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26)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새똥 마르는 돌 위에 앉아
[김필영 시문학 칼럼](26)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새똥 마르는 돌 위에 앉아
  • 뉴스N제주
  • 승인 2023.01.0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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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이기철시집, 나무, 나의 모국어, <민음사> 74쪽, 새똥 마르는 돌 위에 앉아

새똥 마르는 돌 위에 앉아

이기철

미농 새 잎들이 어언 과육을 매다는 저 경이를
내 가난한 언어로는 다 이를 수 없어
새똥 말라 가는 돌멩이에 앉아
수유가 천 년임을 짐짓 한해살이풀 이름 불러 깨친다
열매들은 나무가 닿아 본 기억의 곳간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나무가 일생을 서서 잠들겠는가
익은 열매에는 바람이 어루만진 지문이 남아 있다
나무가 써 놓은 여름의 일기 쪽지들을 무문자로 읽으며
함께 걸어와 가을에 당도한 슬기의 물빛을 보는 것은 아름답다
아직도 땅의 일이 궁금한 나무들은 땅 쪽으로 허리를 숙이고
나는 될 수만 있으면 나무 쪽으로 몸을 꼿꼿이 세운다
나는 올 한 해 나무에게서 배운 말을 골라 시 쓴다
당신이 읽는 이 시는 나무에게서 배운 언어다
새똥이라고 부르는데 왜 내가 상쾌해지는지
내가 이 말을 쓰는 동안
새똥 마르는 돌이 왜 따뜻해지는지
대답하려고 나는 아직 새똥 마르는 돌 위에 앉아 있다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나무 아래서 배우는 생명의 미학』

우리를 둘러싼 대자연은 저절로 생긴 것이라는 무심한 생각으로 물, 공기의 고마움을 잊고 살아가나 그들이 없으면 한 시도 살아갈 수 없다.

사람은 물과 공기를 마신 후 물과 공기를 오염시켜 배출한다. 우리가 오염시킨 물과 공기를 청량하게 정화시켜주는 사물이 무엇인가,

우산 없이 길을 가다 예고 없던 소낙비를 피하려고 나무 밑으로 뛰어 들어간 적이 있다. 버즘나무 아래였다. 등받이 없는 벤치가 거기 있었다. 고개를 들어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숙제를 깜박 잊고 학교에 간 날, 선생님 앞에서 내민 손바닥처럼 활짝 편 이파리들을 비는 드럼 치듯 두들기고 있었다. 바람이 비구름을 몰고 달아났으나 한참을 나무 아래서 움직일 수 없었다.

이기철 시인의 『새똥 마르는 돌 위에 앉아』를 통해 나무에게서 배우는 언어를 들여다본다. 시는 초반부터 기이한 영상 속으로 흥미롭게 우리를 끌고 들어간다. 화자는 ‘한해살이풀 이름 불러’ 여린 나뭇잎들이 과육을 매다는 경이로운 광경을 ‘새똥 마르는 돌 위에 앉아’ 깨우침 받는 것이다. 하필 ‘새똥 마르는 돌 위에 앉아’야만 하는가.

어쩌면 이 장면은 시인이 겪은 사실일 수 있는 장면인 듯하다. 행간을 읽어 내려가면 왜 ‘새똥 마르는 돌 위에 앉아’야 하는지 느낄 수 있다.

어린잎들이 ‘열매들이 닿아본 기억의 곳간‘으로 들어가 과일을 꺼내오는 동안 잎을 먹여온 수유가 천 년임을 짐짓 깨’달을 수 있는 건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이 똥을 싸는 나무 밑으로 다가가지 않고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음이다.

나무 밑으로 가까이 다가가면 어깨를 새들에게 내주고 분비물로 옷을 더럽혀도 평생을 선 채로 새들의 평안을 구하는 나무의 기도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바람이 어루만진 지문이 남아 있’는 ‘익은 열매’에서 ‘나무가 써 놓은 여름의 일기 쪽지들을 무문자로 읽’을 수 있다. 땡볕을 견디며 새들의 둥지에서 새끼들을 길러낼 때까지 ‘함께 걸어와 가을에 당도한 슬기의 물빛’의 아름다움에 전율할 수 있다.

시의 종반에서 화자는 ‘아직도 땅의 일이 궁금한 나무들은 땅 쪽으로 허리를 숙이’는 나무를 보며 나무 쪽으로 몸을 꼿꼿이 세‘운다.

그 꼿꼿함은 교만한 자세가 아닌 나무의 언어를 배워 시를 쓰는 겸허한 자세다. 질소성분의 조분鳥糞냄새가 나는 ‘새똥 말라 가는 돌멩이에 앉아’ 있는지 ‘새똥 마르는 돌이 왜 따뜻해지는지’ 그 대답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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