍음을 차마 열어볼 수 없는 여린 마음에 꼬막 앞에서 잠시 혼을 놓아버린 시인의 모습이야말로 그늘의 멋이 아닐까.

이 대목에서 남도시인의 ‘퉁’이 등장한다.

이 “퉁”은 남도시인이 혼자 먹기에 서먹하여 한 소리이거나 꼬막의 깊은 맛을 함께 나누고 싶은 정에 ‘퉁’주었을지 모르나 행간에서의 화자가 '퉁’을 오히려 즐기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옴을 볼 때, 이 ‘퉁’소리는 시인과 시인, 벗과 벗 사이의 조화를 위한‘고수(鼓手)가 왼손으로 북 가죽을 쳐서 나오는 퉁’과 같은 추임새라고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 ‘퉁’소리야말로 그늘의 소리가 아닐까.

하반절의 풍경은 이제 남도시인의 권유로 화자가 꼬막을 까먹게 되는 묘사가 이어진다. 시의 하단의 각주의 해석처럼 ‘퉁’이 ‘꾸지람’이지만 ‘꾸지람’보다는 ‘퉁’이 정겨운 이유는 무얼까? ‘퉁’은 인연의 고리가 없는 대상에게는 할 수 없는 행위이다.

서로 애틋한 관계에서 애정을 슬며시 감추고 나타내는 관심의 표현이라 볼 때 ,‘퉁’은 ‘속사랑의 표현’중 하나이다.

‘퉁’을 주었던 남도 시인, 꼬막 까먹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남도시인의 행동은 “밥 퍼먹는 숟가락 몽댕이를 참꼬막 똥구멍으로 밀어 넣어 확 비틀” 어야 한다고 묘사한 것처럼 단호하지만 꼬막을 먹게 하려는 정(情)은 개펄내음 솔솔 흘러나오는 숭악하게 깊은 그늘의 맛이 아니고 무엇이랴.

꼬막 한 접시 가운데 놓고 오가는 이야기 속 ‘퉁’은 결코 무례한 꾸지람이 아니다. 정다운 그늘 있는 멋이고, 그늘 있는 소리이며, 그늘이 있는 곰삭은 맛, 그늘이 있는 삶이다. 우리 가슴에 둥둥 울려 퍼지는 북소리 같은 ‘그늘이 있는 퉁’인 것이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