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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영 시문학 칼럼](28)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손에 대한 예의
[김필영 시문학 칼럼](28)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손에 대한 예의
  • 뉴스N제주
  • 승인 2023.01.2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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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정호승 시집, 여행,46쪽 : 창비시선 362) 손에 대한 예의, 감상평 : 김필영

손에 대한 예의

정호승

가장 먼저 어머니의 손에 입을 맞출 것
하늘 나는 새를 향해 손을 흔들 것
일 년에 한번쯤은 흰 눈송이를 두 손에 고이 받들 것
들녘에 어리는 봄의 햇살은 손안에 살며시 쥐어볼 것
손바닥으로 풀잎의 뺨은 절대 때리지 말 것
장미의 목을 꺾지 말고 때로는 장미가시에 손가락을 찔릴 것
남을 향하거나 나를 향해서도 더 이상 손바닥을 비비지 말 것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지폐를 헤아리지 말고
눈물은 손등으로 훔치지 말 것
손이 멀리 여행가방을 끌고 갈 때는 깊이 감사할 것
더 이상 손바닥에 못 박히지 말고 손에 피 묻히지 말고
손에 쥔 칼은 항상 바다에 버릴 것
손에 많은 것을 쥐고 있어도 한 손은 늘 비워둘 것
내 손이 먼저 빈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자주 잡을 것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책을 쓰다듬고
어둠 속에서도 노동의 굳은살이 박인 두 손을 모아
홀로 기도할 것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손에 대한 예의, 손의 창조자에 대한 감사』

현대의 기계문명은 사람이 발전시켜 왔으나 공작기계나 사람이 사용하는 대다수의 장비는 조물주가 만든 창조물에서 지혜를 얻거나 창조물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것이 많다.

사진기는 우리의 눈의 기능을 응용하여 만들어졌고, 비행기는 날아가는 새를 연구하여 만들어졌다. 땅을 굴삭하는 포크레인은 사람의 손을 연구하여 만들어졌다. 정호승 시인이 사유한 「손에 대한 예의」를 통해 손에 대한 사유를 들여다본다.

새삼스레 손바닥을 들여다보면, 온갖 궂은일로 수고해온 손이나 한 번도 대접해주지 못한 손이다.

손바닥 중심에 내 천(川)자로 흐르는 굵은 주름, 살아가야 할 생(生)이 강처럼 흐르고 있고, 겪어야 할 무수한 길처럼 굵은 주름 주위로 빗금주름이 흘러들고 있다. 팔목 가까이 자라다 만 나뭇가지 같은 엄지손가락이 머리를 조아리고, 검지부터 새끼손가락까지 네 개의 손가락이 투명한 손톱을 수건처럼 쓰고 세 마디가 안으로 접힐 듯하다.

손으로 사랑하는 이의 볼을 만지든, 어린 병아리를 만지든, 못을 칠 망치를 잡든, 사물을 손으로 집거나 만질 때, 뇌에서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손은 전광석화처럼 사물의 강도와 성격에 맞게 초정밀 감도로 반응한다. 사람이 사물과 접촉하는 신체의 첫 동작이 손으로부터 시작된다.

만약 손이 없다면 어떨까?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정호승 시인은 『손에 대한 예의』첫 행에서 ‘가장 먼저 어머니의 손에 입을 맞출 것’이라고 함으로 손을 주신 이에 대한 ‘감사’를 강조하고 있다.

출산을 돕는 산파는 분만 시에 손부터 본다고 한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우리를 낳고 지친 몸을 가누지도 못할 만큼 온몸이 힘겨워도 맨 먼저 적신에서 손을 확인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음이 분명하다. 그 감사하는 마음은 이제 세상에 나아가 더불어 존재하는 사물에 대해 공존의 예의를 나타내야 한다.

손으로 할 수 있는 일 중에 타자에게 관심을 나타내는 일에 우리는 인색하다. 그것은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 기본적인 행동양식이며‘감사’라는 의미의 손동작을 올바로 나타낼 때, 스스로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하늘 나는 새를 향해 손을 흔들’지 않아도 새는 날아간다.

‘일 년에 한번쯤은 흰 눈송이를 두 손에 고이 받들’지 않아도 봄은 온다. ‘들녘에 어리는 봄의 햇살은 손안에 살며시 쥐어 보’지 않아도 꽃은 핀다. 그러나 대자연의 일원으로서 대자연과 공존하는 데에 기본적인 각별한 관심과 감사를 손으로 나타낼 때, 손은 손의 주인을 행복하게 한다.

어떤 손이 아름다운 손인가? 손에게 어떻게 예의를 갖추어야 할까? 손바닥으로 여린 풀잎을 소중히 다루고, 때론 장미 가시에 손가락이 찔려도 장미의 목을 꺾지 않는 손, 손바닥을 비벼 아첨하지 않는 손, 재물을 탐닉하지 않는 손, 원한을 풀려는 칼을 멀리하는 손이라면 얼마나 아름다운 손인가? 추운 겨울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넘어지면 코가 깨진다.

손에 많은 것을 쥐고 있어도 한 손은 늘 비워두고 내 손을 먼저 내밀어 다른 사람의 손을 자주 잡아 줄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자연 앞에 서로를 마주하고 설 때 빈손이 되어보는 것이다.

빈손이 되어야만 서로 두 손을 맞잡을 수 있고 그러안을 수 있다. 손에 날선 칼을 쥐고서는 우리의 사랑과 행복을 위해 결코 기도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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