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36)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흐르면서 머물면서
[김필영 시문학 칼럼](36)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흐르면서 머물면서
  • 뉴스N제주
  • 승인 2023.03.18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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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정호승 시집, 여행,46쪽 : 창비시

(손해일 시집, 『떴다방 까치집』: 시문학사)127쪽, 흐르면서 머물면서)

흐르면서 머물면서

손해일

아래로 더 아래로
낮은음자리표가 흘러간다
누가 부질없다 하리
만상이 흐르는 융륭한 일렁임을
여울목에 좌초된 혼
더러는 거품으로 스러지고
더러는 앙금으로 가라앉고
더러는 수렁 속에 썩고 썩지만
무심한 버릇으로 흐르다 보면
머무는 것 또한
어려운 일
빛나는 아침의 출정에도
빈손뿐인 귀로
나 아닌 나를 만난다
수없는 자맥질에
우리의 물배는 얼마나 부르고
맨살은 얼마나 부르텄는가
잠시 눈 감으면
잊혀질 것들을 위하여
우린 또 얼마나 흘러가야 하는가
하릴없는 뗏목처럼
뗏목처럼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흐름’과‘머물음’을 통찰한 섭리의 시학

만상(萬象)은 ‘흐름’을 통해 존재를 나타낸다. 사람의 감각기관으로 느낄 수 있는 흐르는 것은 많지만 우리가 느낄 수 없는 시간과 공간에 흐르다 머물며 존재하는 것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처럼 무수히 흐르는 것들 가운데 우리의 생도 흘러간다. 우리는 어디서 왔다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흐르지 않고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것인가? 흐르다 머물며 스쳐간 우리의 기억 속 인연들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손해일 시인의 시를 통해 ‘흐름’이라는 화두 속으로 흘러들어가 본다.

첫 연은 “아래로 더 아래로/ 낮은음자리표가 흘러간다.”고 하므로 ‘흐르다’의 사전적 의미의 첫 번째 의미인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의 ‘흐름’을 표현하고 있다.

‘흐름’의 현상과 과정을 하필 성부(聲部)를 적는 데 쓰이는 ‘낮은음자리표’ 로 표현했는가? 흐르는 것에도 박자, 가락, 음성, 화성 따위의 음악적 형식처럼 부조화와 조화가 있음을 말하려 함으로 보인다. ‘낮은음자리표는 피아노나 오르간 등의 왼손 악보영역이며, 혼성 합창의 남성의 발성영역, 또는 첼로나 더블 베이스 등의 낮은음의 악기가 들려줄 수 있는 음역이다.

그러나 낮게 흐름에도 더불어 흐르는 조화가 있음을 알게 한다. 우주와 대자연에서 거대한 흐름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만상이 흐르는 융륭한 일렁임” 앞에 겸허히 자세를 낮추고 섭리와 순리의 ‘흐름’을 인정해야 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둘째 연은 ‘흐름’의 정지 상태라 할 수 있는 ‘머물음’에 관하여 생각하게 한다. 그 ‘머물음’의 현상과 존재를 “여울목에 좌초된 혼”이란 묘사에서 암초에 걸린 배를 연상해 본다. 이를 우리의 삶의 행로로 치환해 들여다보면 장애나 반대에 부딪치게 된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여울목에서 좌초되어 빠져나오려고 얼마나 허우적거렸던가. 우리가 원치 않아도 때때로 여울목에 좌초되어 “더러는 거품으로 스러지고/ 더러는 앙금으로 가라앉고/ 더러는 수렁 속에 썩고 썩”게 되는 ‘흐름’의 정지 상태를 겪게 된다. 시는 이런 절망적 상황을 비극적으로 보지 않는다.

“무심한 버릇으로 흐르다 보면/ 머무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라고 표현함으로 ‘흐름’의 정지 상태인 좌초의 상태에서도 ‘무심한 버릇’이라는 유전 받은 흐름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쉼’이라는 긍정적 사고를 사유할 수 있게 한다.

3연은 흐름과 머물음의 과정에서의 ‘소유’에 관한 견해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좌초처럼 보이는 여울목에서의 ‘쉼’을 뒤로하고 멈출 수 없이 흘러야 하는 우리는 “빛나는 아침의 출정에도/ 빈손뿐인 귀로/ 나 아닌 나를 만난다.” 소유를 위한 일상적 출정에서 빈손으로 돌아오는 우리는 얼마나 허기져 있는가?

세상이라는 강을 흐르며 존재를 위한 먹이를 벌기 위해 “수없는 자맥질에/ 우리의 물배는 얼마나 부르고/ 맨살은 얼마나 부르텄는가?” 이러한 물음에 수없는 자맥질에 물배만 부른 채 흘러가며 부인할 수 없는 “나 아닌 나를 만난다.”

이토록 허망하게 흘러가야 하는 모습에 가슴 먹먹해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모두는 “하릴없는 뗏목처럼” 흘러가야만 하는 숙명을 유전 받았기 때문이다. 얼마일지 몰라도 “잠시 눈 감으면/ 잊혀질 것들을 위하여” 흘러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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