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35)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겨울자작나무숲
[김필영 시문학 칼럼](35)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겨울자작나무숲
  • 뉴스N제주
  • 승인 2023.03.1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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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정호승 시집, 여행,46쪽 : 창비시

(정연덕 시집, 샤론의 꽃바람 : 시문학시인선 379) 11쪽, 겨울자작나무숲) 감상평:김필영

겨울자작나무숲

정연덕

겨울자작나무숲 산자락 호수 하나 길을 내고 희끗희끗한
얼굴로 춤을 추다 바람의 눈이 하늘자락 끝에 올빼미 눈처럼
빛나다 강물도 징징 머리를 풀다
해 저문 숲에 무슨 일이 생겼나 산자락 호수도 수많은
목숨들 거친 한 자락 바람으로 술렁이다 서로 몸을 보듬으며
엉켜서 우짖다 엉켜 뒹굴다 이내 기척 없이 조용하다
겨울자작나무숲 고단한 생명들 모여 평화로운 이웃으로
지치고 고단한 삶들을 내놓고 서로 엉켜 우짖고 서로 보듬으며
사는 영혼들의 고향이다
가던 길 멈추고 사마리아인* 하나 엿보고 있다
*진정한 이웃에 대한 비유(눅 10 : 30~35)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바람의 집, 자작나무숲에서 사유된 이웃의 의미』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 바이칼 호수는 그 깊이가 1700미터로 알려져 있는데 잴 때마다 조금씩 깊어진다는 말이 있다. 호수가 아무리 깊어도 사람의 우정만큼 깊을까? 인간관계에서 사랑 못지않게 숭고한 것이 우정이라고 하는데 우리 선조들은 담장 너머로 음식을 나눠 먹으며 이웃의 복지에 관심을 갖는 평화롭고 정겨운 관습이 있다.

안타깝게도 요즘에는 이웃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다. 으슬으슬 움츠러드는 한겨울에 정연덕 시인의 「겨울자작나무숲」을 통해‘진정한 이웃’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시의 도입부에 펼쳐지는 풍경에 가슴이 서늘해 온다. “겨울자작나무숲 산자락 호수 하나 길을 내고...”라는 행간을 읽어 내려가는 순간 ‘춘원 이광수’의 소설 ‘유정’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화자는 겨울의 바이칼 호수가 있는 시베리아의 자작나무숲 같은 대자연속에 화자는 ‘바람’이 되어 자작나무숲과 생명의 존재간의 관계에 주목하게 한다.

첫 연은 한낮의 바람의 움직임을 통해 ‘숲의 존재’를 은유한 행간이다. 보이지 않는 바람을 어떻게 독자가 바라볼 수 있는가. 색채 없이 투명한 바람의 존재를 주변사물의 반응을 토해 부각시키고 있다. 호수를 향해 난 길가에 자작나무숲이 펼쳐진 것이 아니라 바람이 겨울자작나무를 통과할 때 자작나무가 호수를 향해 비켜서서 길을 내었다고 느껴지게 하여 자작나무숲의 운치가 역동적으로 다가온다.

자작나무숲과 강물에 겨울바람이 스쳐가는 풍경은 영상을 보는 듯하다. 자작나무가 바람을 맞는 모습을 분칠하고 서있는 자작나무가 “희끗희끗한 얼굴로 춤을” 춘다고 함으로 바람의 율동적 이동을 보여준다. 바람이 강물에 몸을 비빌 때 일렁이는 물비늘을 “강물도 징징 머리를 풀”고 있다고 의인화함으로 겨울바람의 스산한 흐름을 독자 스스로가 보고 느낄 수 있게 해준다.

2연은 해가 저물어 밤을 맞아 이동을 멈춘 바람을 통해 숲의 역할을 확인해주는 행간이다. 산자락 호수 하나 길을 내고 희끗희끗한 얼굴로 춤을 추며 징징 머리를 풀던 바람은 해가 저물자 정지 상태에 이르게 되나 그 바람은 “산자락 호수도 수많은 목숨들 거친 한 자락 바람으로 술렁이다 서로 몸을 보듬”게 하는 존재다.

산자락과 호수와 숲에 존재하는 수많은 목숨들의 관계는 자작나무숲에서 호흡을 통해 바람으로 연결되어 “엉켜서 우짖다 엉켜 뒹굴다” 어우러지므로 겨울 숲은 바람으로 인해 사물들과 이웃관계를 맺게 된다.

3연에 이르러 겨울자작나무숲의 존재적 가치를 강조한다. 자작나무숲은 “지치고 고단한 삶들을 내놓고 서로 엉켜 우짖고 서로 보듬으며 사는 영혼들의 고향이다.”라고 하므로 “겨울자작나무숲”은 고단한 생명들이 평화로운 이웃으로 살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 행간에 인간의 존재를 등장시키지 않고 마지막 행에 “가던 길 멈추고 사마리아인* 하나 엿보고 있다.”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진정으로 서로 보듬어주며 사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져만 가는 오늘날 우리의 이웃관계에 대한 아픈 성찰이 아닐까. 겨울자작나무숲에서 서로 팔을 내밀어 우짖고 서로 보듬으며 사는 영혼들처럼 진정한 이웃관계에서 있어 우리를 대변하여 화자는 말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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