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남 칼럼](7)희망과 성공의 차이 ... '타이탄'의 도구
[김택남 칼럼](7)희망과 성공의 차이 ... '타이탄'의 도구
  • 현달환 국장
  • 승인 2023.07.01 0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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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이 만난 제주사람, "아, 반갑수다!"
[김택남 자서전]내가 꿈꾸고 설계하는 세상
(주)천마그룹 김택남 회장의 인생 스토리

뉴스N제주가 창간 5주년을 맞아 마련한 '김택남 칼럼' 제6탄의 주제는 바로 '설계'다.

설계設計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계획을 세움△건축물 설립이나 토지 공사, 기계의 제작 따위에서 그 목적에 따라 실제적인 계획을 세우고 구체적으로 도면을 그려 명시하는 일이라고 나온다.

김택남 회장이 직장생활을 통해 겪으면서 느낀 점은 바로 이 설계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든 일을 실행하거나 인생의 계획을 세울 때도 설계도면이 없다면 멈추고 만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글로써 남긴 사람은 계속 계획표대로 간다는 것이다. 

김택남 회장의 설계는 A에서 Z라고 말하는 이유는 계획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제주사람들은 육지(외지)에서 자영업을 하거나 직장생활에서 처음에는 결과가 좋지 않지만 나중에는 월등하게 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유는 부지런함이다. 물론 다른 이유도 많고 머리도 좋지만 지지않으려는 끈기가 남들보다 강하다.

그래서 자신의 진가를 결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 제주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욕먹고 아주 일을 못하는 직원으로 취급받다가 어느 순간 직장동료보다 더 인정받는 사람들이 제주인들이다. 거기엔 제주인들의 DNA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떤 꿈을 가졌는가. 
꿈은 미래에 대한 기대다. 
어떤 미래를 꿈꾸고,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진다.

미국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속담중에 이런 말이 있다.

"인생이 당신에게 레몬을 준다면, 당신은 그것으로 레몬에이드를 만들어라.(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

여기서 레몬의 의미는 예쁘고 아름답고 잘생긴 것이 아니라 아주 쓰고 셔서 먹기가 힘든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것으로 짜고 설탕도 좀 넣고해서 달콤하고 시원한 레몬에이드를 만들라는 뜻이다. 

인생이 우리에게 못먹을 것, 안좋은 것을 줘도 '모든일이 그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해 일어난다.'는 의미처럼 힘들고 고달픈 환경을 이겨내고 인생을 업그레이드 시키라는 의미일 것이다. 즉, 환경을 탓하지 말고 거기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고 일어서라는 것이다.

김택남 회장의 초창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지에서 나와서 직장생활하고 성공의 자리까지 올라갈 동안 주의깊게 관찰해 보면 그는 환경을 탓하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헤쳐 나가려는 모습이 워낙 크게 다가왔다. 

환경탓을 하는 이유는 이미 자신과의 싸움에서 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탓을 하지만 그렇게 해봐도 소용이 없다. 그것은 스스로 위안을 받기 위한 변명일 뿐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그러한 환경을 헤쳐나가려고 더욱 더 큰 안테나를 만들고 세워야 한다. 그래야만 알아주는 것이다.

설계도가 있다는 건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보다 내일을 잘 살기 위해 인생 설계도를 철저하게 그리는 오늘이
되기를 빌면서 많은 필독이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 주]

김택남 천마그룹 회장
김택남 천마그룹 회장

'타이탄'의 도구

페리스는 <타이탄의 도구들>에서 각 분야의 성공한 사람들을 타이탄 거인이라고 했다. 그들의 성공 도구를 뭉뚱그려 '담대한 목표와 그것을 돕는 디테일'이라고 했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나름의 목표를 세우고 자신들만의 디테일한 노력과 방법으로 그 목표에 다가간다는 것이다. 나도 보잘것없지만 작은 성공을 이룬 작은 타이탄이라고 하면, 나의 디테일한 노력과 방법은? 설계다.

흔히 설계라고 하면 도면 작성을 생각하는데, 도면 작성은 설계의 극히 일부분이다.

설계란 모든 일의 'A→ Z'다. 무언가를 구상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를 수립하는 일이다. 적용 범위는 거의 무한대다. 전기설계, 건축설계, 설비설계, 도시설계…. 최근에는 경영설계라는 말까지 생겼다.

나는 어떤 일이든 일단 머릿속에서 설계를 그린다. 의식하지 않아도 습관이 됐다. 먼저 개념설계를 그린다. 개념설계는 간단한 밑그림이다.

무언가 하고자 하는 핵심 아이디어나 계획을 단순하게 스케치한다. 그 다음에 그 밑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한다. 전문적 용어로는 상세설계다.

나는 70년대 말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과 의지에 운 좋게 올라탔다. 현대중공업 등이 생산 현장 인력을 대규모로 뽑던 시기였다. 전기기기 기능사 자격증과 높은 실습 점수, 선생님의 추천서로 선배들은 꿈도 못 꾸던 울산 현대중공업에 취업했다.

우리는 1973년부터 시행한 산업기능 요원이 되었다. 산업기능 요원은 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병역의무가 있는 사람 가운데 일부를 선발하여 연구기관이나 산업체에서 복무하도록 하는 제도다.

그때는 5년 복무하고 이병으로 소집이 해제되었다. 지금은 산업기능 요원 복무기간이 2년 10개월이다. 그 덕에 지금도 친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유머의 주인공이 됐다.

산업기능요원제에 앞서 시행한 1969~1994 대체복무제도인 방위병은 기초군사교육을 마친 후 집에서 출퇴근하면서 군부대나 예비군 중대, 파출소, 동사무소 같은 관공서에서 일정 기간 근무했다.

방위병으로 복무한 친구가 자신은 일병으로 소집을 마쳤다고 하기에 내가 말했다. "야, 너는 앞으로 나 만나면 경례해라. 나는 이병이니까." 나는 일병보다 이병이 높다고 생각했다. 1 다음이 2이니까 같이 있던 친구들이 모두 배꼽을 잡고 넘어갔다.

의도치 않게 가끔 엉뚱한 유머를 생산하는 나는 아직도 내 머리가 좋은지 나쁜지 모른다. 다만 책을 통째로 외울 정도의 목표 의식과 끈기는 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에 입사하자마자 '미운 오리'가 됐다. 현장은 시끄러웠고, 선배들은 제주도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선배들의 말투가 낯설고, 선배들은 내 말투를 도통 알아듣지 못했다.

두 번, 세 번 묻는 일이 반복되자 선배들은 나를 덜 떨어진 섬 촌놈으로 업신여겼다. 선배들이 나를 무시하자 동료들도 슬금슬금 나를 피했다. 나와 말을 나누기는커녕 눈도 맞추려 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사람이 살면서 걱정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생각했다. 어머님과 아버님, 내가 보고 싶고 책임져야 하는 사람을 생각할수록 근심도 늘어났다.

이런저런 불안감이 얼마나 불편한지도 깨달았다. 그 시기에 나는 나와 대화하는 방법으로 외로움에 통달하는 능력을 습득했다. 이런저런 근심, 걱정, 불안, 불편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과정이 흔히 말하는 성장기라는 것은 나중에 깨달았다.

그나마 내 키가 무리 중에서 가장 큰 게 천만다행이었다.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선배들의 어깨너머로 그들의 손놀림을 기억했다.

퇴근 후 기숙사에 돌아와 그날 조립한 제품의 설계도를 그리며 조립 순서를 기억했다. 그걸 습관처럼 하자 우리가 조립하는 제품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환하게 알게 됐다.

그러자 조립 속도도 빨라지고 불량률이 현저하게 낮아졌다. 나도 놀랐지만, 선배들이 더 놀랐다. 기숙사에서 혼자 설계도를 그린 그 시간 동안 나는 성장했다. 근심과 걱정, 불안감을 오히려 미래의 꿈으로 바꾸는 요령을 터득하고 80대까지의 내 삶의 설계도를 그린 것도 그 무렵이다.

나는 지금도 어떤 일이든 설계하듯이 접근한다. 무의식 속에서 습관이 됐다. 설계는 어떤 개념이나 목적에 의해 버릴 것은 버리고 선택할 것만 선택한다. 불필요한 요소를 뺀 나머지를 논리적으로 배열하는 게 설계도를 그리는 요령이다.

설계도가 있다는 건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것이다. 막무가내로 덤비는 것과 시작과 끝을 생각하고 덤비는 차이는 크다. 현실보다 훨씬 심플한 전체상을 머릿속에 넣을 수 있어 일의 추진과 진행에 머뭇거림이 없다.

꽃을 사랑하는 남자, 김택남 회장
꽃을 사랑하는 남자, 김택남 회장

'운명'이라는 단어는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하지만 그저 그런 게 있다는 정도만 안다. 보통 운명론은 세상일은 미리 정해져 있어 인간의 노력으로는 그것을 바꿀 수 없다는 이론이다. 그들이 운명론을 거론할 때는 대부분 신의 존재를 앞세운다. 다분히 종교적이다. 설사 운명론이 존재한다고 해도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논리적인 인과관계가 작용한다.

태어날 때부터 만들어진 운명이 있다고 해도 살아가는 중에 한 어떤 일이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나는 혼자 기숙사에서 그리기 시작한 설계가 타고난 내 운명을 바꿔 놓았다.

평택화력발전소 건설 1976-1980은 현대그룹의 핵심 사업이었다. 국내 기술 현대건설이 국내 최초로 설계와 시공, 기술용역까지 일괄 도급한 발전소 프로젝트였다.

지금은 친환경 그린 뉴딜Green New Deal 정책에 밀려 사라지는 추세지만 그때는 화력발전소 건설 붐이 한창이었다.

일본 히타치가 제작한 발전소의 주 기기 외 45%의 국산화 부품을 개발했다. 그중에는 현대중공업이 설계, 조립한 전기제어 컨트롤박스도 포함돼 있었다.

전기제어 컨트롤박스는 '심장'이다. 심장이 온몸에 피를 보내듯 모든 기기와 기관에 전기를 분배한다. 설계부에서 일본과 미국의 기술을 도입하여 평택화력발전소에 맞게 컨트롤박스를 설계한 뒤 내가 소속된 조립부에서 조립했다.

그러나 국내 기술진이 담당한 평택화력발전소는 크고 작은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컨트롤박스도 문제가 발생했다. 고압의 전기 분배가 잘못돼 기기에 불이 나고 사람까지 다쳤다.

평택 현장은 물론 울산본부까지 초비상이 걸렸다. 울산 설계부의 인력이 하나둘 평택으로 불려갔지만, 문제 원인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자 조립부의 막내인 나까지 호출됐다.

설계부는 모두 공대 출신이다. 그들도 해결하지 못하는데 공고 출신인 조립부 직원이 뭘 하겠느냐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지만, 나는 단박에 원인을 찾아냈다.

컨트롤박스에 귀를 대면 전기가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만 듣고 원인을 알았다. 점점이 엉뚱한 곳에 물려 있었다. 설계와 조립의 이중 원인이었다.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설계도면을 알고, 직접 조립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금방 원인을 짚고 해결책을 제시하자 모두 놀라는 눈치였다. 당시 총괄 설계를 맡았던 설계부 부장이 그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일어서자 소속과 이름을 물었다.

조립부의 김택남입니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장이 큰소리로 말했다.

“이 사람, 당장 평택 설계부로 보내!"

하지만 동시에 병역의무를 수행 중인 산업기능요원은 함부로 부서를 옮길 수 없었다. 나는 소속은 울산 조립부에 그대로 두고, 평택 설계부에서 근무했다. 해외에서 오는 도면을 우리 설비에 맞게 수정하고, 조립이 끝난 제어판의 A/S를 맡았다.

평택화력발전소가 준공되고, 나는 울산으로 돌아왔다. 전 사원이 참석한 강당에서 모범사원 표창장을 받았다. '덜 떨어진 제주 촌놈'이 울산에 온 지 3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때 성취의 기쁨이 어떤 건지 맛봤다. 무언가를 간절히 소망하면 이룰 수 있다는 경험적 자신감을 얻었다.

반면 한 번 '기울어진 운동장'은 좀처럼 원상복구 되기 어렵다는 현실도 실감했다.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부족하지만 이 한 권의 책이 시간, 공간, 지식의 경계를 넘어
멋진 미래를 열어가시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김택남

평택 설계부에서 근무하며 그동안 느끼지 못한 것을 만났다.

조립은 주어진 도면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설계는 스스로 생각한 것을 구체화하는 일이다. 설계하면서 나는 내 재능을 끌어냈다. 지독하게 치밀하고, 지독하게 꼼꼼하고, 그런 노력을 지독하게 끈질기게 습관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질이 나에게 숨어 있었다.

설계부 상사들도 그런 나를 인정해 주었다. 외국설계회사와 미팅이 있으면 나도 꼭 참석시켜 선진 기술의 흐름과 추이를 잘 살펴보라고 했다.

나는 열심히 일했다. 배전반 설계 표준을 만들고, 해상시추선 플랜트 설계에도 참여했다. 일본 히타치, 미국 아이티 같은 선진업체의 설계도를 우리 현장에 맞게 바꾸고 수정했다.

설계는 스스로 문제를 찾고 고쳐나가는 일이다. 나는 설계가 좋았다. 일이 즐거운 만큼 자부심도 컸다. 그 자부심만큼, 울산 조립부로 원대 복귀하자 실망감이 무척 컸다.

설계도의 원리와 기본을 익힌 후에는 생각하는 구조와 방법도 달라졌다. 어떤 일이든 머릿속에서 대충 'A→Z'가 그려지면서 전체가 정리된다. 그러면 비교적 수월하게 핵심에 접근할 수 있고, 그 일을 수행하는 시간과 노력이 절약된다.

설계하면서 나는 꼼꼼한 사람이 되어갔다. 어쩌면 어릴 적부터 꼼꼼한 성격이었는지 모르지만, 설계하면서 그런 성격이 더 굳어졌다.

사소한 것도 짚고 넘어간다. 일단 시행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다시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여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는 대신 처음부터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없도록 만사를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그런 만큼 주변 정리정돈도 빼놓을 수 없는 습관이 됐다. 회사는 물론 집에서도 늘 같은 자리에 물건을 놓는다. 흐트러지는 건 용납이 안 된다. 그래야 안심이 되지만 아내는 자신보다 더 꼼꼼한 내 성격을 마뜩해 하지 않는다.

언젠가 아내가 없을 때 아내 물건을 좀 정리해줬더니, 다음에 친정에 다니러 가면서 아내가 말했다.

"한 번만 더 내 물건에 손대면, 그때는 이혼이에요." [다음주에 계속]

◇설계란 모든 일의 'A→ Z'

나는 지금도 어떤 일이든 설계하듯이 접근한다.
무의식 속에서 습관이 됐다.
설계는 어떤 개념이나 목적에 의해 버릴 것은 버리고 선택할 것만 선택한다.
불필요한 요소를 뺀 나머지를 논리적으로 배열하는 게 설계도를 그리는 요령이다.
설계도가 있다는 건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것이다.
막무가내로 덤비는 것과 시작과 끝을 생각하고 덤비는 차이는 크다.
현실보다 훨씬 심플한 전체상을 머릿속에 넣을 수 있어 일의 추진과 진행에 머뭇거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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