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충석의 자전 에세이 칼럼](9) 젊은이, 세상을 준비하다... 고암과 윤암 사이
[고충석의 자전 에세이 칼럼](9) 젊은이, 세상을 준비하다... 고암과 윤암 사이
  • 현달환 국장
  • 승인 2024.03.1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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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이 만난 제주사람, "아, 반갑수다!"
고충석 자전 에세이' 어느 행정학자의 초상'
고충석 전 제주대학교 총장의 인생 스토리

제주대학교 제7대 고충석 총장의 자전적 에세이 칼럼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젊은이, 세상을 준비하다. 이번 장은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이끈 여러 명사들과의 인연을 서술했다.

특히, 고충석 총장의 에세이를 통해 우리는 '문화접촉'을 할 수 있음에 매우 흥분이 되었다.

고 총장의 인생은 60년생 이후 겪어보지 못했던 시절을 음미해 보는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고 총장이 걸어온 길이 굉장히 흥미롭고 제주의 섬소년이 어떻게 총장까지 올라갔는지 그의 행보를 우리는 흥분된 마음으로 접해 보는 것이다.

이번 장은 고 총장의 아호에 관한 내용이다.

고 총장은 고암과 윤암이라는 두 개의 아호를 갖고 있다. 두 개의 아호가 탄생된 배경이 흥미롭다. 그리고 그 의미가  본인에게는 영광된 아호이기에 어저다 누군가 그 아호를 불러주었을 때 가슴이 찡하다고 토로했다. 그의 행보가 어떻게 이어질 지 필자는 지금까지만 읽어서 아직도 모르겠다. 

"행동은 검소하게, 꿈은 고상하게 꾸면서, 그렇게 늙어가고 싶다"고 말하는 고충석 전 총장의 자전적 에세이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과 필독 바랍니다[편집자 주]
 

9번 째 이야기 : 젊은이, 세상을 준비하다
고암과 윤암 사이

고충석 전 제주대학교 총장
고충석 전 제주대학교 총장

어떻든 술로 세상에 저항했다고나 할까. 견강부회라고 하자. 누군가 우리들의 이러한 부작위적이고 간헐적인 모임을 골빈당이라 명명했다. 아마도 문무병 선생이 작명했던 것 같다. 그 당시 우리들은 이름 대신에 아호를 사용했다.

그중에는 이름을 바꾸거나, 잘 다니는 다방 상호 등을 사용하는 등 기상천외한 아호들이 있었다. 철상, 야성, 마형, 나보이, 석격(돌 팩이), 방콕, 내시, 제비 등이 그것이다. 소위 질서에 대한 저항이랄까, 냉소랄까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아호는 이들과는 배경이 조금 다르다.

나의 아호인 고암(孤岩)은 청순한 꿈을 이야기하던 대학 시절 같은 동아리(MRI) 멤버였던 김칠두 선배가 진지하게 지어준 작품이다.

김칠두 선배는 참여 정부 때 산자부 차관을 지냈다. 지금도 가끔 매우 드문 일이긴 하지만 나를 고암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때마다 그 시절 생각이 나서 가슴이 찡해지는 것을 느낀다. 내가 제주대학교 총장직에서 물러날 때 제주대 대학원장을 지내신 송성대 교수께서 윤암(潤岩)이라는 아호를 하나 지어주셨다.

여러 가지로 부족함이 많아 나눠줄 게 없는 영혼이 가난한 나에게는 과분한 작명이다 싶었다. 이제는 이 아호가 나에게는 송성대 교수의 유지가 되었다.

송원장은 올해 초 77세를 일기로 저세상으로의 영원한 여행을 떠났다. 그분은 엄청난 학문적 업적을 이 세상에 남기신 대단한 학인이었다. 제주 정신을 설명하기 위해서 ‘해민 정신’이라는 개념 모형도 개발해냈다. 인문학자로서 앞으로 이만한 학자가 제주대학교에서 나올 수 있을까.

고교 선배이기도 한 그는 나를 많이 사랑해주셨고 늘 격려를 보내주셨다. 이어도 연구회를 발전, 정착시키는데도 연구자로서, 교육자로서 크게 이바지하셨다. 후학들과 이어도 연구회는 이러한 송 교수님을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애통한 마음을 담아 명복을 빈다.

송 교수님은 이렇게 가셨지만, 그가 지워준 아호는 나의 가슴 속에 남아 마음만은 항상 풍요롭고 넉넉하게 살라고 다독이는 것 같다. 그러나 아직은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아직은 나는 소년의 센티멘탈함과 고독의 사치를 사랑하고 조그마한 일에도 가슴아파하는 고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나 스스로 윤암이라는 아호를 흔쾌히 수용할 수 있는 그 날이 빨리 오길 바랄뿐이다.

골빈당의 원조들

고충석의 자전적 에세이 '어느 행정학자의 초상'
고충석의 자전적 에세이 '어느 행정학자의 초상'

골빈 당원 중에는 훗날 주목받는 문인이나 만화가. 시민운동가, 교사도 있고 학자가 된 사람도 있다. 세속적으로도 출세해서 4선 국회의원 의원을 지냈거나 중앙지 신문사 사장을 거처 제주시장까지 지낸 사람도 있다.

나 같은 사람은 운이 좋아 대학 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제 현직으로 남아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 전에 국회의원을 끝맡치고 주일 대사로 간 강창일 뿐이다. 총리급 대사로 크게 성공하기를 빈다. 그렇다고 골빈 당원 중에는 다 잘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고 육지에서 아파트 경비원을 지내는 등 초라한 인생을 산 이도 있다.

몇 년 전인가 양주동 선생이 쓴 회고록 ‘문주 반생기’를 읽었다. 거기에는 우리가 교과서에서나 듣던 최남선, 이광수, 현진건, 홍명희, 박종화, 백철, 이은상, 양주동 등 대단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은 그 시대 골빈 당의 원조이다.

물론 제주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우리가 했던 골빈 당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스케일이나 깊이가 넓고 깊었지만, 그 형식은 비슷했다. 일제강점기에 술로, 괴기한 행동으로 망국의 한과 분노를 달랬던 이들을 보면서 슬프도록 진한 감동이 솟아올랐다.

나는 가끔 술자리가 늦어지면 김상철의 집 영주여관 신세를 졌다. 철상(김상철의 아호)은 정이 많은 친구였다. 가끔 잘 삐지긴 하지만, 우정의 기조를 잘 유지하는 사람이다. 그는 4.3 연구소 이사장과 성당의 범 신도회장을 지내는 등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소천 했을 때 하느님께 면은 세우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 같다. 철상모친은 그 시대에 드물게 고녀까지 나온 참 후덕하신 분이었다. 그러나 남편 일찍 저세상으로 보내고 자식 셋을 앞세웠으니 한 많은 생을 사셨다. 오랜 세월 치매를 앓다가 저세상으로 가셨다.

가끔은 고희범 집에 가서도 잤다. 밤 시간이 너무 늦을 때는 대문이 잠기는 바람에 울담을 넘어 들어갔다. 문무병과 함께 술 마시고 대취한 상태로 고희범 집 담벼락을 오르다가 몸이 균형을 잃고 땅바닥으로 떨어진 경험도 빈번히 있었다. 희범이 아버지 고원숙 장로는 아침에 우리가 자는 방으로 와서 우리를 불러 앉히고 하느님께 기도를 해주시곤 했다. 고 장로님은 정말 칼빈교도처럼 근면, 성실, 경건주의로 일생을 사신 분이다.

얘비군 중대에 방위군으로 근무할 때 예비군 소집 통지서를 대상자들에게 가가호호 돌리다 새끼를 금방 출산한 개에게 허벅지를 물렸다. 그때 고원숙 장로님은 개에게 물린 부위에 수차례 된장을 바르고 뜸을 떠주셨다. 지금도 그 흉터를 볼 때마다 장로님이 생각난다.

희범이 백씨인 고희식 장로도 나를 친 동생처럼 대해 주셨다. 늘 나에 관해 관심과 기대를 갖고 있었던 분이다. 성안교회 장로이셨던 형님은 내가 비기독교인임에도 결혼할 때 성안교회 버스도 가난한 나의 처지를 생각하여 무료로 대절 해주었다. 덕분에 시골에서 오신 처가 하객들을 잘 모실 수 있었다. 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길 바란다.

고희범은 영혼이 참 맑은 사람이다. 수재들만 모인 한겨레신문사에서 제주 몽생이가 사장한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정말로 자랑스러운 친구다. 희범이가 신문사 사장이 됐을 때 내가 사장이 된 것처럼 기뻤다. 그것이 우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요새는 제주시장직을 마치고 뭔가를 암중모색하고 있는 것 같다. 무엇을 하든 부디 그 맑은 영혼이 혼탁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골빈당 시절 관덕정 라면집의 신세도 많이 졌다. 이 가게는 대학 후배 강철준 교수(현 제주국제대학교 총장) 모친이 밤새워가며 장사를 했던 식당이다. 돈이 없을 때는 주로 그 식당에 가서 외상을 했다. 늘 내 처지를 잘 알고 있어서 그런지 언짢은 내색 없이 주문한 대로 술도 주시고 라면도 끓여 주셨다.

내가 외상값을 갚으리라 생각해서 외상을 준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아무 때라도 내가 가면 반갑게 맞아 주셨다. 세월이 한참 흐른 어느 날 강 박사에게 돈 가치로 보면 “그때 내가 먹은 외상값을 인제 와서 다 갚을라치면 상당할 것이다.”라며 파안대소하고 넘어갔다.

강 총장 모친은 통이 크신 그 품새로 내 처지를 잘 해량해주신 분이시다. 강 총장과 형제지정을 나누며 지내는 것으로 어머니께 진 빚을 갚아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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