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정호승 시집, 여행,46쪽 : 창비시
오남구 시전집, 노자의 벌레 : 글나무 2010 발행) 220쪽, 시심천국․2, 감상평 : 김필영
시심천국․ 2
-딸아, 시를 말하자․10
오 남 구
하늘의 일로서 악도 없는 선도 없는 하늘의 일로서, 그날 밤 왜 그리 사납게 비바람 몰아쳤던지.
아내는 내일 입원을 한다. / 시詩는 돈이 될 수 없다. / 입원비를 마련치 못하는데 / 아내에게 시를 갖다 주면 / 꽃이 될까 / 아니 될까 / 딸들이 엄마 곁에서 / 풀꽃으로 흐느끼는 온밤.
이렇듯, 사람의 일로서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시詩를 썼더니, 아침 하늘이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詩人, 시혼(詩魂)으로 존재하는 남편이자 아버지』
사람이 살면서 가장 힘들 때가 언제일까? 그 상황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까?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람은 상황에 따른 연속적인 감각작용에 의해 희비애락(喜悲哀樂)을 느낀다.
원하지 않아도 온갖 형태로 다가오는 숙명적 환경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오남구 시인의 시를 통해 한 시인이 겪어야 했던 숙명적 상황 속으로 들어가 본다.
이 시는 오남구 시인의 시집 『딸아 시를 말하자』에 실렸던 시로 췌장암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야 했던 2010년 그가 영면에 들기 직전 장례식장에서 글썽이는 눈으로 받아든 유작 시전집『노자의 벌레』에 재 수록된 시이다.
3연으로 된 시의 2연은 오남구 시인의 연작시「풀꽃」중 「풀꽃.1」과 같으므로, 이 시는 「풀꽃.1」을 집필하고 시간이 흐른 후에 집필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1연의 시기와 2연의 시기는 시간적 간격이 있는 듯하다. 시인인 화자는 가난한 가장이다. 아내가 내일 입원하는데, 입원비가 없다.
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시를 쓰는 것인데 “시詩는 돈이 될 수 없”어 “입원비를 마련치 못하는데”잠이 들 수 없는 밤은 깊어간다.
요즘도 마찬가지지만 시집을 팔아 생계를 잇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니 불가능한 일이다. 시집 한권에 80편이 실린다면 8000원 정가인 시집 속의 시 한 편당 시값은 100원인 셈인데 100원으로는 물 한 병도 살 수 없다. 소월의「진달래꽃」은 300번 퇴고를 거듭하여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그 시값을 얼마로 환산할 수 있을까?
시를 팔아 위중한 아내의 병을 고쳐주기는커녕 입원조차 시킬 수 없는 한 남편인 시인의 가슴은 무너져 내리고 무너져 내려 절벽만 남아있다.
병든 아내의 남편인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내에게 시를 갖다” 줄 수 있는 일인데 시 한편으로 꽃 한 송이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시인의 가슴 저린 밤은 깊어 간다.
“아내에게 시를 갖다 주면 꽃이 될까 아니 될까”라는 행간은 본문에 한 번이지만 어린“딸들이 엄마 곁에서 풀꽃으로 흐느끼는 온밤”이란 표현에서 잠 못 이루는 밤이 새도록 수 없이 되뇌는 생각임을 느끼게 한다.
병든 아내에게 꽃 한 송이 줄 수 없을지라도, 한 편의 시가 꽃이 되었으면 하고 가난한 시인인 남편은 아내를 위해 밤새워 시를 쓴다. “사납게 비바람 몰아”치는 온밤을 새우며“엄마 곁에서 풀꽃으로 흐느끼는”어린 딸들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힐끗힐끗 바라
보며 썼다가 지우고 지웠다가 다시 시를 썼으리라.
1연과 3연의 연결고리인 2연에서 눈시울에 감동이 당겨지는 것은 병든 아내와 어린 딸을 거느린 한 가난한 가장의 가슴을 찢는 절규 때문이다. 그렇게 힘겨운 온밤, 아무리 괴로워도 시인은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 비바람 사납게 몰아치던 그 밤을“악도 없는 선도 없는 하늘의 일”이라고 말한다.
다만 가난한 남편이자 아버지인 한 시인으로서“사람의 일로서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시詩를 썼더니, 아침 하늘이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고 하므로 지구상의 모든 가난한 남편, 가난한 아버지들이 겪는 고난에 눈시울을 붉히며 아파한다. 홀연히 다가오는 자연과 숙명의 고난 앞에 어떻게 순응해야 하는지 위무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