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31)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바른 것과 뇌성마비
[김필영 시문학 칼럼](31)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바른 것과 뇌성마비
  • 뉴스N제주
  • 승인 2023.02.1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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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정호승 시집, 여행,46쪽 : 창비시

신 진 시집, 미련『시산맥사』발행, 80쪽, 바른 것과 뇌성마비

바른 것과 뇌성마비

신 진

바르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뇌성마비 청년이 바르게 걷기 위하여 눈 감다가
부릅뜨고 머리를 곧추 세우다 꺾으며 손톱으로 허공을
할퀴는 것을 보면서
바르다는 것의 상처를 본다
바르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손가락 끝마디까지 바치는 노래 목 비틀고 부러뜨리며
간신히 내놓는 바르고 고운 한 소절 뇌성마비청년이
관자놀이 터지게 담았다가 깊은 데서 꺼내는 비뚤어진
소리의 상처
바른 것은 비뚤어지지 않기 위해 비뚤어진 것인가
열 맞추어 날아가는 물오리 떼의 대오 마지막마다
늘 새로운 시작 바르다는 것은 비뚤어지지 않으려고
비뚤어진 상처인가
비뚤어지지 않으려고 흩어지지 않으려고 악을 쓰는
동안
피 흘리는 허공이 비뚤어지랴?
비뚤어진 것은 비뚤어지지 않으려고 비뚤어진 거로구나
짐작한다.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몸 안에 갇힌 상처와 처절한 울음을 보는 바른 시선』

코끼리를 바라보고 그 자태를 표현하라고 할 때,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보는 방향과 거리에 따라서 제각기 다르다. 코끼리의 등에 붙은 파리나 다리를 기어오르는 개미의 눈엔 코끼리의 존재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

사물을 바라보는 각자 다른 시선은 존중 받아 마땅하다. 우리가 동족인 사람을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까? 신진 시인의 시선(詩線)을 통해 지구가족의 몸에 갇힌 상처와 처절한 울음을 바라본다.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떠하든 그것은 자유의사선택권을 가진 각자의 고유한 자유이다. 시의 첫 행에서는‘뇌성마비청년의 몸짓’을 바라본 화자가“바르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라고 강한 의문을 제시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뇌성마비 청년이 바르게 걷기 위하여 눈 감다가 부릅뜨고 머리를 곧추 세우다 꺾으며 손톱으로 허공을 할퀴는 것을 보면서”화자는 자신의 평소의 관점에 대한 대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를 여행하다 길을 잃거나 도난을 당했을 때는 의사소통이 절박하다. 위급한 상황에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신체언어(body language)를 통해서라도 극복하려 한다. 화자가 바라본 상황은 그보다 절박하다.

단 한 걸음을 걷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통역할 수 없는 신체언어’를 목격하고도 그 몸짓을 쉽게 분별할 수 없어 가슴이 먹먹해지자 화자는“바르다는 것의 상처를 본다.”고 말하고 있다.

“바르다는 것의 상처”를 보면서 화자는“바르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라고 다시 질문을 던진다. ‘분별할 수 없는 몸짓’을 보는 관점을 정리하기도 전에 화자 앞에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손가락 끝마디까지 바치는 노래 목 비틀고 부러뜨리며 간신히 내놓는 바르고 고운 한 소절 뇌성마비청년이 관자놀이 터지게 담았다가 깊은 데서 꺼내는 비뚤어진 소리의 상처”를 듣게 된 것이다.

서두에서 ‘뇌성마비청년의 걷기’를 통해 ‘시각적 상처’를 봤다면 이 경우는 목소리를 내려고 몸부림치는‘청각적 상처’를 본 것이다.

이제 화자는‘바르다’는 것의 정의를 넘어 눈앞에서 온통 비뚤어지게 펼쳐진 모습을 통해 자신의 관점을 조정하려는‘바른 것’의 공간 발생적 근원을 찾으려 한다.

화자는 다시 질문을 던진다. “바른 것은 비뚤어지지 않기 위해 비뚤어진 것인가”라고 자문하면서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화자의 이러한 태도는 상식과 통념이 현실의 진실과 괴리될 때, 초인적 대상에게 의지하여 답을 구하려는 겸허한 자의 본능적 자세일 수 있다.

허공을 날아가는 물오리 떼의 대오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열 맞추어 날아가는 물오리 떼의 대오 마지막마다 늘 새로운 시작”하는 철새의 날갯짓에서 발견한 것은 치열한 삶의 몸짓이었다. 뇌성마비청년을 보는 시각이 연민의 관점에 머물렀다면 시는 생명력을 잃었을 것이다.

“바르다는 것은 비뚤어지지 않으려고 비뚤어진 상처인가”라는 시선으로 화자는 대상의‘상처’를 자신의 몸 안에 용해시킨다.

“비뚤어지지 않으려고 흩어지지 않으려고 악을 쓰는 동안”아무도 대신 비뚤어주지 않는 곳에 올 곧게 살고 싶었으나 관점의 차이로 배척당한 상처와 울음을 마음의 눈으로 바르게 보는 아름다운 시선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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